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서 더 뿌듯한 하루
나는 혼자 유럽에 왔다.
오늘은 여행 2일 차이자, 제대로 된 1일 차이다. 시차 때문인지 새벽에 눈이 2번 정도 떠졌지만, 다시 눈을 감으니 잠이 잘 왔다. 8시쯤 일어나서 밍기적거리다가, 8시 반에 가족들과 전화하면서 일어났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서 커튼을 열었는데 내 방이 테라스가 두 개나 있는 방이었다. 1층(우리나라 층수로는 2층)이라서 나무, 그리고 도로 뷰였지만 독일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잠깐 나가서 구경도 하고 여유를 즐겼다. 백팩에 있던 짐을 캐리어에 옮겨 담고, 나갈 준비를 하고 9시 20분쯤 호텔을 나섰다. 목적지는 빵집과 마트! 아침과 점심을 사러 빵집 먼저 향했다. 동네 사람들도 앉아있는 것을 보니 동네 맛집인 것 같았다. 빵집에서 시나몬롤 하나와 프레첼 샌드위치를 샀다. 그러고 마트까지 걸어가 구경을 하고 과자 하나와 물, 그리고 그릭요거트 하나를 사서 호텔로 향했다. 풍경이 예뻤던 테라스에서 그릭 요거트와 시나몬롤을 먹고, 짐을 마저 챙겨서 체크아웃을 했다.
다음 목적지는 호텔 옆에 있는 큰 호수였다. Feldmochinger See라는 이름의 호수였는데, 내가 머무는 호텔 주변의 유일한 관광 명소였다. 가는 길에 예쁜 꽃밭과 옥수수밭이 펼쳐졌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아침 산책을 하니까 유럽에 와있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서도 사람이 정말 많고 고층 건물이 빼곡한 동네에 살았기 때문인지 이렇게 ‘여유’라는 단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동네에 와있는 게 좋았다. 밭을 지나고 숲길을 지나 도착한 호수는 내 예상보다 컸다. 잠깐 걸어 다니다 가방이 무거워서 챙겨 온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호숫가에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며 물멍도 때리고, ebook으로 책도 읽었다. 사람이 없어서 혼자만의 여유로운 낮 시간을 보내려고 했으나 날씨가 너무 추웠다. 얼마 전까지 30도를 찍은 한국에 있던 나는 적응할 수 없는 추위와 바람이 몰아쳤고, 나는 황급히 카페로 도망을 왔다. 주변에 있는 유일한 카페였던 Schneid-Kaffee Kaffeerosterei Specialty Coffe라는 카페이다.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시켜 마시면서 걱정하는 가족 친구들에게 연락도 하고 글도 써본다.
방금 전까지가 오늘의 여유로운 부분 마지막이다. 카페에서 스포츠센터, 근교 여행지 등등을 알아보던 나는 구한 집으로 갈 시간이 되어서 짐을 맡겨놓은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해 우버를 불렀는데 예상 시간 11분이라고 뜨던 우버가 갑자기 24분 떨어져 있는 기사님을 배정해줬다. (물론 우버가 배정하는 게 아니라 기사님들의 거절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제시간에 갈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을 하던 중 우버 기사님 차량이 벤츠인 것을 발견했다. 역시 벤츠의 나라는 벤츠로 우버를 하는구나,, 하는 쓸데없는 감탄도 하고, 짐도 꺼내놓고 기다렸다. 25분 뒤에 도착한 우버를 타고 내가 구한 집으로 향했다. 벤츠를 끌고 오신 기사님은 예상외로 BMW를 굉장히 좋아하셨다. 내가 구한 집 가는 길이 BMW 타운 느낌으로 집과 공장과 BMW 박물관이 있긴 했지만, 평소에도 BMW를 굉장히 좋아하셨는지 10분 동안 BMW 타운과 좋은 점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내릴 때도 BMW 칭찬이 끊기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듯하셨다. 캐리어 2개를 들고 내린 곳은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집이 안쪽에 있어서 도로와 멀리 위치해 있었다.)
내가 구한 집은 기숙사의 sublet이다. 독일에는 기숙사를 학생 마음대로 임대를 줘도 된다. 어떤 기숙사들은 합격증이나 학생증 등등을 철저하게 검사하던데, 내가 구한 기숙사인 olydorf는 그렇지 않아서 나도 지낼 수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낭만 넘치는 bungalow를 구했다. 아주 좁은 집이지만, 2층이라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평수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5평 정도 되는 공간에 1층은 거실과 부엌, 화장실이 있고 2층은 책상과 침대 그리고 테라스가 있다. 집주인을 만나 열쇠를 전달받고 이것저것 주의사항도 알려줬다. 이를테면 열쇠를 잃어버리면 벌금이 있는 거..? 주의사항과 안내를 듣고 캐리어를 넣어놓고 집 구경을 잠깐 시작했다. 집은 내 예상보다 황량했다. 어느 정도의 사용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침대 매트리스와 책상, 소파가 끝이었다. 조리기구와 접시는 둘째치고 당장 잠을 자기 위한 매트리스 커버와 이불부터 사야 했다.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근처에 olympia shopping center부터 가보기로 했다. woolworth에 저렴한 이불이 있고, dm에서 샴푸와 트리트먼트, 바디워시부터 사기 위해서 서둘러 걸어갔다. 구글지도와 나의 소통 오류로(핑계를 대자면 독일의 구글지도는 이상한 것 같다. 오전에도 가라는 길로 갔더니 마트가 아닌 공사장이 나왔다. 구글 지도를 참고하되 주체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독일 구글은 판단력까지 길러주는 것 같다.) 35분 정도 걸어서 도착했다. 가는데만 해도 진이 빠졌지만, 커다란 쇼핑센터에서 dm과 woolworth를 찾기는 힘들었다. 우선 센터 지도를 보고 여기저기 걸어가다 dm을 발견했다. dm은 우리나라로 치면 올리브영과 같은 곳이다. 올리브영이 방앗간인 나는 올리브영보다 큰 규모의 dm에 눈이 돌아갈 뻔했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된다는 강한 다짐으로 샴푸코너로 직진했다. 하지만 dm은 정말 대단했다. 샴푸만 해도 몇백 가지가 되는 듯했다. 그중에서 네이버에 독일 샴푸 검색해서 가장 많이 나오는 샴푸를 고르고, 트리트먼트도 같은 방법으로 골랐다. 다음 미로는 바디워시 코너였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다양한 향이 나를 사로잡았다. 고민고민하다 이번에는 베스트셀러를 찾고 싶었다. 가장 많이 나와있는 브랜드를 찾았고, 거기서도 ‘뭔가 대용량으로 나온 향은 그만큼 인기가 있어서겠지?‘라는 허무맹랑한 추론을 가지고 향을 골랐다. 샴푸, 트리트먼트, 린스만 30분 고른 나는 계산까지 마치고 뿌듯하게 woolworth로 향했다. info desk의 도움을 받아서 찾아갔는데 내가 들어간 문의 바로 아래층에 있어서 상당히 허무했다... woolworth에서도 고민이 이어졌지만, 사람들이 거의 헤집어놓은 상태라서 깨끗한 상품을 고르는 것은 금방 끝났다. woolworth에서의 구매도 마치고 home sweet home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어보니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돌려도 밀어도 당겨도 문이 꿈쩍도 안 했다. 순간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 뭐지? 신종 집 사기인가?‘, ’ 내 캐리어 저기 안에 있는데 오늘 노숙하는 건가?‘ ’ 지금이라도 아고다를 켜서 호텔을 알아봐야 되나?‘등등 수많은 생각이 들어 집주인에게 연락했지만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사실 당연하다. 우리도 칼답을 잘하지 않으니..) 그래서 여유롭게 마음을 먹고자 해서 이 기회에 슈퍼라도 다녀오기로 했다. 이불만 내려놓고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마트로 향했다. 내일 아침에 먹을 요거트도 담고, 간식으로 먹을 에너지바도 담았다. 그러다가 한국말이 들려서 혹시나..! 하고 다가갔다. 인사를 하고 혹시 어디 사시는지 여쭤봤는데 나랑 같은 기숙사에 산다고 하셔서 열쇠 여는 방법을 여쭤봤는데 너무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문을 최대한 당겨서 최대한 오른쪽으로 열쇠를 돌리라고,,, 하셨다. 열쇠의 사용법은 참으로 복잡한 것이었다. 그래도 문을 여는 방법을 터득해 신나게 계산을 하러 갔다. 여기는 특이하게 음료는 건너편 에데카에 따로 위치해 있었다. 건너편에 가서 물도 3개 사서 집으로 향했다. 과연 알려주신 방법대로 열어보니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 무거운 짐부터 내려놓고 정리해야 될 짐과 집에 대해 생각을 잠깐 하고 바로 움직였다.
캐리어에 들어있던 옷과 짐도 정리하고, 침대도 정비하니 1시간 정도가 흘렀다. 오늘 하루 고생한 핸드폰을 충전시켜 놓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오늘 하루 다양한 일이 일어났다. 유난히 추웠던 날씨부터 이번 여행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집 들어가기, 예상보다 훨씬 황량했던 집을 위해 이것저것 사러 간 순간 그리고 문이 열리지 않았던 당황스러운 경험까지 일이 많은 하루였지만 무사히 지나고 생각해 보니 다 추억인 것 같다.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도 이렇게 하나씩 해결하면 될 것 같다. 이제 씻고 잠에 들려고 한다.
*오늘의 소비
<식비>
빵 2개 6.35, 요거트 1개+물 500ml+과자 1개 4.42, 따뜻한 라떼 4.30, 핫초코 4.20, 물 3병 2.92, 요거트 4개입+에너지바 6개입+주방세제 4.96 -> 약 33유로
<생활>
침대커버+이불+베개 32유로, 샴푸+트리트먼트+바디워시+손세정제 5.90유로 -> 총 37.9유로
<주거>
보증금 300유로 중 200유로+월세 600유로 -> 800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