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영화 이야기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포세이돈 어드벤처 The Poseidon Adventure",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 그림 한 장 PlayList"의 음악은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의 OST입니다. "히사이시 조"의 "Summer"란 곡이 새삼스레 저의 마음에 꽂혔습니다. 여름 음악을 찾다가 이 음악을 발견하게 되었네요. 그렇다면 여름에 생각나는 영화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은 "기타노 다케시"라는 영화인을 빼놓고 설명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감독과 배우를 다 소화하면서도 비평과 대중의 관심을 받았었습니다. 폭력적인 화면과 자극적인 연출로 호불호가 갈리는 그의 영화이지만 "기쿠지로의 여름"은 비교적 대중적인 화법으로 가볍게 그려낸 소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제목에서부터 "여름"이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기쿠지로의 여름은 더운 여름과 참 잘 어울립니다. 아이의 성장 이야기이자 어른의 성장이야기인, 이 영화는 혹독한 더위와 함께 찬란하게 빛나는 여름의 이중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여름이 성장 영화하고만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닙니다. "재난 영화"하고도 잘 어울리죠.
어릴 때 여름방학이 되면 TV 영화 프로에서는 특집을 마련했었죠. 그 기간에 대작들을 방영했었는데 재난 영화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중에서도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봐도 봐도 재미있었습니다.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계절적 배경이 여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재난 영화의 분위기는 언제나 땀이 나고 열기가 느껴집니다. 저의 손에서도 땀이 흐르죠.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보고 있으면 한 여름밤의 이열치열을 맛보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여객선 재난 영화의 최고 수작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타이타닉"이란 명불허전의 작품이 나온 후 2등으로 밀린듯한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온전한 재난 영화 장르로만 보자면 포세이돈 어드벤처가 더 충실하게 그 장르를 이행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름이 되면 시원한 겨울 배경의 영화들을 보면서 피서를 대신합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얼음 호수 위에 누워있는 두 주인공의 모습만 봐도 등이 서늘합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아무 생각 없이 봤다가 예상하지 못한 큰 감동을 받았던 영화였습니다. 어쩌면 이보다 더 사랑을 제대로 연구한 영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기억이 하나둘씩 지워져 나가는 장면들 에서 유독 겨울의 이미지가 많이 보였습니다. 그 황량하고 외로운 장면들을 여름에 봐서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 (2025년 6월 24일), 여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이제 혹독한 여름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그런 견디기 힘든 더위가 찾아올 때 영화 한 편 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