-시간을 밟고 5화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싹둑싹둑, 종이 인형을 오려냈다.
알록달록한 옷을 사려면 돈이 '제법' 필요했다. 그 '제법'이 얼마였는지 이제는 흩어진 모래알처럼 아득했다. 어떤 날들의 기억은 애를 써도 잡히지 않고, 흐릿하게 부서졌다.
서툴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옷을 그려서 만들고, 박스를 오리고 붙이며 솜씨를 한껏 부렸다. 한 번도 자신은 가져 보지 못했던 침대며 식탁, 옷장, 티브이까지 고급진 방하나가 어린 S의 손 안에서 뚝딱 만들어졌다.
인형의 집은 그렇게 모든 것을 가졌고, 또래들의 부러움을 샀다.
S는 지금 이 순간, 수잔이 아니었다.
슬픔은 일어설 시간도 없이 현실이 되었다.
"그러게, 왜 거기서 그 고생을 하냐고, 설거지하고 살려고 간 거야? 그냥 , 돌아와."
"개고생 할 거면 한국서 해. 왜 남의 나라까지 가서, 살집도 이제 없잖아?."
사람들은 S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요란스럽게 언덕을 오르다 고장 난 자동차처럼 , 한때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외따로 튕겨지며 빠르게 S를 굴복시키고 있었다.
올 때도 여행가방 하나였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젖어 못쓰게 된 물건들을 버리고 나니 여행가방은 더 가벼워졌다. 어쩌면 '윤동주의 별'을 넣어 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S는 인근 유스호스텔에 방을 잡았다. 며칠째 일을 못 나가고 있던 터라 어떻게 던 머리를 뉘 일 곳부터 찾아야 했다. 하지만, 찐득 거리며 달라붙는 묵은 곰팡이 냄새로 지끈거리며 두통이 올지경이었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결국 비슷한 걸까?
가난의 냄새는 이 이국의 땅에서도 그녀를 찾아내며 따라다녔다.
얇은 벽너머로 들리는 낯선 욕설과 아이의 울음소리,
말싸움이 격해지고,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
경찰차의 사이렌이 복도를 지나 , 카펫 위로 먼지를 날렸다. 이 빛나는 대지에도, 어디선가 터져 나오는 삶의 울음이 있었다.
경찰이 다녀간 뒤의 정적은 마치 복도를 서성이는 그림자 같았다. 차라리 다시 싸우는 소리가 났으면 했다. 보이지 않는 건 더 무서웠다.
치열해도, 보이면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S는 인형의 집을 떠올렸다.
그 방에선 아무도 쿵쾅 거리며 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똑똑 "
누군가 S의 방문을 두드렸다. S는 숨을 죽인 채, 문에 다가섰다. 문 틈의 작은 구멍 너머로, 술에 취한 듯한 낯선 남자가 비틀거리며 벽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S는 흠칫 몸을 움츠리고 뒷걸음쳤다.
S는 아래위로 문을 잠그고, 핸드폰을 꼭 움켜쥐었다.
종이 인형은 바스락 거리며 구겨지고 있었다.
이곳에 인형의 집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