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 박연준
같은 말이라도 '시끄럽고 어수선하다'라고 하지 않고 '소란스럽다'라고 말하면 왠지 그 소음조차 어여쁘고 깜찍하게 느껴진다. 대게 '시인'이라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도 그런 것 같다. 그들은 흔히 어떤 말이 갖고 있는 질감이나 온도를 보통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낸다. 이 책 또한 그렇다. 단어 하나하나 심사숙고하여 고르고, 줄 세우고, 다듬는 시인이 쓴 산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을 '무언가를 사랑해서 까맣게 타는 것이 좋다'라고 소개한 박연준 시인의 맑은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서 일까.
그녀가 내뱉는 슬픔의 언어들은 애달프기보단 아련하고, 어둡기보단 투명하다.
아픔이나 슬픔에 질식하지 않으면서 고요하고 참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의 문장이라는 생각을 감히 하게 된다.
미나,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가 그랬다지?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는다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웃었던지. 맘 놓고 웃을 수만은 없지만, 그만큼 힘들고 아픈 존재란 말이겠지.
미나, 우리는 에둘러 가자. 급하지 않게 돌아서 가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아프게 해도 그거 다 달게 받자.
: P87 [바보 이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알코올중독자이자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쓴 글이 특히 그랬다.
아빠에게 편지를 쓰면서 '장롱에 아슬아슬 쌓아놓은 이불들이 기어코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처럼' 그의 존재가 쏟아지고, 그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아픈 적이 많아 감당이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엔 '충분히 사랑했잖아요, 우리.'라고 얘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빠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순한 마음이 읽힌다. 그 마음을 짐작해 보다 자연스레 나의 아빠를 떠올리기도 했는데,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도 조금쯤 말랑말랑 해져서 일까.
아빠를 생각할 때의 걱정스럽고 무거웠던 마음이 누그러지기도 했다.
모든 소란은 고요를 기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모든 소란은 결국 뭐라도 얻을 수 있게 해줍니다.
하루살이의 미소 같은 것.
괜찮아요.
우리가 겪은 모든 소란騷亂은
우리의 소란巢卵이 될 테니깐요.
'소란'은 동음이의의 단어다. '시끄럽고 어수선함'과 '암탉이 알 낳을 자리를 찾아 바로 찾아들도록 둥지에 넣어두는 밑알'의 뜻을 지닌다. 그녀 안의 '소란들'이 결국 스스로 혹은 '누군가에 의해 잔잔해지고 어여뻐져서', 암탉이 제 자리를 바로 찾아 들도록 돕는 '소란'처럼 귀한 존재가 되었듯이,
지금 내 안의 소란스러움도 끝내는 고요를 기를 수 있는 힘이 될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아마도 일 년 중 온 세상이 가장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웠을 12월의 마지막 날, 나는 조용히 웅크린 채 이 책을 읽으며 보냈다. 지난 일들을 정리 하겠다고 마음을 애써 몰아세우지 않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거창한 마음가짐이나 다짐을 떠올리지도 않았다. 바깥의 소음과 상관없이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한 마음이었다.
'지나고 나니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하며, 전보다 훨씬 담담해진 마음에 안심했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모든 소란은 고요를 기를 수 있는' 모양이다.
힘이 된다.
나는 사랑이 자신의 몸을 통째로 써서 나무를 심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토록 오랫동안 당신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도 나무의 견고한 부동성 때문이겠지요. 그건 '깊은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제대로 설명할 순 없지만요.
내게는 사랑에 대한 첫 독서가 당신이란 책이었고, 행복했고 열렬했어요. 어느 페이지는 다 외어버렸고, 어느 페이지는 찢어 없앴고, 어느 페이지는 슬퍼서 두 번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즐거웠습니다.
: P33 [하필, 이라는 말]
사랑이 질병인 것처럼, 내 이십대는 질병과 같았다. 슬픔도 가장 격렬한 슬픔만, 아픔도 가장 치명적인 아픔만 골라 껴안았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슬픔은 폭죽처럼 터져버렸고, 이미 사라졌다. 시간이 갈수록 폭죽에 대한 기억도, 귓가를 울리던 굉음도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한 시절 사랑한 것들과 그로 인해 품었던 슬픔들이 남은 내 삶의 토대를 이룰 것임을 알고 있다. 슬픔을 지나온 힘으로 앞으로 올 새로운 슬픔까지 긍정할 수 있음을, 세상은 슬픔의 힘으로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이제 나는, 겨우, 믿는다.
: P185 [슬픔은 슬픔대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