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지만 심심했던 하루
아무것도 없는 한가한 하루이다.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휴식기를 어제부터 가지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나랑 맞지 않는 것 같다. 별다른 일정이 없으니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심심하다. 그래서 갑자기 내일 또 떠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박 2일이라 짧게 슬로베니아로 떠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름만 들어본 나라이다. 독일에 와서 지도를 보다가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1박 2일로 떠날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보다가 어제부터 슬로베니아에 빠졌다. 기타로 5-6시간 정도 걸려 아침에 갔다가 하룻밤 자고 다음날 오후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슬로베니아는 자연으로 유명한데, 나는 블레드 호수가 보고 싶어 첫날 도착해 수도 류블랴나를 구경하고 둘째 날 블레드 호수를 구경한 뒤 블레드에서 출발하는 일정으로 계획했다. 왕복 기차표와 숙소. 지금 내가 가진 전부이다. ‘내일 가는 길에 알아보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단 떠나보려고 한다. 아직도 ’ 1박 2일 슬로베니아’가 어색하고 믿기지 않지만 기대도 된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큰 이벤트는 없었다. 그래도 9시에 일어나 가족들이랑 잠깐 연락을 했다. 그러고 시리얼을 사놓은 게 생각나 시리얼을 우유에 타먹고,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동유럽 여행 계획을 세웠는데, 꽤나 자세하게 세웠다. 엄마랑 둘이 여행 가는 게 처음이라서 기대와 걱정으로 꼼꼼하게 세우게 되는 것 같다. 원래대로라면 전날 세웠을 동선도 미리 생각해 보고, 시간 배분도 미리 생각했다. 그래도 빡빡한 일정은 안될 것 같아서 아직 고민이 많다.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 배가 고파져서 점심을 만들어 먹었다. 우유와 치즈가 있는 김에 토마토소스와 로제 파스타를 도전해보려고 했지만 한 달 전에 사놓은 토마토소스가 상해서 마트에 나갔다. 그러다 계획을 급하게 변경해 빵집에서 빵만 사 왔다. 디저트로 먹을 시나몬롤과 저녁으로 먹을 식사 빵을 사 왔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짜장 불닭! 매운 것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어서 집에 있던 짜장불닭을 끓이기로 했다. 이탈리아에서 못 먹은 채소를 먹을 겸 양배추도 볶고 짜장불닭을 끓여서 계란후라이도 올렸다. 한 입 먹어보니 역시 감동의 맛이었다. 매콤하면서 짜장 맛도 느껴지고 계란이랑 잘 어울려서 거의 흡입했다. 그렇게 든든하게 먹고 또다시 여행 계획을 알아보다가 낮잠을 잤다. 이게 무슨 백수의 삶이냐고 할 수 있지만 책상 옆에 침대가 있어 눕기가 좋았다.. (변명이다.)
그러고는 친구랑 2시간 정도 통화를 했다. 제일 친한 친구인데 이탈리아에 가느라 전화를 못하다가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각자 근황토크도 하고 12월 말에 같이 여행 가기로 해서 여행 얘기도 같이 했다. 한국에 있을 때 자주 만나면 일주일에 6번 만나던 친구라서 그런지 전화한 지 10분 정도 되니까 한국 카페에 와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진지하게 고민 얘기도 했는데, 둘 다 고민이 비슷했다. 요약하자면 ‘성과에 대한 욕심’인 것 같다. 일상이 반복되니 지루하기도 하고, 사실 일상적으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고 해도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성과’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슬로베니아 여행에 대해 고민하던 시간이라서 그런 고민을 같이 얘기했다. 슬로베니아에 가는 게 나의 즐거움을 위한 게 아니라 뭐라도 해야 된다는 강박, 어디라도 갔다는 성과를 위해 가는 게 아닌지, 갔다가 더 힘들게 아닌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이 친구에 대해 잠깐 얘기를 하자면 나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아는 친구이다. 그리고 나와 똑같거나 반대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비슷한 부분도 많고 반대되는 부분도 많다. 그래서인지 얘기도 잘 통하고 고민도 얘기하게 되고, 얘기했을 때도 나와 비슷한 관점에서 얘기하고 도와주니까 잘 풀리는 것 같다. 2시간의 통화도 한국 시간으로 새벽이라 끊었지만 친구와의 통화가 그렇듯 “조만간 또 전화해서 마저 얘기하자”로 끝이 났다.
저녁으로 부라타치즈에 과일을 이것저것 곁들이고 낮에 사 온 식사빵에 버터를 발라 먹으려는 야무진 계획이 있었지만 시간이 애매해지고 배도 고프지 않아 패스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고민하던 슬로베니아 기차와 숙소를 결제했다. 성과주의 때문에 피곤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생각해 봤을 때 이미 슬로베니아의 매력에 빠져 한 번은 갈 것 같아서 결제했다. 그러고 집에만 있었던 오늘 하루가 길게 느껴져 어디라도 가고 싶어 결국 결제를 했다.
그러고 씻고 글도 쓰고 이제 잠에 들려고 한다. 떠나기 12시간 전에 충동적으로 정한 여행이다. 한국에서도 이렇게까지 충동적인 여행은 해본 적이 없어서 기대도 걱정도 된다. 내일 또 재밌는 하루를 보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