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의 2/3가 지나가다
80일이라니 어느덧 2/3이 지나갔다. 60일만 되었을 때도 시간 참 빠르다고 느꼈는데, 이제 정말 시간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꽤나 후루룩 지나간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산책에 나섰다. 집 근처에 공원이 있는데, 대충 구경만 했지 본격적으로 돌아본 적은 없어서 오늘 한 번 가봤다.
공원에서 발길 닿는 대로 산책을 했는데, 푸르른 공원과 가운데 호수가 아름다웠다. 하늘에 구름이 많아 살짝 아쉬웠지만 예뻤다. 산책 조금 하다가 미리 찾아놓은 카페로 향했다. 구글 리뷰가 무려 5점 만점인 카페였다. 분위기도 감각적이고, 커피도 맛있다고 해서 가봤다.
카페 인테리어를 보자마자 너무 감각적이라서 놀랐다. 깔끔하고 트렌디해서 최근에 본 카페 중에서 가장 내 취향이었다. 사장님께서 손님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신다는 리뷰가 있었는데, 내가 들어갔을 때도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플랫화이트 한 잔을 주문하고 앉았다. 산미가 있는 커피였는데, 리뷰가 왜 이렇게 좋은지 바로 알 정도로 훌륭한, 신경을 많이 쓰신 커피 같았다. 손님은 독일에 사시는 터키 여자분, 독일 남자분 그리고 미국에서 오신 남자분이었다. 신기하게도 영어로 얘기를 하고 계셨다.
유럽에서 나는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영국에서 영어는 이해하지만, 독일어나 불어 이탈리아어 등등 다른 대부분의 언어는 알아듣지 못한다. 가게에 가면 나한테는 외계어인 말들만 들린다. 처음에는 한국과 다르니 더 외국에 있는 것 같고, 주변 사람 모두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하니 외로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 공간이 작게 있는 기분이랄까. 나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상대방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편안함도 있는 것 같다. 나만의 공간이 있는 것 같고, 하나의 버블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외로웠던 게 적응이 돼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에 대해 궁금증은 있고, 가끔 답답하고 외로운 일도 있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어느 정도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점이 주는 편안함도 큰 것 같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이 카페에서 다들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씩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한 공간 안에 모든 사람들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대화를 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손님들이 모두 대화에 참여하니 나도 괜히 책을 읽는 것을 멈추고 대화에 껴야 될 것만 같기도 하고 대화를 듣는 게 재밌기도 했다. 여기 있으면 밖에서 전화를 해도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하나의 이상한 안정감과 프라이버시가 있어서인지 한국에 돌아가는 게 아쉽기도 하다. 동시에 어디서든 익숙한 언어가 들린다는 편안함이 기대되기도 한다. 익숙한, 내가 잘 아는 환경으로 돌아간다는 기대도 있다. 카페를 가도 식당을 가도 내가 잘 아는 문화이고 방식이라는 게 주는 안정감이 있다. 여기서는 항상 외부인처럼 느껴지고 이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눈치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나의 고향이라 그런지 편안함이 있을 것 같다.
카페에서 나와서 다음 카페도 갈까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걸어서 1시간 정도 거리의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레베에 들러 연어와 귤, 토마토 그리고 치즈케이크 하나를 사 왔다. 오는 길에 미니 바게트도 하나 사서 귀가했다. 바게트에 트러플 버터를 발라 점심으로 먹고 독서모임을 준비했다.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3시간 정도 걸렸는데,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었다.
독서모임을 마치고 다시 나갈까 하다가 배도 슬 고파져서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은 연어구이에 신라면 볶음면이다. 독일에 거의 처음 왔을 때 아시안 마트에 구경 갔다 신라면 볶음면을 처음 보는 것 같아서 사봤는데, 오늘 드디어 먹기로 했다. 연어도 굽고 볶음면도 만들었다. 연어는 새로운 도전으로 뒤집지 않고 약불에서 꽤 오래 구워봤는데, 속이 회와 구이의 중간으로 익어서 맛있었다. 볶음면은 생각보다 매콤하지 않고 조금 달달해서 실망했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한국인의 소울 볶음면은 아무래도 불닭볶음면인 것 같다.
저녁까지 맛있게 먹고 독서모임 정리도 조금 하고 글도 쓰고 있다. 이제 여행 준비도 조금 하고 슬 가는 만큼 기념품으로 살 것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제 정말 혼자 여행의 끝이 실감이 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