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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Jan 15. 2021

가족의 유산

가족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이 사라진다는 생각만 해도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나는 한 때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실 날짜를 알 수만 있다면 그 보다 딱 하루만 더 먼저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불효 막심한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꽤 오랜 기간 동안 그런 생각을 마음속 은밀한 곳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거북이 씨와 결혼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없는 곳에 홀로 남겨지게 될 거북이 씨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땡글이를 임신하고 보니, 내가 무조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여자가 겪게 될 육체적인 고통과, 다시는 지금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서 대부분 기인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더불어 나는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베풀어준 사랑과 희생, 은혜를, 내가 풍족하게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을 내 자식에게 오롯이 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봄이 시작되는 설레는 날씨에는 아빠 엄마와 각종 꽃놀이를 다닌 기억이 난다. 동백꽃, 매화, 산수유, 벚꽃의 순서를 거치며 주말마다 산과 들로 꽃을 찾아 떠났다. 엄마와 쑥을 캐던 기억도 난다. 칼로 쑥 밑동을 잘라서 비닐봉지에 담았다. 아빠가 그걸로 쑥떡을 만들어 오셨는데 그 많던 쑥으로 이렇게 적은 양의 떡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 시골에 살 때는 아빠와 손을 잡고 논두렁을 구경하며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구경했다. 

 산을 정말 많이 다녔다. 언젠가 엄마가 읽어준 전래동화에서 '차돌'이라는 하얀색 돌을 알게 되었다. 실제 차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지금도 차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거의 매주 부모님과 올라간 관악산 한 봉우리 정상을 찍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엄청 반질반질하고 하얀 돌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차돌이라고 믿었다. 

 어린 내 기억에 봄과 여름의 중간쯤에 선산이 있는 곳에서 합동 시제를 모셨다. 마당에 큰 솥을 여러 개 꺼내 놓고 음식을 했는데 사촌오빠와 그 모닥불을 구경하며 즐거워했다. 중간중간 지루해질 틈에는 아빠가 산속으로 손을 잡고 들어가 신기한 식물들을 많이 보여주셨다. 흰민들레도 처음 보았고, '으름'이라고 불리던 우리나라 산 과일도 구경했다. 아빠는 이름 모르는 한 나무의 이파리를 따서 풀피리도 불어주었다. 나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입술만 간질간질 했다. 엄마는 작은 대나무 잎으로 나뭇잎 배를 만들어 주셨는데, 이를 냇가에 띄우고 흘러내려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즐거웠다.


 더운 여름에는 해가 떨어지고 난 후, 차 트렁크에 커다란 수박 하나만 싣고 내장산을 찾았다. 밤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수박을 퍼먹었던 기억이 사진처럼 남아있다. 그리고 밤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자라는 나팔꽃 덩굴이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확인하며 맺힌 꽃봉오리 개수를 세면서 다음날 아침에 우리를 맞이할 나팔꽃 개수를 점쳐보곤 했다. 

 외갓집 대청마루에 모기장을 치고 자던 추억도 떠오른다. 외갓집에 가기만 하면 외할머니의 넘치는 사랑으로 배탈이 났다. 외할머니께서는 치킨 한 마리만 시켜 아빠, 엄마, 나, 동생이 나눠 먹는 우리 집 식구들이 오면 몸보신을 위해 닭백숙을 끓여주시곤 했는데 닭을 6마리씩 잡으셨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우리 가족의 몫이었다.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던 중에 비가 갑자기 많이 내려서 아빠가 우리 가족을 모두 깨워 대피 준비를 시켰던 것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등산 중 만난 계곡에서 커다란 돌멩이들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가재를 잡았던 경험도 특별했다. 그때 처음으로 흐르는 물에 '급수'라는 것이 있고 가재가 사는 물은 매우 맑은 물이라는 사실도 배울 수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아빠 손을 잡고 전시회를 가던 장면이 떠오른다. 플라타너스 나무가 가로수로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아빠는 "나뭇잎이 구슬이 얼굴보다도 크네!"라고 말씀하시며, 인도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 중에 가장 바삭바삭하게 마른 나뭇잎을 찾아 주셨다. "구슬아 나뭇잎을 밟아 봐!" 그리고 내가 그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뭇잎을 밟으며 바스락 거리를 소리를 즐길 수 있게 해 주셨다. 

 봄에는 꽃구경을 다녔듯이, 가을에는 단풍과 은행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가야산의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것도 기억이 난다. 아빠는 단풍나무 씨앗을 주워 하늘로 높이 던져 주셨고, 나는 빙글빙글 떨어지는 씨앗의 모습을 동생과 함께 지켜봤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곳을 찾아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바라보았다. 코스모스를 보기 위해서 새벽같이 출발하는 차 안에서 엄마는 늘 어김없이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말랐는데, 새벽바람이 춥다고 차 뒷좌석에서 무릎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하얗고 마른 손 한쪽만 살짝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코스모스 밭에 도착하면 눈으로 아름다움을 충분히 감상하고,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에서 씨앗을 땄다. 그리고 두 세 송이의 코스모스를 꺾어와 백과사전 사이에 끼워 넣고 말렸다.


 겨울에는 역시나 눈 구경을 떠났다. 우리 집 뒤에는 '황방산'이라는 작은 뒷산이 있었다. 한겨울에 동생과 뜨끈한 바닥에 누워 있는데, 아빠는 우리를 재촉해서 등산을 떠났다. 내복도 입지 않은 채 통이 넓은 멜빵바지를 입어 다리가 너무 추웠던 기억이 난다. 눈에 빠지고 넘어지면서 산을 올랐을 때 내 인생 처음으로 딱따구리를 보았다. 정말 '딱, 딱, 딱, 딱' 소리가 났다. 나와 동생은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지만, 아빠는 바로 딱따구리 소리임을 알고 고개를 들어 머리 부분에 빨간 깃털이 나있는 딱따구리를 찾았다. 등산을 마치고 집에 와서 따뜻한 이불속에서 차가워진 다리를 엄마에게 비비며 딱따구리를 실제로 본 경이로움을 설명했다.

 초등학생 때는 동생과 내가 함께 큰 방을 사용하고, 부모님은 중간 크기의 방을 사용했다. 베란다에서 자연스럽게 살얼은 홍시를 각자 하나씩 들고 넓은 거실과 커다란 텔레비전을 두고, 부모님 방 침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홍시감을 먹으며 방에 있는 작은 텔레비전으로 가족 드라마를 시청하고는 했다. 

 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따뜻하게 채비한 후 눈썰매를 타러 가거나,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이 잘 뭉쳐지는 날에는 항상 욕심을 내서 눈사람 머리를 너무나 크게 만드는 바람에 가족이 모두 함께 달라붙어도 몸통 위에 올릴 수 없어, 누워있는 눈사람을 만들고는 하였다. 


 이 외에도 아빠와 함께 종이 모빌을 만들고, 연을 만들어서 날리고, 엄마와 함께 도넛을 튀기는 등 소소한 기억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나 역시 땡글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기억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이런 작지만 따스한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길 바란다. 내가 그런 부모가 될 수 있을지 거북이 씨와 매일 이야기한다. 생활 속에 스며들 수 있는 행복한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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