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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를 진짜로 만드는 힘

"헐크 호건"을 추억하며..

by 그림한장이야기

(영화 "록키 3"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AFKN이란 채널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채널이었습니다. AFKN(=American Forces Korea Network)을 그 시절 우리들은 미군방송이라고 불렀죠. 주한미군 내에서 보는 방송 전파가 우리의 TV에 잡혀서 어부지리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AFKN의 최고 인기프로는 프로 레슬링이었고 그곳의 최고 스타는 "헐크 호건"이란 인물이었죠.


"헐크 호건"을 추억하며..

가짜를 진짜로 만드는 힘

위의 그림은 "헐크 호건"이 출연한 영화들 중 비교적 메인 스트림의 작품이었던 "록키 3"의 한 장면입니다. 헐크 호건과 실베스터 스탤론이 이종 격투기로 대결하는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 장면에서 프로 레슬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보여주고 있죠.


영화 속에서 주인공 록키(실베스터 스탤론)는 프로 레슬러(헐크 호건)와 이벤트성 대결을 펼칩니다. 록키는 살살 대충 하자고 신호를 주지만 프로 레슬러는 잡아먹을 듯이 달려듭니다. 록키의 목을 조르고 진짜 싸움보다 더 격하게 진행됩니다. 대결이 끝나고 프로 레슬러는 언제 싸웠냐는 듯이 악수를 청하고 멋진 경기였다고 말하죠.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소한 90%는 진짜로 해야 하는 것이죠. 프로 레슬링은 가짜라고 하지만 진짜 아프고 위험하고 상처가 납니다. 그들이 겪는 극한의 고통은 가짜일 수가 없습니다. 가짜지만 진짜인 것입니다.

"헐크 호건"은 그런 프로 레슬러들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가 2025년 7월 2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인생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많겠지만 적어도 프로 레슬러로서 그의 업적과 공로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어릴 때 AFKN에서 보았던 프로 레슬러들 중 헐크 호건은 저의 관심밖에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외모도 별로이고 기술도 밋밋했죠. 왜 그가 그토록 인기가 많은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워리어"나 "마초맨" 등등의 캐릭터들을 더 좋아했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평가는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프로 레슬러계에 이토록 오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프로 레슬러는 헐크 호건이 거의 유일할 것입니다. 가장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준은 시간이 아닐까요? 그의 모든 삶을 알지도 못하고 어떤 치부가 숨겨져 있을지 몰라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프로 레슬러로서 레전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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