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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한장이야기 Mar 07. 2023

공주의 미모에 가려진 그 남자

로마의 휴일 다시 보기

(영화 "로마의 휴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혹시 저의 그림을 꾸준히 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영화 "로마의 휴일"을 얼마나 자주 그림으로 옮기는지 잘 아실 겁니다. 그만큼 로마의 휴일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더 정확히는 영화의 여자 주인공 "오드리 헵번"에 빠져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오드리 헵번의 그늘에 가려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걸출한 스타에 가린 영화에 대한 평가는 존재감이 가려진 남자 캐릭터의 신세와 같아 보이는군요.


로마의 휴일 다시 보기

공주의 미모에 가려진 그 남자


무도회의 해프닝 후, 앤 공주에게 키스하기 직전 장면

누가 뭐라고 해도 영화 로마의 휴일은 오드리 헵번의 영화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도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만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영화 속에서 진짜 중요한 인물은 그녀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앤 공주보다 그녀 옆에 있던 미국인 기자 "조"라는 남자에게 자꾸 시선이 가게 되었죠. 조는 "그레고리 펙"이 연기했습니다. 그도 당대 매우 매력적인 남자 배우였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 속 그의 존재는 사라지고 헵번의 이미지만 살아남았습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은 참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의 이야기를 "조"라는 남자 주인공의 시선으로 따라가면 더 선명하게 영화의 정체에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인물은 "조"입니다. 앤 공주도 변화한다고요? 네. 맞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변화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네요. 앤 공주는 처음부터 탁월한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무리한 대외 순방일정에도 최선을 다하고 희생을 감수하죠. 다만 로마에서 잠깐 일탈을 할 뿐입니다. 그것도 잠시 뿐이죠. 하루 만에 다시 공주의 자리에 돌아옵니다. 물론 그때의 경험이 앤 공주를 많이 변화시켰을 겁니다. 그렇지만 "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자고 있는 앤 공주를 신문의 사진과 대조하며 확인하고 있는 "조"

"조"는 첫 등장부터 기자 일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동료들과 포커를 하며 밤을 지새우죠. 그러다 보니 회사에는 지각을 합니다. 지각도 모자라서 거짓말을 합니다. 열리지도 않은 공주의 기자회견을 했다며 말입니다. 자신의 집에서 자고 있는 공주를 보고 처음 떠올린 생각은 "특종"입니다. 또 거짓말을 합니다. 이번에는 공주를 속이죠. 공주를 속이고 몰래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쓸 준비를 마칩니다. 그랬던 "조"가 변합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그를 진정한 인생의 가치에 눈을 뜨게 만듭니다. 도박을 하고, 특종을 쫓는 속물 기자에서 진짜 중요한 기사가 무엇인지, 인생의 가치를 생각할 줄 아는 인물로 거듭납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가십이나 쫓아다니는 쓰레기 기자가 아닌 것이죠.


영화 로마의 휴일을 다시 보게 된다면 1953년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디테일한 연출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특히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난 장면을 꼽는다면, 수면제에 취한 앤 공주를 어쩔 수 없이 조가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오죠. 그때 앤은 공주답게 조에게 자신의 옷을 갈아입힐 것을 명령합니다. 그때 조의 반응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몸을 파는 여자라고 의심하고 있던 조는 잠시 유혹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가다듬고 쿨하게 그녀를 잠자리에 들게 합니다. 물론 침대가 아닌 소파였지만요. 이 장면에서 속물로만 보이던 조의 착한 면을 보게 됩니다. 관객들이 조에게 좀 더 호감을 가지게 만들어 몰입하게 만드는 섬세한 연출입니다. 

수면제에 취한 앤 공주와 그녀를 바라보는 조


앤 공주의 로마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기자 회견에서, "조"는 꿈같았던 그녀와의 사진들을 그녀에게 건넵니다. 그리고 조용히 회견장을 떠납니다.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그 이후 "조"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조"는 자극적인 가십 기사를 요구하는 신문사를 그만두었을 겁니다. 그는 그전과는 다른 글을 쓰게 되겠죠. 돈을 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필요한 글을 쓸 겁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은 로맨틱 코미디의 원형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아직까지도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미 성숙한 한 남자의 성장 스토리입니다. 혹시 앤 공주의 "헵번스타일"만 떠오르고 영화의 내용은 기억이 안 나시나요? "로마의 휴일" 다시 한번 감상해 보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이 영화를 안 본 분이라면, 고민하지 마시고 지금 당장 보세요.

로마에서의 마지막 기자회견장, 다시 만난 "앤"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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