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도시 비엔나
오늘 오전은 빵으로 시작한다. 첫 일정이 빈 미술사 박물관이었는데 생각보다 준비가 빨리 끝나 근처 맛집이라는 빵딥으로 향했다. 특이한 게 영업을 3일만 하시고 8시부터 12시, 4시간만 하셨다. 들어가 보니 장인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날그날 다른 빵이 나오는지 빵을 하나하나 소개해주시는데, 소개에서 왠지 모를 자부심이 느껴졌다. 우리는 데니쉬 하나, 뱅오쇼콜라 하나 그리고 바닐라 라즈베리 크로와상 하나를 주문했다. 물론 커피도 같이! 빵에 집중하시는지 커피는 한 종류였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만 있어서 우리도 그걸로 주문했다. 커피부터 말하자면,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써서 마시지 않는 나에게도 잘 넘어갈 정도로 부드럽고 쓰지 않으면서 커피 향이 훌륭했다. 다음으로 나는 바닐라 라즈베리 크로와상을 먹었는데, 크로와상은 버터 풍미가 느껴지고 부드러운데 바삭했다. 바닐라가 진하고 라즈베리 잼도 중간중간 라즈베리가 씹히고 상큼한 게 직접 만드신 것 같았다. 셋 다 너무 맛있게 먹어서 빵 하나씩 더 사들고 미술사 박물관으로 걸어갔다.
미리 예약을 해서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가장 유명한 1층으로 향했다. 0.5층, 1층, 2층이 있는데 1층에 회화 작품이 대부분 있고 0.5층에는 조각, 2층에는 코인 전시가 있었다. 여기는 바로크 양식의 작품이 많은 것 같았다. 렘브란트나 라파엘로, 카라바조 등의 작품이 있었다. 인상주의 작품과 같이 밝고 따뜻한 분위기의 풍경화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조금은 어두운 작품들이었지만, 마냥 어둡지 않고 명암의 대비가 훌륭한 작품들도 많아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어떤 리뷰에서 ‘미술에 푹 빠지고 싶다면 방문하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이 너무나도 이해되는 곳이었다. 규모가 큰 미술 작품들에 둘러싸여 있고, 이 공간 자체도 미술 전시를 위해 지어진 예술적인 공간이다 보니 공간이 주는 무게감이 있었고, 박물관 전체가 예술적이었다. 사실 미묘한 차이로 ‘예술’보다 ‘미술’에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그만큼 멋진 공간이었다. 신기한 작품들도, 익숙한 작품들도 많았다.
오늘 미술 작품을 보면서 든 생각은, 미술 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하나의 ‘추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가장 좋았던 미술 작품을 물어보면, 나는 이 작품을 고를 것 같다. Francesco Mazzola gen. Parmigianino라는 작가의 Bow carving amor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처음 인상 깊었던 이유는, 다리 밑에 있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괴롭히지 말라는 듯한 표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두 아이만 크롭 해서 언니에게 보내며 ‘나 그만 괴롭혀’라고 장난을 쳤다. 바쁜 언니가 보면서 미소라도 지을까 해서 보냈는데, 역시나 ㅋㅋ라고 보내주는 언니의 답장 덕분에 이 그림에 얽힌 하나의 추억이 생겼다. 그래서 이 작가도 모르고 제목도 찾아봐야 아는 그림이 특별해진 것이다. 미. 알. 못인 내가 조금 더 예술적으로 접근하면, 생동감 넘치는 표정에 매료되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다른 작품들도 작품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마음에 들어오는 것도 있지만 가끔 이렇게 조그마한 추억도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미술관 구경을 마치고 나는 안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여기는 카페가 유명해서 오고 싶었는데, 마침 줄이 짧아 잠시 기다린 뒤에 들어올 수 있었다. 와서 수프부터 하나 주문해서 먹었는데, 조금 짰지만 안에 든 dumpling이랑 채소들이랑 같이 먹으니 융화되는 맛이었다. 미술관에서 느낀 생생한 감정을 남기고 싶어서 글도 쓰고, 노래도 듣고 책도 읽었다. 그러다 목이 말라 코코아도 한 잔 주문해 여유를 즐겼다.
카페에서 나와 0.5층을 구경하러 갔다. 1층은 미술관 느낌이었다면, 0.5층은 박물관의 느낌이 강했다. 어두운 분위기에 화려한 장식품들이 있어 신비로웠다. 신기하게 생긴 물건이 전시관 안에서도 특별한 통에 담겨 온도계와 습도계가 있는 게 신기해 번역기를 돌려봤더니 호박과 멧돼지의 어금니로 만든 목걸이라고 적혀있어 신기했다. 펜던트나 반지, 조각상 그리고 여러 도자기 그릇이 많았지만 역알못이자 미알못인 나는 우와 하면서 지나가야 해서 조금 아쉬웠다.
박물관 구경 후 다시 친구들과 만나서 벨베데레 궁전으로 갔다. 전에 오스트리아에 왔을 때도 간 곳이지만, 작품들이 다양하고 좋아서 다시 가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친구와 둘이 보게 되었는데, 작품도 봤지만 친구랑 얘기도 많이 했다. 원래 소소하고 뜬금없는 얘기를 둘이 많이 하는데, 오랜만에 얘기하니 재밌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오스트리아 음식점에 가서 치즈와 밀가루가 들어간 오스트리아식 음식, 굴라쉬 그리고 소세지를 주문했다. 치즈와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홈메이드 맥앤치즈 같은 느낌이었다. 샐러드와 사과소스가 같이 나왔는데, 이 사과 퓌레 같은 것이 왜 나왔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하다가 결국 종업원 분께 여쭤봤더니 치즈밀가루 음식과 같이 먹는 거라고 알려주셔서 다들 놀랐다.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서 먹다 보니 한 시간 반이 훌쩍 갔고, 얘기도 흥미진진하게 많이 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카를 성당 공연이다. 카를 성당에서 하는 비발디의 사계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갔다. 클래식 공연이라서 따뜻한 실내일 줄 알았는데, 히터 하나 없는 성당 안이라서 다들 오들오들 떨면서 봤다. 원래도 좋아했던 봄을 직접 들으니 감동이 밀려왔지만, 너무 추워서 공연 중간중간 박수칠 때 목폴라의 목 부분을 올리기 바빴다. 그래도 오랜만에 클래식 공연을 들으니 귀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다들 추워서 거의 뛰다시피 트램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의 일정이 아침 6시에 시작해 일찍 자야 했지만, 식당에서부터 이어진 수다를 계속 떨다가 1시 가까이 잠에 들었다. 알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