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스럽다’
코펜하겐을 즐기는 처음이자 마지막 하루이다. 코펜하겐에 생각보다 볼 게 많은데 하루밖에 못 있어서 오늘의 계획을 아주 야무지게 세워놨다. 코펜하겐은 가게도 관광지도 대체로 9-10시에 열어 5-6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그 사이에 호다닥 관광을 하는 계획을 세웠다. 우리의 계획은 9시에 시작했다. 코펜하겐의 살벌한 물가 때문에 밖에서 외식하기는 부담스러워 미리 샌드위치를 테이크아웃했다. 호텔 근처에 있는 유명한 샌드위치 집이었는데, 우리는 bbq 치킨에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주문 즉시 만들어주셔서 10분 정도 기다렸는데, 샌드위치를 받고는 크기와 무게에 놀랐다. 벽돌 같은 무게에 가방에 겨우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샌드위치를 든든하게 챙기고 코펜하겐의 대표 명소인 뉘하운부터 향했다. 뉘하운은 New Harbor라는 뜻으로, 비교적 새로운 항구라고 한다. 어제 가서 야경을 봤지만, 알록달록한 색감을 보기 위해서는 아침에 가야 될 것 같아 첫 코스로 정했다. 버스를 타고 가보니 감각적이면서 따뜻한 뉘하운의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색이 다채로운데 차갑지 않고 조화로워서 거리 전체의 분위기가 살아나는 듯했다. 양쪽의 분위기가 달랐는데, 한쪽에는 배가 많이 있어 오히려 관광지 같지 않고 그 도시 자체의 분위기가 더 느껴졌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로젠부르 궁전이다. 코펜하겐 카드에 포함되어 있어 호다닥 다녀왔다. 앞에 왕립 가든도 유명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나뭇가지만 남아있어 아쉬웠다. 그래도 관리가 아주 훌륭한 게 보였는데, 겨울인데도 나무가 정사각형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아름답게 관리된 정원을 뒤로하고 로젠부르 궁전으로 들어갔다. 메인 궁전과 지하실로 크게 2개의 문이 있었는데, 메인 궁전부터 들어가 봤다. 메인 궁전은 천장과 벽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는데, 금이나 은처럼 번쩍번쩍한 장식은 아니라 압도적인 화려함은 아니었지만 각각에 어울리는 장식과 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덴마크 왕실이 다른 왕실에 비해 검소한 편이라서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하던데, 왕실의 상대적인 검소함이 여기서 나타나나 싶었다. 이전에 간 파리나 독일 등의 궁전에 비해서도 소박하고 간결했다. 방의 크기나 개수만 봐도 느껴졌는데, 작은 규모라 짧게 구경하고 나왔다.
바로 옆에 지하실이 있어 구경을 나섰다. 지하실은 왕실의 보물을 저장하는 곳이었는데, 대표적으로는 여왕의 왕관을 보관하고 있었다. 왕관은 보자마자 럭소리가 나올 정도로 화려하고 섬세했다. 전체적인 금과 진주가 화려했고, 군데군데 작게 아기천사 조각이 있는 것까지 디테일로 가득했다. 보기만 해도 위엄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왕관이었다. 이외에도 액세서리 종류가 많았다. 시상식이나 화보에서 본 것 같은 세상 화려하고 볼드한 목걸이도 많았고, 세트인 귀걸이나 브로치까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궁전만큼이나 보는 재미가 있었다. 밖에는 군인 분들이 서계셨는데, 일정한 시간마다 재정비를 하시는 게 멋있었다.
궁전 구경을 하고 근처에 있는 푸드마켓으로 향했다. 푸드마켓은 육류나 치즈, 해산물처럼 식재료도 팔고 있었고 음식도 판매하고 있었다. 작은 오픈 샌드위치 하나에 만오천 원인 살벌한 가격에 놀랐지만, 연어나 고기류 전반의 퀄리티가 좋아 보여 요리를 못하는 게 아쉬웠다. 시장이 생각보다 작아 호로록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과일 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다양한 종류의 토마토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토마토를 너무나도 예쁘게 포장해 놓은 모습이 덴마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 구경을 마치니 갑자기 악기 연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보니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는지 행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근위병 교대식까지 10분이 남았고, 우리도 교대식 장소까지 도보 10분 거리라서 교대식을 보고 다음 일정으로 가기로 했다. 행진이 교대식 장소인 아말리엔보르 궁전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사람들도 행진을 졸졸 따라가고 있어 귀여웠다. 우리도 같이 따라가 궁전 마당 같은 곳에서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니 악기 연주와 함께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되었다. 근위병 군복은 신기하고 행진도 멋있었지만, 안전요원 분이 인파를 이리저리 움직이셔서 살짝은 덜 정돈된 느낌이라 아쉬웠다. 그래도 잠깐 구경하고 바로 옆에 있던 프레드릭 교회의 외관까지 볼 수 있었다.
그러고는 다음 코스인 캐널투어를 하러 갔다. 시간이 20분 정도 남아 운하 앞에 벤치에 앉아서 아침에 산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었다. 가격이 2만 5천 원 정도였는데, 재료가 다양하고 알차고 크기도 커서 둘이서 배부르고 만족스럽게 먹었다. 먹고 바로 보트에 탔다. 꽤 큰 보트였는데, 코펜하겐 시내를 한 바퀴 돌고 가이드님이 설명도 해주시는 투어였다. 코펜하겐의 역사나 각 건물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어 코펜하겐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 느낌이라 좋았다. 겨울에 물 위에 있어 살짝 쌀쌀했지만,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가기 힘든 외곽 지역도 구경하고 역사나 생활에 대란 얘기도 들을 수 있어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1시간 정도의 투어를 마치고 유명한 소품샵인 헤이하우스로 향했다. 입구부터 감각적이라서 기대가 되었다. 2층과 3층이 매장이라서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계단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도 감각적이었다. 올라가자마자 ‘이게 덴마크인가’ 싶을 정도로 예뻤다. 모던하면서 톡톡 튀고, 매장을 통째로 사고 싶을 정도로 모든 곳이 예뻤다. 조명이니 식기류, 의자 등 다양한 인테리어 제품이 있어 구경하기도 좋았다.
다음 구경은 로얄 코펜하겐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브랜드인데, ’ 코펜하겐에 왔으니 로얄 코펜하겐은 들러야지 ‘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가게 되었다. 여기는 매장이 아니라 잔시장 수준으로 디스플레이도, 인테리어도 훌륭했다. 라인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한쪽 벽면에 가득 붙여진 접기까지 아이코닉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테이블 위에 한 세트가 놓아져 있는 구성이 있었는데, 나중에 인테리어를 이렇게 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층에 있던 고릴라 모양이다. 고릴라 작품을 보고 신기해서 언니랑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직원분께서 갑자기 오셔서 신기하지?라고 물어보셨다. 의미를 여쭤보니 그냥 매년 하나씩 나오는 동물이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시더니 위층에 올라가셔서 박스 2개를 카트에 담아 돌아오셨다. 놀랍게도 크기별 고릴라를 보여주셨는데, 전시된 중간 사이즈 이외에도 직은 사이즈와 큰 사이즈가 있어 보여주러 가져와주신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로열 코펜하겐에서 고릴라를 기다리는 우리가 웃겨서 기억에 남는다. 고릴라와 함께였지만 감성 가득한 로열 코펜하겐 구경이었다.
코펜하겐 카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지막 관광지인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으로 향했다. 작년에 이루어진 왕위 즉위식이 이루어진 곳으로, 대부분의 왕실 행사가 이루어지는 메인 궁전이다. 로젠부르 궁전이 기대보디 소박해서 큰 기대 없이 갔는데, 왕실 행사가 열리는 곳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화려함이 달랐다. 메인 홀도 웅장했고, 다른 방들도 규모부터 달랐다. 현재 주거하지 않는 곳이라서 그런지 왕실의 생활보다는 왕실의 행사를 더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문화라서 그런지 신기하고 왕이란 어떤 존재일지 궁금해졌다.
이곳에는 궁전 이외에도 마구간, 지하, 그리고 부엌도 유명했다. 우리는 지하 공간부터 가봤다. 알고 보니 예전에 감옥으로 사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투박한 돌로 되어있고, 분위기도 스산했다. 감옥 중에서도 마녀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주로 갇혔다고 하던데, 오디오 가이드로 그 시대의 유명했던 마녀들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공포 동화를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는 허무맹랑한 말인 마녀와 마법이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꽤나 진심으로 믿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재밌게 들었지만, 점차 비슷한 얘기가 반복되어 중간부터는 설렁설렁 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지하 공간으로 생각했는데 이런 반전이 있어 재밌었다.
마구간은 문을 일찍 닫아 우리의 마지막 장소는 부엌이 되었다. 꽤나 넓은 공간이었는데, 코스 요리의 종류별로 준비하는 공간이 구분되어 있어 신기했다. 전시관 한쪽에는 왕실 행사 만찬을 준비하는 과정에 관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평소에도 궁금했던 내용이 많아 재밌게 봤다. 공간이 넓지는 않아 금방 구경을 마쳤다.
하루종일 관광하느라 살짝 피곤해져서 카페로 향했다. 라떼와 플랫화이트, 그리고 시나몬롤을 주문했다. 라떼는 부드러워서 맛있었고, 플랫화이트는 조금 더 진한데도 부드러움이 유지되어 신기했다. 전반적으로 우유가 맛있어서인지 카피가 다 맛있었다. 시나몬롤도 달달하고 계피 맛도 진해서 당충전 하기 딱이었다.
에너지를 얻어 마지막 시내 구경에 나섰다. Studio Arhoj라는 유명한 소품샵이 있어 구경을 갔다. 곧 밸런타인데이라서 그런지 하트 모양을 주제로 한 소품들이 귀여웠다. 컵도 감각적이고, 제품들을 모두 직접 만든다고 하는데 그래서 더 유니크하고 예뻤다. 평범한 유리 공예인 것 같으면서도 특이하고 덴마크스러웠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펍이다. 맥주가 50종류 넘게 있는 펍이 있어 가봤다. 나는 추천을 받은 덴마크 맥주로 고르고, 언니는 다크한 맥주가 마시고 싶다고 하면서 2024년에 새로 오픈한 양조장의 dark beer를 골랐다. 내 맥주는 가벼우면서 과일 향이 진한 깔끔한 맥주였고, 언니의 맥주는 ‘다크’가 딱 생각나는 진하고 스모키한 향도 나는 것 같은 맥주였다. 덴마크 맥주는 기본적으로 도수가 조금 더 높은지 6, 7 도 정도였다. 술이 들어가 진지한 얘기도 조금 하면서 맛있게 마셨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플라잉 타이거도 구경하고, 노말에서 좋아하는 헤어스프레이도 샀다. 리들에 잠깐 들러 요거트와 맥주, 그리고 치즈를 사서 귀가했다. 오늘의 저녁 겸 야식은 라면! 라면 하나를 끓여 간단하게 먹고 2차로 사 온 맥주와 함께 과자, 치즈를 맛있게 먹었다. 오늘도 알차고 행복한 하루였다.
이제 3일만 남았다. 복잡한 마음이다. 유럽에 더 있고 싶고, 한국에 가기 싫은 마음이 가장 크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한국 생활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 일단 남은 여행을 최대한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