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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그리는기도 Mar 22. 2023

기도의 시작

엄마를 위한 정원이야기



기나긴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이다.

2021년 5월 17일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정원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나의 시간은 멈춘 듯 고요했고 우리 가족의 일상은 그대로 멈춰있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지금 이 시간이 꼭 필요한 시간인 걸까? 여전히 우리 엄마는 깨어나지 못하고 깊은 잠만 주무시고 계신다.  엄마가 없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벅차도록 너무 많은 것을 깨닫고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소한 일에는 마음이 요동 치지 않는 여유도 생겼고 사소한 일에 그냥 마냥 감사한 마음이 채워지고 있고 어쩌면 내가 가는 길이 이미 정해진 내 운명의 길이라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아.. 이게 내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인가 보다..








타샤 할머니를 꿈꾸던 엄마와 9년을 같은 양평에 살면서 매년 함께 정원을 가꿔나갔다. 때마다 나무시장에서 꽃과 나무 쇼핑을 했고 나의 정원에는 엄마의 손길이 가득 담겨있다. 그런 엄마가 없으니 엄마가 돌아오기 전까지 정원을 절대 가꾸지 않을 거라 굳게 다짐했다. 괜한 고집이었을까? 간절한 바람이었을까? 일 년을 쳐다보지도 머무르지도 가꾸지도 않아 정원은 온갖 잡초로 말 그대로 아마존 정글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엄마를 기다리던 일 년이 되던 어느 날 기도하는데 문득 어쩌면 정원을 이쁘게 가꿔두면 엄마가 좋아서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다음 날부터 우리 가족의 모든 염원과 바람 그리고 정성을 가득 담아 가꾸기 시작했다. 아마존 정글이었던 정원이 하나 둘 정리가 되고 아담한 파라다이스가 만들어졌다.



나는 <정원에 그리는 기도>라고 말하고 싶다.







작년 5월부터 정원에 그린 기도는 아마도 이 아담한 펜스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이제와 우리 집 정원이야기를 쓰려고 사진첩을 뒤적이다 보니... 맞다... 이 펜스가 시작이었다.

가드닝에 가자도 조경에 조자도 모르는 우리가 열심히 발품 팔며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우리 상황에 맞게 눈물과 땀으로 정성 들인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은 막막하다.

무식하고 용감하게 돌담을 쌓아보겠다고 담장석을 겁 없이 배달시킨 이야기부터 작은 연못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땅만 5번 갈아엎은 이야기, 마음에 드는 조형물 보고 와서 눈앞에 아른거려 우리식으로 분수대로 만들어버린 이야기, 동물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 한 마리씩 데려오다 아예 물고기에 빠져 작은 물고기 도서관이 되어버린 집 이야기까지 글도 못쓰는 내가 어떻게 재미나게 풀어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가 엄마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도 못한 정원에 그린 기도들을 언젠가 돌아올 엄마를 위해 하나씩 이야기해 나아가보려 한다.






<정원에 그리는 기도>는 2021년 5월 17일 뇌출혈로 쓰러져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위해 정원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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