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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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의 책을 끝까지 다 읽은 건 처음이었다. 나는 어쩐지 '거장'이라 불리는 그의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다. 그런 나를 이 책으로 이끈 건 '이것은 그야말로 희미한 옛사랑이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다'라는 한 문장이었다.
책이 막힘없이 술술 읽히긴 했는데 처음에는 사실 내용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사회적으로 꽤나 능력을 인정받는 박민우라는 성공한 60대의 건축인이 달동네에서 자랐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정우희라는 스물여덟의 아가씨가 연극 극본을 쓰면서 생계를 위해 알바를 병행하는 고단한 삶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이 두 개의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지 읽으면서도 의문이었다. 박민우의 과거에는 차순아라는 첫사랑 여인과의 추억이 있는데, 오랜 세월 잊고 지내다 40여 년이 흐른 뒤 그녀가 박민우에게 자신의 지난날을 글로 적은 수기를 전하면서 다시 나타난다. 정우희의 현재에는 김민우라는 30대 청년이 등장하는데, 착실하게 살지만 전문대를 졸업한 뒤, 사회적으로 스펙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대기업 비정규직으로 철거현장에서 용역으로 일하다가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차순아의 아들이었고, 끝까지 진실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하룻밤 일로 생긴 박민우의 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달동네를 벗어나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부인과도 사이가 멀어진 지 오래이며 노년에 접어들어 자신이 지을 집에서 함께 살 가족이 없는 박민우와, 달동네를 벗어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악재들로 경제적으로 평생을 궁핍하게 살다가 남편과 아들까지 잃고 결국 자신도 뇌졸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차순아의 모습을 보면서, 두 사람이 인생이 경제적으로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으나 결국은 우리 모두가 인생의 후반부에서 회한을 느끼며 저물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 '정말로 그것이 우리의 현실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정우희와 김민우의 모습을 통해서는, 남들보다 고단하고 바쁘게 살지만, 편의점 알바, 비정규직, 밀린 월세, 철거용역, 자살 모임, 동반자살 같은,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기를 쓰고 버티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결국, 너무나도 다른 이 두 세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로 지금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었다.
'개인의 회환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어려운 시절이 오면서 우리는 진작부터 되돌아보아야 했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결국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현재의 진실은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더 다르게 살아갈 부모 세대와 젊은 세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렵고 가난해도 행복했으면 하는 부모님 세대의 바람과는 달리, 왜 우리 젊은 세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고되고 힘겨운 것이 젊은이의 의무인 양 여겨지는 세상에서 점점 행복이나 희망 같은, 막연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 믿어보고 싶은 가치들에 아무런 기대도 걸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든 책이다. 황석영 작가는 결국, 우리 모두가 이렇게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에, 그럴수록 더 꿋꿋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해질 무렵,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길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있는 것 같은 막막함이 결국 우리들의 인생과 같다면, 그러니까 가야 할 길을 모른다 해도 한 발짝 떼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이 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그곳으로 결국은 나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인생 아닐까 심오한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니 해질 무렵 자꾸 길을 잃는다 해도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도록 하자. 우리는 이따금씩 누구나 길을 잃는다.
그녀는 나에게 뭘 하느냐, 가족은 어디 사냐, 우리 아들과는 어떤 사이냐 따위를 묻지 않았다. 다만 몇 살이냐고 물었다. 스물여덟이라고 그랬더니 참 좋은 나이라고 했다. 철도 들었을 테고 세상살이의 어려움도 어느 정도 알 때인 데다 아직 젊고 활력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 P 119
내가 녀석을 보면서 느낀 것은 요샛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어지간해서는 뭘 하든 한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개판 치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길에서 크게 밀려나지 않는다. 나로서는 형편없는 산동네의 가난을 벗어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며, 그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의 내면은 좀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갈등을 달래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사실 사방에 널려 있는 게 나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던가. 밤에 도심지 호텔의 전망 좋은 라운지에서 고층 아파트와 붉은 십자가와 상가 건물들의 불빛으로 가득한 거리를 내려다보면 그들이 보인다. 억압과 폭력으로 유지된 군사독재의 시기에 우리는 저 교회들에서, 혹은 백화점의 사치품을 소유하게 되는 것에서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온갖 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낸 '힘에 의한 정의'에 기대어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너의 선택이 옳았다고 끊임없이 위무해주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여러 장치와 인물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것들 속에서 가까스로 안도하고 있던 하나의 작은 부속품이었다. : P 144
한 번은, 어떤 식으로든 꼭 한 번은 그를 만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를 만나서는 또 얼마나 허둥댔던가. 내가 술을 사달라고 했을 것이다. 거기서 일어섰더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이미 망가져서 더 망가질 것도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게 내 방식으로 그를 보내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다. : P 172
한 사람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일 따위야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도처에서 날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이 죽고 새로 태어난다. 죽거나 살거나 모두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 P 189
나는 길 한복판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 P 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