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병은 Feb 11. 2020

스타트업 리더들이 봉준호 감독에게 배울 점 : 디테일

당신의 팀원들은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생각하는가 

※ 아래 글은,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플래텀에도 기고하였습니다.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스타트업 리더들이 봉준호에게 배울 점 : 디테일

-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 본인의 부족한 준비성과 즉흥적 독단을, 린스타트업-애자일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 마이크로 매니징을, 디테일로 착각하지 말자. 진짜 디테일은 지시받은 사람이 미리 명확하게 알 수 있게 설명해주는 것을 말한다. 작은 꼬투리 잡는 게 아니라.



1. 봉테일에 대한 나의 기억

- 나는 영화인이 꿈이었는데, 특이하게 연출(감독)이 아니라 제작(PD)이 꿈이었음.

- 성격상 꿈만 꾸지 않고 직접 해보는지라, 휴학하고 풀타임으로 상업 장편영화 2편에 제작부 막내 스태프로 개고생을 경험(... 하고 영화를 직업으로 하는 건 너무나 고되구나 하고 포기)

- 영화관 개봉 장편영화 크레딧에 투자가 아닌 스태프로 이름 올려본 사람이 벤처업계에선 별로 없을 듯? :) 


- 그 후 단편영화 여러 편을 참여했는데, 당시에도 봉준호 감독이 이미 엄청난 디테일로 ‘봉테일’로 불리던 때였음 (살인의 추억 등장 직후)

- 나를 포함해 영화계 인맥 있는 몇몇이 힘을 합해서,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초판 콘티북을 구해 셀프 제본해서 틈날 때마다 보며 공부했음


- 콘티는 연출자가 마치 4컷 만화처럼 영화 전체의 진행상황을 그리는 것인데, 머릿속에 구상한 전체 장면들을 손으로 그리는 것임 (인물 위치, 미장센, 카메라 앵글, 카메라 이동 방식 등 미리 생각하고 정리해서 영화로 실제 표현될 장면을 그리는 것)


- 이 콘티북이 매우 중요한 게, 당연히 감독이 머리에서 최종 장면을 상상한 이 콘티북을 중심으로 모든 스탭이 다 준비하게 됨 (필요한 소품, 카메라 렌즈, 지미집, 바디캠 등 장비 등등. 즉, 예산 범위도 감독이 그려내는 콘티 그림에서부터 각을 잡음)

- 물론 머릿속에서 상상한 그림이 그대로 재현되긴 쉽지 않기에, 촬영 일정 중에 새로운 콘티가 추가되거나 대체되거나 한다.


- 그런데 봉준호 감독의 콘티북은 소름 끼칠 정도로 디테일하고 친절했는데,

  실제 개봉된 영화랑 비교하면 싱크로율이 진짜 놀라운 수준.

 (모든 콘티에서 그렇진 않았지만, 카메라 렌즈 mm , 카메라 이동 동선, 조명 방향 등이 나와있는 장면들에선 육성으로 감탄했다)


- 이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겠지만, 나는 촬영 현장 스탭을 그 콘티북을 보기 전에 먼저 경험했던지라 어마어마하게 인상적이었다.

(제작부는 예산관리와 촬영 장소 섭외, 간식 준비 등 촬영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게 준비-조율-정리하는 역할에 가깝다)


- 왜냐하면, 현장에서 콘티와 다른 지시가 즉흥적으로 생길 때마다 모든 스탭이 힘들어지고 제작비용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 예를 들어, 콘티에 없던 카메라 방향을 감독이 하자고 하면 100명 넘는 모든 스태프들은 난리가 난다.

조명, 카메라, 발전차 등 대형 촬영장비들을 다 옮겨야 하고, 

새로운 카메라 앵글에 안 걸리게 스탭 포함 모든 인원-장비-물품 다 바로 이동해야 하고, 

무엇보다 야외라면 다 전화해서 앵글에 걸리는 주차된 차 다 빼야 한다. 


- 차를 왜 빼냐고? NG 등으로 컷 했는데, 그 사이 카메라에 잡힌 주차된 차들이 있다가 없다가 하면 이상할 수밖에. 이것은 한 예일 뿐임 (물론 최초 콘티에 따른 카메라 방향으로는 나 같은 제작부 사람들이 차를 미리 다 빼놓는다)


- 따라서 첫 장편 데뷔 감독이, 자신감 부족을 즉흥성으로 포장하는 연출 현장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이 콘티북이 얼마나 대단하고 가치가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 즉흥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고심하고 상상하여, 디테일하게 준비하고, 그걸 남들이 한 번에 알아보기 좋게 봉준호 감독이 그림으로 그려낸 결과물은 참 놀라웠다.

(디테일도 디테일 이지민 봉준호 감독은 그림을 매우 잘 그린다. 미술-소품팀도 고민의 폭이 적을 것이다)


- 그런데 콘티 안 그리는 감독도 있고, 개발새발 그려서 스탭이 서로 다르게 알아보고 합이 안 맞는 경우도 있음


- 혹은, 몇 회 차 촬영해보고 나면 스태프들이 알아서 ‘아, 이 감독은 어차피 콘티 계획대로 안 찍는구나. 우리도 내일 콘티 미리 준비하지 말고 그냥 내일 하라는 대로 하자’ 하게 됨.


- 봉준호 감독과 정반대 연출 스타일은 홍상수 감독인데, 디테일한 것을 미리 정해놓지는 않고 촬영한다. 

배우들과 촬영 전날 밤 소주 먹으며 교감하거나 현장 분위기를 반영하여 즉흥적인 느낌을 많이 넣어서 촬영하는 스타일. (큰 줄기는 물론 미리 잡혀있다)


-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홍상수 감독 역시 접근 방식이 다를 뿐 ‘현장의 분위기, 날씨, 배우들과 본인의 기분’ 등의 ‘디테일’를 중시한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연출 방식으로는 100억 이상 제작비가 투입되는 영화는 불가능하다)


- 따라서, 봉준호의 반의어는 홍상수가 아니고 드라마 쪽대본이다.


- 둘은 많이 다른 스타일의 연출자이며, 영화제 수상 많이 하는 감독들이지만, 나는 작품이든 스탭으로서든 개인으로서든 봉준호 감독이 좋음



2. 스타트업 리더들이 배워야 할 점 

- 리더가 디테일하고 명확한 계획이 있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그림을 상상하며 일을 하고, 훨씬 집중할 수 있고 완벽한 대비를 할 수 있다는 것. 


- 또한 디테일은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 있는 사람이 만들어낸다는 것. 


- 거꾸로 말하면, 천재적이고 즉흥적인 리더는 엄청난 성과를 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같이 일하는 사람은 힘들다는 것


- 콘티는 스타트업의 사업계획서와 비슷한 면이 많다.

- 나중에 변경되더라도, 계획과 의도는 최대한 치밀하게 고민하고 표현은 디테일한 것이 좋다.

- 사업계획서에서 그리는 그림이 매우 디테일하다면, 최소한 모두의 머릿속에 비슷한 그림을 가지고 작업/사업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또한 혹시 계획이 변경되더라도, 최소한 그 감독/CEO/팀장을 따르는 사람들은

‘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계획이 있겠지’ 하고 신뢰는 가질 테니.



3. 요약

- 디테일, 디테일, 디테일.

- 본인의 부족한 준비성과 독단을 린스타트업-애자일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 마이크로 매니징을 디테일로 착각하지 말자. 진짜 디테일은 지시받은 사람이 미리 명확하게 알 수 있게 설명해주는 것을 말한다. 작은 꼬투리 잡는 게 아니다.


자, 당신의 팀원들은 어떨까?


당신이 사업계획을 수립하거나, 그 계획을 수정할 때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하고 신뢰하는 눈빛을 보이는가?


#봉준호 #디테일 #스타트업

매거진의 이전글 P2P, 저축은행, 대부업이 긴장해야할 메가톤메기 등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