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그림을 그리면서 알게 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쁜 얼굴은 그리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문제가 그저 단순한 그림 그리기의 문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힌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물화도 자주 그립니다. 무슨 용기인지는 모르지만 예쁘다고 널리 알려진 여자배우들도 종종 저의 그림 대상으로 선정됩니다. 그것도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형태로 말이죠. 대부분 실패합니다. 그림 연습으로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하지만 아예 엄두를 못 내는 인물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들입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전부 다 예쁩니다. 그런데 그림으로 그리고 나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 가더군요. 그냥 예쁜 사람들이 모여있는 풍경 장면처럼 보였습니다.
예쁜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모두 비슷하게 그려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각 각 개인을 특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가 흔히 못생겼다는 사람들의 그림은 누가 봐도 그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그린 것도 아닌데 제삼자가 그 그림을 봐도 딱 알아보죠.
“예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미인이라고 말할 때 그 기준은 규격화된 아름다움입니다. 미인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죠. 내가 예쁘다고 말할 때 대부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낍니다. 규격화된 기준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쁜 사람들을 각 각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그리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디테일한 차이를 잡아내는 것이 실력 좋은 화가이겠죠.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작업입니다.
실력 좋은 많은 화가들이 아름답다며, 자신의 뮤즈라고 찬사를 보내는 모델들을 보면 의아할 때가 많습니다. 제 눈에는 별로 대단한 미인이 아니거든요. 물론 시대와 장소에 따른 미의 기준이 다른 것일 수도 있지만, 그림 그리기 좋은, 또는 예술로 표현하기 좋은 아름다움이란 규격화된 미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미인과는 반대로 못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개성이 강한 외모의 사람들이죠.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격화된 미의 기준에 속하지 않을 뿐입니다. 오히려 그림 그리기에는 최고의 대상들입니다. 화가의 눈에는 그들이야 말로 아름다운 모델들입니다.
그래서 “예쁜 얼굴은 금방 질려..”라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규격화되고 천편일률적인 그 무엇은 금방 질리기 마련이죠.
아직도 예쁜 사람들이 취업에 더 금방 성공하고, 임금도 더 높으며 성공 확률도 높다는 통계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통계 조사의 기간을 확 늘리면 어떨까요? 20대, 30대에 성공을 쟁취했던 예쁘다는 사람들이 50대, 60대, 70대에는 어떨까요?
저는 저의 아내를 그리면 거의 100% 아내에게 혼납니다. 못생기게 그렸다고요. 저는 아내와 다른 사람을 구별되게 그리고 싶습니다. 제 눈에 아름다움이란 남과 구별되는 특별한 그 무엇입니다. 제 자화상을 그리면 아내는 또 화를 냅니다. 내 자화상의 핵심은 세상에 딱 하나 존재하는 대체 불가능함입니다.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있었던 저 같은 사람들은 그림을 그려보세요. 사람들 얼굴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절대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 증거가 저에게는 “오드리 헵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