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지 먹고 카페 갔다가 공원 산책으로 마무리한 하루
오늘도 뮌헨에서 보내는 평화로운 일상이다. 맛있는 걸 먹고 싶어서 어젯밤에 열심히 맛집을 검색했다. 그 결과 모닝 맥주+소세지로 결정되어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소세지를 먹으러 갔다.
꽤나 외딴곳에 식당이 있어서 사람이 많을까 싶었는데, 들어가니 아침인데도 넓은 식당 내부가 바글바글했다. 그리고 관광객 같은 사람은 나뿐이라서 신기했다. 처음에 아무 자리 나 앉으면 된다고 하셔서 사람 없는 테이블에 앉았는데, 갑자기 서버분이 18번 테이블로 가라고 하셨다. 내가 있는 홀이 아닌 더 안쪽 홀에 있는 테이블이라서 엥? 싶었고, 사람이 앉아있어서 당황했는데 심지어 예약석이라는 표시가 있어서 잘못 온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들은 숫자는 여기가 맞고, 직원 분께서 두 번이나 알려주셔서 분명히 여긴데 싶어서 생각해 보니 테이블에 혼자 오신 손님이 있어 혼자 온 나와 심심하지 않게? 붙여주신 것 같다. 친절하신 직원분 덕분에 맥주와 소세지를 주문하고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독일 분이신데, 고향은 독일 북쪽인데 뮌헨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서울에도 두 번이나 오셨다고 하셔서 서울과 유럽에 관한 얘기, 여행에 대한 얘기, 크리스마스에 대한 얘기 등등을 했다. 얘기를 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15년쯤 전에 북한에 갔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본 적도 없다고 어땠는지 여쭤봤다. 그분은 creepy와 weird라고 하셨다. 밤이 되면 불빛이 하나도 없이 깜깜한데 자기들이 탄 버스에서 불이 켜지니까 사람들이 불빛에 모이는 하루살이처럼 우르르 몰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건물도 축축해서 이상한 경험이었다고, 남한과는 많이 달랐다고 하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음식을 먹었다. 나는 뮌헨식 소세지인 하얀 소세지를 주문했는데, 뮌헨에 와서 먹어 본 하얀 소세지 중에 제일 맛있었다. 육즙도 촉촉해서 빵이랑도 맥주랑도 잘 어울렸다. 프레첼도 적당히 바삭하고 촉촉하고 고소해서 맛있게 먹고, 맥주는 파울라너 맥주였는데 청량감이 좋아서 라거 250ml를 마시고 밀맥주도 300ml 주문해서 마셨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 목적지는 걸어서 40분 거리에 있는 카페였다. 후기가 좋아서 저장해 놨는데, 어제 집까지 걸어가다 지나쳤는데 예쁘고 분위기도 좋아 보여서 오늘 가보고 싶었다. 플랫화이트 한 잔이랑 피스타치오 치즈 케이크를 주문했다. 커피는 적당히 맛있었는데 피스타치오 치즈 케이크가 정말 맛있었다. 위에 올라간 피스타치오 크림이 피스타치오 초콜릿인지 달긴 했지만, 피스타치오의 고소함과 부드러운 치즈 케이크가 조화로웠다. 둘 다 크게 튀지 않는 맛이라서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책도 조금 읽고 멍도 때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사실 오늘의 코스에는 조금 거리가 있는 소세지집에 가서 커리부어스트를 먹는 것까지 있었지만, 배가 너무 불러서 패스하고 공원 산책을 하러 갔다. 올림픽 공원 쪽으로 40분 정도를 걸어가서 공원 안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향했다. 와플이랑 소세지, 감자튀김과 와인 등 뭔가 있을 건 있는데 공원 크기에 비해 규모가 작아서인지 주변 나무들이 가지만 남아서인지 황량한 분위기라서 한 바퀴 구경을 하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공원에서 일몰을 보고 싶어서 어디로 갈지 찾아보다 한눈에 보기에도 높아 보이는 언덕이 있어 올라갔다. 한쪽에는 아기자기한 집들이, 한쪽에는 넓은 호수와 운동 경기장이, 한쪽에는 공장처럼 생긴 건물들이 쭉 있어 고개를 돌리면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게 신기했다. 가장 아름다웠던 부분은 역시 아기자기한 집들이 쭉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집들 너머로 하얀 눈으로 덮인 산이 보여 더 아름답고 비현실적이었다. 문득 ‘유럽이니까 건물들 너머로 산이 보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 이 풍경이 그리워질 것 같았다. 일몰까지 30분 정도 남아서 기다리고 싶었는데,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세게 많이 불어서 포기하고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와 빨래를 하고 페트병도 버렸다. 특이한 과일이 먹어보고 싶어서 마트에서 가장 낯선 과일을 사 왔는데, 알고 보니 모과였다. 저녁으로 먹을 빵도 하나 사고 다 마신 우유도 사서 귀가했다. 빨래 정리까지 해놓고 저녁을 만들기 시작했다. 모과를 먹었는데 떫어서 꿀을 살짝 뿌리고, 방울토마토와 계란에 전에 사놓은 미니 모차렐라 치즈까지 올린 호화로운 샐러드, 그리고 아까 사 온 산딸기 크로와상까지 야무진 한 끼를 만들었다. 맛도 역시 훌륭해서 배부르게 잘 먹었다. 그러고 책 좀 읽다가 씻고 글도 쓰고 있다. 내일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크리스마스 파티를 소소하게 하기로 했는데, 파티를 위해 편지를 간단하게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일 아침 기차를 위해 일찍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