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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치하이커 Jan 09. 2017

1010235합니다

삐삐와 스마트폰 사이에서

2016년 8월 기준, 이동통신 가입자가 6000만, 스마트폰 보급률은 91%가 넘었다.  국내 인구가 약 516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대비 100%가 넘는 보급률, 세계 1위의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하는 시대의 대한민국이라는 엄청난 나라에 나는 살고 있다.


중학교 때 삐삐를 쓰던 시절에는 번호나 음성메세지로 연락을 남기곤 했다. 아날로그 특성상 문자가 아닌 숫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야 했는데 그래서 제목으로 쓰인 '1010235(열렬히 사모합니다)'와 같이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고 '1818', '1004'등 저마다의 감정을 숫자를 통해 은유하곤 했다.


잠깐의 삐삐시대가 끝나고 SMS가 가능한 핸드폰이 대중화된 시절에는 문자를 보내도 회신을 전제로 하지 않았고(그것이 일방적인 발신이라 하더라도), 답장을 보내려면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어야했다. 40개의 글자를 꾹꾹 눌러 쓰며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면서도 보내고 나면 왜 이리 마음 한 구석 든든한건지. 또 저장용량으로 인해 소중한 문자는 보관함에 넣어놓고 힘이 들면 꺼내보던 시절도 있었다.


스마트폰처럼 메모기능 따윈 없으니 무조건 외워야 했고, 문자는 발신요금이 드니 여러번 생각하고 보내고, 핸드폰 통화료는 비싸니까 통화를 더 하고 싶어도 할말만 하고 끊고, 어쩌다 만나서 정답게 이야기하고 챙겨온 MP3로 음악을 나눠듣고, 사진을 찍으며 하하호호 거리던 그 시절, 준비해간 손편지와 정성스럽게 고른 책을 선물로 주며 재회의 날을 고대하던 아날로그의 순수함이란.


삐삐와 스마트폰 사이 기술의 발전은 놀라웠다. 100만원 넘는 고가의 핸드폰에서 개인단말기인 PCS를 썼고, 액정이 8줄이 되고, 화면이 컬러로 바뀌고, 벨소리에 화음이 구현되어 음악이 나오고, 핸드폰에 카메라 기능이 생기고, DMB로 드라마를 보고, 스마트폰이 되어 인터넷검색에서 은행거래, 음악감상까지 되는 격동의 시대, 지금의 최신폰이 내일이면 구닥다리가 되는 시대.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 사용의 최대 수혜자인 세대면서도 스마트폰을 저주한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알량함' 때문이기도 하고 순수했던 아날로그의 시절을 스마트폰에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일종의 '질투(비슷한 감정)' 때문이다. 어쩌면 기술의 발전이 앗아간 감성을 보상받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기능을 집약적으로 스마트폰에 넣었지만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않는 것은 왜일까? 나만의 리스트를 정해 듣고 싶은 음악을 MP3에 용량 걱정없이 듣던 그 시절,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조리개도 조절하고 셔터스피드도 맞추며 재미나게 사진을 찍던 그 시절,  중요한 연락만 주고 받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왜일까?


마음만 먹으면 갖가지 기능을 갖춘 전문기기를 구비하면 그만이지만 이미 스마트폰에 때가 묻어서인지 적응이 되어서인지 당연스럽게 스마트폰에 의지하게 된다. 이쯤되면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기관'이라는 말이 괜한  비약이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이 바꿔버린 풍경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카톡'과 '페이스북'으로 대변되는 '무절제함'과 '관음'은 내가 가장 증오(하면서 누리고 있지만)하는 것 중 하나다. 요금 걱정없으니 필터링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일과와 개인의 시간을 구분하지 못하게 시도때도 없이 연락을 주고 받고, SNS로 끊임없이 나와 타인의 삶을 비교하는 모습을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없고 '너와 나', '우리'만이 존재하는 시대에서 온전한 나의 모습은 어디에서 발견하고 성찰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는 타인과의 관계야말로 진정한 소통일까 불소통일까?


나는 한 글자 한 글자에 문자를 꾹꾹 눌러쓰던 그 시절을, 통화버튼을 누르고 끊기까지 애틋하게 상대방과 통화하던 그 시절을, 편지지를 사서 서툰 솜씨로 마음을 담아 띄우던 그 시절을  뒤늦게 1010235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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