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in Slovenia. 즉흥적으로 온 love의 나라
어제 갑자기 정한 대로 오늘은 슬로베니아에 왔다. 1박 2일 슬로베니아라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라서 아직까지도 신기하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7시 반에 출발했다. 8시 15분 기차라서 부지런하게 준비했다. 어제 사놓은 빵 2개도 들고 백팩 하나랑 크로스백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4시간 반이 넘는 기차를 타고 또 1시간 반 넘게 타고 2시 반이 넘어 류블랴나에 도착했다. 중간에 환승 시간이 9분 정도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환승하는 오스트리아의 역이 작아서 환승을 마칠 수 있었다. 발음하기 어려운 생소한 도시이지만 슬로베니아의 수도이다. 오는 길에 슬로베니아 책도 읽고 런던 책도 읽으면서 다음 여행 준비도 하고, 잠도 잤다. 중간중간 배가 고파서 빵도 먹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류블랴나의 첫인상은 ‘흐리다’였다. 날씨도 구름 가득했고, 사람들도 기분 탓인지 딱딱한 것 같았다. 체크인 시간이 임박해서 체크인 먼저 하고 백팩을 내려놓고 길을 나서기로 했다. 하루만 잘 예정이라서 최대한 리뷰 괜찮은 가성비 좋은 곳으로 정했는데, 방이 생각보다도 좋아서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한인민박은 평이 그렇게 좋지 않고, 함부르크에서 호스텔이 별로였던 기억 때문에 꺼려져서 캡슐호텔 같은 방을 예약했는데 생각보다 넓고 쾌적하고 리셉션도 친절해서 좋았다. 가방만 내려놓고 나와서 시내 구경을 시작했다.
류블랴나는 작은 도시이다. 처음으로 간 곳은 프란치스코 광장이다. 메인 광장 같은 곳인데, 가는 길에 있는 건물들이 예뻐서 구경하면서 걸어갔다. 광장으로 가니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보였는데, 핑크색 성당 건물은 처음 봐서 신기했다. 광장에는 프레세렌의 동상이 있었다. 프레세렌은 슬로베니아의 국민 시인인데, 눈동자가 정면이 아닌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어 찾아보니 사랑했던 여인 율리아를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율리아는 건물에 창문 모형으로 붙어있다고 하는데 찾지는 못했다. 프레세렌의 시선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랑했음에도 이뤄지지 못한 사랑 율리아에게 향하고 있다고 하는데 애절한 러브 스토리에 감동도 받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광장 구경을 마치고 다리를 구경했다. 류블랴나에는 3개의 다리가 유명한데, 도살자의 다리, 용의 다리 그리고 삼중교가 있다. 가장 먼저 본 다리는 삼중교이다. 특이하게 3개의 다리가 한 번에 있어서 삼중교인데, 생각보다 짧아서 금방 둘러봤다. 다음으로는 도살자의 다리를 보러 갔다. 무시무시한 이름과 다르게 정육점 주인이 고기를 운반한 다리라서 도살자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과 다르게 사랑의 다리인지 하트 자물쇠도 많이 채워져 있었다. 도살자의 다리를 건너 마켓 구경도 했는데, 거의 문을 닫고 있어서 많이 구경할 수는 없었다. 기념품도 구경했는데, 여기는 용이 있는 기념품이 많았다. 도시의 상징이 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슬로베니아는 전 세계의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에 love가 들어가는 나라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사람, 하트에 관련된 기념품도 많았다.
엽서 하나와 배지 하나를 사들고는 점저를 먹으러 갔다. 슬로베니아에 왔으니 전통 음식을 먹고 싶어서 클로바사라는 전통 음식을 먹으러 갔다. 슬로베니아 스타일의 소세지라는데, 내가 주문한 음식은 소세지와 빵, 머스터드 그리고 horseradish가 같이 나오는 것이었다. 한 입 먹어보니 상당히 익숙한 맛이었는데, 비싼 소세지 맛이었다. 빵과 소스와 먹으니 맛있는 소세지가 들어간 핫도그.. 맛이었다... 고기 맛이 꽤 많이 났는데, 실제로 가까이서 냄새를 맡아보니 고기의 잡내가 나기도 했다. 소스를 발라 빵에 야무지게 얹어 배부르게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대성당을 보러 이동했는데, 외관은 푸른색의 돔을 제외하고는 특별해 보이지 않아 들어가지는 않고 류블랴나 성으로 향했다. 성은 푸니쿨라라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걸어도 15분이라고 그래서 걸어갈까도 고민했지만 추워서 푸니쿨라를 선택했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니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아름다웠다. 특이하게 지붕이 붉은색인데 아이보리색 집에 붉은 지붕이 마을 전체의 색인지 아기자기하면서 멋있고 아름다웠다. 위로 올라갈수록 아름다워서 성벽에서 내려보는 풍경이 기대가 되었다. 올라가서 기념품 가게도 구경하고 카페랑 가운데 정원 같은 공간도 구경하고는 대망의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류블랴나 전체가 한눈에 들어와 아름다웠다. 리프트에서 보던 풍경이랑 비슷했지만 높은 건물 없이 비슷한 높이, 같은 색의 건물이 반복되면서 동화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추워서 잠깐 보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니 그새 해가 져서 조금 어두워져 있었다. 날이 좋았으면 일몰도 보였겠지만, 흐려서인지 어두워지기만 했다. 4시 50분인데도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해 5시까지만 보고 가기로 했다. 4시 40분, 4시 50분, 5시 이렇게 10분 간격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금방금방 어두워져서 5시에는 거의 야경과 비슷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다가 너무 추워져서 다시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갔다.
그다음은 빠질 수 없는 마트 구경을 나섰다. 와인과 간단한 야식을 사러 갔다. 슬로베니아 와인은 주로 수출되지 않고 슬로베니아 내에서 소비된다고 해서 마셔보고 싶었다. 샌드위치를 살까 하다가 카페에 갈 것 같아 패스하고 와인이랑 과자, 그리고 물을 먼저 골랐다. 그러고 상큼한 게 먹고 싶어서 요거트랑 과일 중에 고민하다 과일이 저렴하기도 하고, 맛있어 보여서 멜론+파인애플 그리고 블루베리를 샀다. 마트 구경은 언제나 재밌는 것 같다.
마지막 다리인 용의 다리로 향했다. 다리의 양쪽 끝에 용 조각상이 있어 용의 다리라고 한다. 여기도 큰 기대를 했으면 작은 용 크기 때문에 실망했을 것 같지만 나는 큰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귀엽고 신기했다.
그렇게 용 다리도 건너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카페로 향했다. 5시 반인데도 어두워져서 멀리 가지는 못할 것 같은데 이대로 들어가기는 아쉬워서 근처에 있던 리뷰 좋은 카페로 향했다. 1층만 있는 줄 알았는데, 2층으로 안내를 해주셔서 올라가 보니 강가 뷰가 보이는 자리가 남아있어 앉았다. 그러고는 라떼와 추천해 주신 케이크를 주문했다. 케이크 한 입을 먹어보니 천국의 맛이었다. 평소에도 디저트를 좋아해 자주 먹는데, 역대급으로 손에 꼽히는 케이크였다. 초콜릿에 상큼한 베리가 있어 마냥 달거나 느끼하지 않았고, 밑에 바삭하게 씹히는 층이 있어 식감도 좋았다. 원래 케이크에 바삭한 부분을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는 부담스럽게 비!삭!한 느낌이 아니라 조화로워서 맛있게 잘 먹었다. 강도 바라보고 유튜브도 보다가 숙소로 향했다.
6시 반쯤 숙소로 들어가는 길이 어두워서 놀랐다. 여기는 유독 해가 빨리 지는 기분이다. 슬로베니아는 치안이 좋은지 크게 위험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평화롭고 안전하게 느껴져 여유로운 밤 산책을 즐겼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사 온 와인과 야식을 먹었다. 슬로베니아 와인은 탄산도 강하고, 알코올 맛과 향도 강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청량해서 맛있게 마셨다. 과일도 야무지게 먹고 글도 쓰고 런던 여행 준비를 마저 하다가 자려고 한다.
슬로베니아는 큰 기대 없이 즉흥적으로 와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오는 길에 기차에서 잠도 자고 여행 준비도 해서 좋았고, 도착해서도 3시간 정도 시내를 구경했지만 작은 도시라서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운 전경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일찍 들어와서 쉬기도 하니까 편하고 행복하다. 사실 별로 한 건 없지만, 이렇게 여유로운 여행도 좋은 것 같다. 나는 기차를 타는 것도 좋아해, 오는 길에 풍경도 보고 기차에서 할 일도 하는 것도 좋았다. 오기 전까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오기를 잘한 것 같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 블레드에 갔다가 기차를 오래 타고 9시 넘어서 뮌헨에 도착하는 나름 힘든 일정이라 일찍 잠에 들려고 한다.
<오늘의 지출>
도시세 2.5유로
기념품 3.5유로
장보기 11유로
점저+카페 15.5유로
리프트 탑승권 6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