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밟고 12화
-나만 멈춘 세상.
어둠이 짙게 덮인 밤은 바람조차 없었다.
그 흔한 별들마저 떠나간 하늘이라니.
S는 주먹으로 가슴 언저리를 두드렸다.
어딘가 걸린 듯한 느낌.
숨이 턱턱 막히는 그 무언가가, 낮에 들은 동생의 말과 함께 다시 떠올랐다.
"누나 혼자만 살아간다고 생각했어?
뭐, 우린 다 멈췄고?
잠 좀 깨셔."
심장이 뛰는 느낌이 사라졌고, 그 틈으로 숨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하지만 어깨에서 시작된 통증은 손목 아래까지 퍼졌다.
다시 찾아온 오십견.
이 찢어질 듯한 통증은 오십이 될 때 생기는 걸까, 아니면,오십이 지나야 겨우 가시는 병인 걸까.
사춘기처럼...
S의 엄마는 넋두리처럼 말하곤 했다
젊을 때 고생한 몸은, 나이 들어서 다 티가 난다고.
그러면서 꼭 덧붙였다.
"너는 식모 두고 살아라."
그 말을 듣던 이십 대의 S는 웃으며 대꾸했다.
"식모 같은 남편 두면 되지."
오십이 된 지금,
그녀는 식모도 없고, 식모 같은 남편도 없다.
대신, 먹고 싶을 때 먹고, 굶고 싶을 땐 굶는다.
잠이 오면 자고, 어떤 날은 밤새 깨어 있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다.
그건 혼자 이기에 가능한 선택된 자유였다.
하지만 그 자유는, 가끔 너무 고요해서 시릴 만큼 쓸쓸했다. 어떤 날엔 담요가 필요했고 그녀에게 담요는 , 지나간 시간 위에 앉은 자신이었다
S에게 세상은 늘 ‘나’ 아니면 ‘타인’으로만 존재했다. 그녀의 세상은 그녀 안에서만 움직였다.
그래서인지, 자신은 스무 살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기억 속의 엄마의 나이는 고집스럽게, 늘 예순에 멈춰 더 이상 계산되지 않았다.
자신과 관련 없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단 1의 관심도 두지 않았다.
기억 속 어느 날, 직장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여자가 인사를 건넸다. S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맞은편 자리에 앉은 그 여자를 보고서야, 같은 부서 직원이었음을 겨우 기억해 냈다.
S의 기억은, 늘 마음이 닿은 것에만 남았다.
그렇게 , 그녀의 세상엔 이분법만 있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과목은 반복해도 지치지 않았고,
싫어하는 과목은 아무리 중요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옳지 않다고 느끼는 일은, 죽기보다 하기 싫었다.
"그냥 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잖아."
그런 말들은 언제나 목 끝에 걸려 삼켜지지 않았다.
S는 타협을 몰랐다. 상황에 따라 자신을 조절하거나, 맞추는 법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녀의 동화책 속 세상은 단순해 보였다.
마녀는 아궁이로, 착한 공주는 해피엔딩으로.
하지만 현실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끝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힘은 바로, 이분법 너머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S는 그 이분법의 갈라진 틈 사이에 선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S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연결이 점점 더 기억 속으로만 밀려나는 게 힘들었다.
십 년 만에 돌아와도,
친구도, 풍경도,
자신이 떠나던 그때 그대로일 거라 믿고 싶었다.
변함없이 ,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는, 잊히진 않았을 거라는 그런 막연한, 어쩌면 뻔뻔하기까지 한 기대.
하지만 현실은,
자신이 걸어온 시간만큼 세상도 흘러가고 있었다.
믿고 싶었던 건,
그 자리에 서 있던 기억 속의 S였다.
정지된 건 세상이 아니라, 과거를 움켜쥔 자신이었다.
혼자만 자고 있고, 모두가 깨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눌러둔 감정들이 어지럽게 차올랐다.
어둠은 무겁고,
바람조차 숨어버린 밤이었다.
별들마저 떠나간 하늘엔 무엇이 남았을까?
S는 약이 필요했다.
자신 안의 불안을 눌러줄,
이 밤을 무사히 건너가게 해 줄 무언가.
오늘 밤 S는, 수잔이 되어 오래도록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다시 그리운 이름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 밤, 더 이상의 뇌우는 없어야 했다. 그때, 그녀를 위로하듯 핸드폰에서 알림이 깜박였다.
“밤에 뇌우가 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