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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resavie Sep 27. 2023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사람들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 / 민혜련


지극히 사적인 감수성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파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 프랑스, 그 넓은 땅 중에서도 파리를 떠올리면 우리는 막연하게 자유, 사랑, 아름다움, 로맨틱 이런 것들을 떠 다. 무작정 떠나가게 싶게 만드는 곳.  '파리' 이 두 글자가 가지고 있는 힘은 대단하다.


사실 이 책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의 프랑스와 프랑스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 딱딱하다. '이왕 읽기 시작한 거 끝까지 읽어보자'라는 마음으로 노력을 기울여 읽어 내려갔다.

그래도 내가 막연하게 프랑스에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들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랑스 인들을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걸맞게, 음악, 문학, 영화, 미술을 아우러서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들이 그들의 삶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프랑스에서는 철학자가 영화를 만들고, 해양학자가 만화를 그리고, 가수가 소설을 쓴다고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어릴 때부터 다양한 분야에 관한 문화적 소양을 쌓으며 창의력을 길러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이 '예술은 논하고, 반대하고,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통치자가 문화를 챙기는 나라. 이것이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이다.

프랑스인들은 만났을 때 '나이'를 묻지 않고, 심지어 알게 된지 몇십 년이 지나도 친한 사람의 나이를 모른다고 하는 그 부분은 참 신선했다. 프랑스인들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때 끝까지 신비주의 즉, 자신들에 대해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의 관점에서 봤을 땐 너무 개인주의가 아닌가, 친밀감이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들이 말하는 '존재의 미학'이란, 처음 인간과 인간이 만날 때 사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적인 테두리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하니 참 멋지다. 우리나라처럼 처음 만났을 때 나이, 결혼 유무, 학벌, 직업 등으로 일단 그 사람을 '한 번 거르고' 관계를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인 게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는 이들의 이 '쿨함'이 샘이 날 정도로 부럽다.

개인을 중시하는 것과 타인에게 무례하거나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중적이고 이기적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사적인 영역까지 모두 오픈하며 '친밀하게 보이는' 관계를 맺으면서도 뒤돌아서서 언제든 상대를 깎아내릴 수 있는 사람들, 몸을 부딪친다거나 발을 밟는다거나 사소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미안합니다' 사과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들, 반대로 연장자나 노약자, 장애인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싸늘하기만 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에서 과연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그저 '부럽다'였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예술을 접하고, 성적이나 점수로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준에만 부합하면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고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사회. 노인이 되어서도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문학과 미술과 음악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회. 외적인 모습을 가꾸는 것에 열광하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사회. 상위 1%에 삶을 부러워하며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갖고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 맞는 행복과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모인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다를지는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 '한 번쯤은 파리지앵처럼' 살아보고 싶다. 파리에 가서 그저 잠깐 스쳐가는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가 되어 그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나도 그들의 높은 문화적 소양과 자부심, 자유로움, 자신감, 자연스러움, 당당함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을까. 그러기엔 그들과 나는 싹이 너무 다른가?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풍경과 유명한 관광지들. 이런 것들을 다 제쳐두고 프랑스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프랑스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엿본 것만으로도 프랑스는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이 책이 요즘 마음만 '방랑병'에 걸린 내게 한번 더 불씨를 키운 게 아닌가 싶다. 모두가 욕망하는 그곳, 파리로 무작정 떠나고만 싶어 진다.


어느 사회든 왜 어두운 모습이 없겠냐만은,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꾸 만나다 보면, 그래서 그들의 삶을 보고 배우고 부러워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 번쯤은 파리지앵처럼. 나도. 









사심 가득한 문장들


프랑스어에 '비앙 당사포 bien dans sa peau'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자기 껍질 속에 잘 맞아 들어가 있다'라는 의미인데, 이 표현을 보면 프랑스어가 왜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고, 오랜 세월 외교 언어로 각광을 받았는지 알 것 같다. 간단히 말해 '편안한 인상'을 뜻하는 이 말은 자기 자신의 자부심이나 열등감을 모두 소화해, 지금 이 현실에서의 내 모습으로 편안하게 사는 사람을 표현한다는 의미로, 우회적이면서도 아주 우아하게 본질을 꼭 집어 이야기한다. 내가 본 많은 프랑스 여성들이 '비앙 당사포'라는 표현을 대변해준다. 크게 애쓰지 않고도 그녀들은 자신감에 넘쳐 밝은 햇빛 아래 몸을 드러낸다. 프랑스인이라도 모두가 자기에 만족하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뚱뚱하건 키가 작건 다른 사람의 외모를 존중해주는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매스컴에서 만들어내는 잣대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적극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 건전한 사회의 모습이 참 부럽다. 
: P 39 [몸을 받아들임, Bien dans sa peau]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집착해 진정성은 사라지고, 교육에서 문화까지 획일화된 현재의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수준 높은 사회란 인간의 개성 하나하나가 발휘되고 이것이 모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회다. 개인의 저력이 모여 국가의 힘이 축적된다. 조금 늦게 가더라도 차곡차곡 문화의 힘을 기른 사회는 그 어떤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내적인 힘이 있다. 
: P 66 [삶의 품격을 말하다, Culture]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나 잘난 맛'에 사는 것 같다. 남을 부러워하고 그 계층 간의 차이를 뛰어넘기 위해 쓸데없는 시간을 버리기보다는 그 시간에 자기가 있는 위치에서 바캉스와 외식, 사랑을 즐긴다는 의미다. 사회 시스템 자체가 타인과 비교하며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게 하는 문화가 아니므로 굳이 위의 계층만 바라보며 몸부림칠 필요를 못 느끼게 하는 것이다. 
: P 122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다, Bourgeois]



인간은 사랑이라는 스트레스와 열정을 끝없이 가지고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이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결혼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은 인간 수명이 50년 정도에 불과해 환갑이 지나면 오래 살았다고 잔치를 하던 시대의 제도일 수도 있다. 인간 수명이 100년을 바라보고 50은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현대에도 과연 맞는 것일까? 법으로 인간이 한 사람과 거의 70~80년을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과연 사랑의 완성인지, 인생의 안정인지에 의문을 갖게 된다. 다른 대안이 없어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습관적으로 지속해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P 165/166 [사랑의 완성 혹은 끝, Mariage]



말하고 토론하기 좋아하는 이 지적인 민족은 무엇보다 '대화'의 묘미에 심취해 있다. 언어가 주는 교태, 말장난의 유혹에 무엇보다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많아야 하고 매력이 없으면 오래 대화할 수 없다. 프렌치 시크에는 지성이 녹아 있는 '차도녀'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대입된다. 천성적으로 말수가 적은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프랑스인들은 지적인 유희를 즐긴다. 그리고 그 지적인 유희를 함께하지 못하면 곧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 프렌치 시크의 본질이다. 
: P 221 [궁극의 자연스러움, C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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