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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resavie Sep 01. 2016

[여기서 행복할 것] 이키섬을 아시나요?

갈 수 있는한 가장 외딴섬에 가고 싶었다.  




고요한 후쿠오카의 주말 아침.



                                                                                                                         

후쿠오카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 날 아침 출발한 나의 최종 목적지는 이키섬이었다.
나가사키현에 속하고, 나가사키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30분,  후쿠오카에서는 고속 페리를 타고 1시간 정도만 가면 만나게 되는 작은 섬.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니 결코 짧지 않은 5일을 머무르는 동안 당연히 한국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질 못했고, 가족단위로 휴가를 온 일본인들은 조금 보았을 뿐이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어떤 사진가가 잘 찍어놓은 사진을 보고 반해서 무작정 가야겠다 마음먹었었다. 여름휴가의 초절정인 8월 첫 주에 이름부터 생소한 낯선 섬이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페리를 타러 가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해서 길을 잃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던 버스정류장도 제대로 찾지 못해 30분이나 주위를 빙빙 돌았고, 어렵게 잡아탄 버스도 잘못 탄 버스였다. 서울에서는 내가 혼자서도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너무 익숙한 그곳에서는 쉽게 길을 잃을 일도 없었고, 버스를 타던 지하철을 타던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한국어 메뉴판이 있으니 사진이 없어도 무엇이든 골라 먹을 수 있었고,  오히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수없이 많은 맛 집들에 무엇을 먹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보니 실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것도, 버스를 타는 것도, 식사를 주문하는 것도 모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꼭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나는 아주 작은 내 틀 안에서만 어른이었던 것인가 생각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서울에서 사실 나는 아무것도 싶지가 않았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나를 내버려 둘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었다. 온전히 그 마음 하나로 이키섬에 갔던 것이었다. 



일본의 도시락은 사랑이다.
이키섬에 도작하자마자 먹은 '이키규'



                                                                                                                 

시골이어서였을까, 일본 사람들은 원래 그런가? 사람들이 하나같이 친절했다. 일본말은 거의 하지도 못하면서 외딴섬에 막무가내로 온 나를 위해 짧은 영어를 종이에 써서 보여주고 손짓 발짓 더해가며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있는 섬이었다.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를 자기 차로 해변에 데려다준 아저씨도 만났고, 버스 기사님께 저녁 먹을만한 곳을 찾고 있다고 번역기를 돌려 보여드렸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처음 보는 나를 데리고 스시집에 데려가 주기도 했다. 기사님의 와이프였을까? 아직도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만 연달아 반복했을 뿐.
한동안 하고 싶은 말이 마음 가득 차있었으나 차마 할 수 없어 답답했고, 보고 싶지 않았으나 봐야만 하는 얼굴들이 나를 괴롭혔다. 듣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던 억울한 말들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탕탕 치고 싶었던 날들이었다. 그런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자 떠났던 그곳에서 실제로 나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무슨 말을 들어도 그들의 낯선 언어를 99.9% 이해할 수 없었다. 낯선 사람들의 얼굴들을 조심스럽게 바라볼 수 있었고, 신기하다는 얼굴로 그렇지만 내가 불쾌하지 않도록 슬쩍슬쩍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피하지 않고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이름도, 몇 살쯤 되었는지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무엇도 중요치 않았던 그 사람들을 나는 그저 그들 얼굴에 슬며시 떠올랐던 미소로만 기억한다. 내가 누구인지, 그들은 또 어떤 사람들인지 서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스쳐갔을 뿐이지만 내게는 모두가 은인이었음을 고백한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사루이와'라고 불리는 원숭이 바위. 등을 돌리고 있는 원숭이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현무암 해식 절벽이다.
도깨비 발자국 '오니노 아시아토' 파도에 의해 침식된 해식 동굴의 끝이 함몰되어 만들어졌다.
'다케노쓰지 전망대' 212.8m로 이키 섬에서 가장 높은 곳. 맑은 가을날에는 북쪽의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언어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말을 나눌 수 없으니 고마운 마음도 표현할 길이 없다. 고마운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던 그 섬에서 나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남겨둔 채 떠나온 것이 가장 아쉽다.  하나같이 모닝보다도 작은 차를 조심조심 운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직접 스쿠터를 몰고 다니시는 풍경들이 정다웠다. 사흘 밤을 묵었던 일본식 다다미방은 욕실도 밖에 있고 이불에서 꿉꿉한 냄새가 났으며 에어컨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어째서였는지 편안했다. 어쩌다 마주치게 되는 다른 방의 사람들은 눈을 마주칠 때면 '스미마셍'을 말하거나,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걸어 다니는 것 같아서 나도 그렇게 했다. 조심스럽게, 고요하게, 외롭지 않게 지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리운 건 바로 그 상태였다. 그곳에서 나는 하루 종일 더없이 평화로운 사람이었다는 것.




제주도처럼 이키섬에서도 해녀들이 직접 성게를 잡는다.



                                                                                                          

소박하지만 싱싱함이 살아 있던 그곳의 일본식 밥상도 그립다. 내가 좋아하는 우니를 마음껏 먹지는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곳에서도 성게알은 귀하다고 하니 그 부드러운 식감을 맛본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사람 사는 것은 어디든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모두가 자신들의 일상에 각자의 방법과 마음가짐으로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결국은 나의 매 순간들을,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들을 견고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겉모습은 비슷할지언정 그 안에 숨어있는 결들은 모두 다 다른 거라고.
일요일에 만난 이키섬은 평화로웠고, 나도 그 분위기를 따라가야지 마음먹으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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