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 도전의 시작
나는 혼자 유럽에 간다.
가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는 자유이다. 받아 들이기는 싫지만 그동안 주변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 멋있는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매 순간, 가끔은 집에서도 가면을 쓰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땅에서 혼자 살아보고 자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로 살아가고 싶다.
다음 이유는 홀로서기에 대한 도전이다. 지금이 아니면 도전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일단 저질렀다. 그리고 여행 1일 차이지만,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는 주변에서 용기 있다고 많이 얘기해도 나 자신은 ‘도전’, ‘용기’에 대한 생각이 크게 없었다. ‘그냥 가보는 거지 뭐’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떠나기 이틀 전에 갑자기 무서워졌다. 집에 걸어가는 길에 ‘이 익숙한 길도 당분간 없겠구나’하는 생각과 동시에 ‘앞으로 가는 대부분의 길은 낯선 길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변에서 들리는 한국어에도 ‘이제 내 귀에는 낯선,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들어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낯선 곳으로 가는 게 맞는 건지 갑자기 두려움이 생겼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무모하고 걱정이 없는 상황이 아니면, 혹은 지금보다 겁이 많아진 후라면 이렇게 도전과 같은 여행을 떠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도전’을 즐기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는 나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나는, 대부분의 일에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호불호가 적은 사람이다. 모든 게 좋다는 것은, 뚜렷하게 좋은 게 없다는 말과 같다. 뚜렷한 취향이 없는 것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었다. 홀로 먼 땅에서 자유롭게 지내다 보면 내가 뭐 할 때 즐거운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분위기의 도시를 좋아하는지, 여행 방식은 무엇인지,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지 등등 나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호기롭게 말해놓고 아직 한 건 없다. 이제 비행기를 한 번 탔을 뿐이고, 경유지에서 글을 끄적이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열심히 여행기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시작하자.
밤 비행기였기 때문에 10시 가까이 공항에 도착했다. 한산한 공항에서 수속 절차를 모두 마치고, 탑승 구역으로 들어갔다. 면세점에서 주문해 놓은 것들을 찾고, 물을 사기 위한 편의점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먹을 마지막 간신에 대해 고민하다 바나나우유 하나를 집어서 마시면서 게이트로 이동했다. 경유지인 아부다비까지는 9시간 55분이 걸렸다. 탑승 1시간 만에 기내식이 나왔지만, 한국 시간으로 새벽이라서 조금만 먹었다. 그러고 숙면을 취하다가 옆에 앉으신 분이 속이 안 좋다고 하셔서 승무원 분과의 통역도 도와드리고, 다운로드한 책도 조금 읽으면서 첫 비행이 끝났다.
지금은 경유지인 아부다비에 있다. 화장실에서 세수와 양치를 마치고, 응커피라고 불리는 아라비카 커피에서 현대인의 생명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여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우리나라 돈으로 9600원이다. 역시 오일머니 부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를 느끼고 있다. 가족들과 통화도 하고, 글도 적으면서 9시간의 기다림을 시작했다. 9시간의 기다림은 생각보다 괜찮고, 또 괜찮지 않았다. 카페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구경도 잠깐 하고, 배가 고파져서 맥도널드에 갔다. 사실 다른 메뉴도 생각했는데 초콜릿 하나에 3만 원, 오믈렛 하나에 2만 원, 핫초코 한 잔이 만원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맥도날드로 향했다. 그래도 아랍 에미리트까지 왔는데 특이한 메뉴를 맛보고 싶어서 맥 아라비아 치킨이라는 메뉴를 먹었다. 피타브레드 느낌의 큰 빵에 마요네즈 소스와 양상추 그리고 향신료 향이 나는 닭고기가 들어있었다. 향신료를 그렇게 즐기지는 않지만 배가 고파서 맛있게 먹었다. 맥도날드에서도 책을 이어서 읽다가 잠이 오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경유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졸린데 짐을 봐야 되니까 잠도 편하게 못 자고, 또 불편한 장소에서 자야 되는 게 힘들었다. 다행히 잠이 금방 깨서 주변 매장들 구경도 조금 하고 화장실도 갔다가 게이트로 향했다. 경유를 하면서 혼자 여행의 단점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그나마 공항이라서 안전했지만 나의 짐을 내가 다 보고 있어야 되는 점, 특히 다른 일을 하거나 신경이 다른데 가있어도 짐도 항상 관리해야 되는 게 힘들고, 걱정도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무사히 경유를 마치고 두 번째 비행기까지 탑승 완료!
두 번째 비행기는 6시간이 걸렸다. 하루종일 맥 아라비아 치킨만 먹어서 배가 고팠기 때문에, 기내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잠을 1시간 정도 참았다. 기내식은 치킨과 매쉬포테이토를 먹었다. 배도 고프고 새벽도 아니라서 그런지 밥이 더 잘 들어갔다. 밥 먹고 잠도 자고 버킷리스트라는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뮌헨 공항에 도착!! 도착해서는 입국 수속부터 하러 갔다. 입국 심사를 엄격하게 한다는 말에 긴장해서 귀국 편 비행기, 호텔, 재학 증명서 등등 여러 서류를 뽑아갔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이름과 왜 왔는지, 언제 가는지를 물어보고 초스피드로 입국 도장받기에 성공했다. 꼬질꼬질한 어린 여학생이라서 그런가.. 여행 기간도 길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독일이라서 긴장했는데 다행이었다. 경유를 일찍 시작해서인지 가방이 정말 늦게 나왔다. 거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나와서 내 짐이 아부다비에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다. 그래도 잘 기다려서 가방 들고 밖으로 나가서 우버를 불렀다. 비싼 가격 때문에 우버를 부를까 기차를 탈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피곤하고, 짐도 많아서 우버로 결정했다. 기사님이랑 이것저것 스몰토크 하다가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기사님께 뮌헨에 관광지는 무엇이 있는지, 옥토버페스트는 어떤지 여쭤보고 싶었지만 어린 여학생이 혼자 여행하는 게 걱정되셨는지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다. 타지에서 따뜻한 걱정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혼자라는 생각보다 주변에 그래도 챙겨주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호텔에 무사히 도착해서 푹 늘어져있다가 짐도 정리하고, 씻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