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New Year and Happy Birthday:)
새해의 첫날이다. 오늘의 시작도 꽤나 여유로웠다. 어제 새벽 4시까지 떠들다 잤기 때문이다. 카운트다운을 보고 나서는 서프라이즈로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생일축하 뒤에 어쩌다 보니 수다가 시작되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렇게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4시가 되었고, 우리는 잠에 들었다. 12시 45분에 반고흐 미술관에 가야 했는데, 함께하는 여행의 마지막 날인만큼 잘 꾸며서 나가자고 얘기를 해서 10시에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들었다.
4시에 자서 10시에 일어나려니 잠에서 깨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친구들 모두 나 때문에 피해를 즈기 싫다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빠르게 준비를 하고 나갈 수 있었다. 준비를 하고는 브런치를 먹으러 걸어갔다. 새해라서 그런지, 영업을 하지 않는 집이 많았다. 영업을 하는 곳을 한 군데 찾아서 걸어갔는데 대기줄이 너무 많았다. 급하게 주변에 영업하는 곳을 찾아서 들어갔다. 나는 팬케이크를, 친구들은 오믈렛을 주문했다. 팬케이크는 달달하고 맛있었는데 확실히 미국식이나 일식 팬케이크와는 달리 전 같은 느낌이 강했다. 강원도 쪽 시장에 파는 메밀 전과 비슷하게 얇은 밀가루 반죽에 재료를 올려주는데, 우리는 보통 팬케이크 생각하면 달달한 디저트의 팬케이크를 생각하는데 여기는 식사의 의미가 강해서 베이컨이나 치즈와 같은 짭짤한 재료도 넣어 조합하는 게 신기했다. 친구들의 오믈렛은 딱 정석적인 맛이라서 맛있었다.
밥을 먹고 시간에 맞춰 반 고흐 미술관으로 향했다. 인상주의 그림을 좋아하고, 반 고흐도 좋아해서 기대를 많이 한 미술관이었다. 하지만 거의 들어가자마자 엄마한테 좋아하지 않는 얘기를 들어서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사람마다 하나의 화나는 포인트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인정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꽤나 많은 것을 했고 아직 오래 살지 않아 많지는 않지만 내 나름대로는 이룬 것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밖에 나가면 주로 칭찬과 인정을 받는 편이지 딱히 못하거나 혼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집에서는 다르다. 집에서는 왜 하나도 인정을 해주지 않고 뭐를 더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이유는 뻔하게도 내가 조금이라도 더 해보고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훌륭하다고 할 선택과 행동들도 노는 것처럼,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가장 가까운, 가장 의지를 많이 하는 관계일수록 인정과 격려가 중요한 것 같은데 나는 아직 부모님을 이해하기에 어린 걸까 모르겠다.
그리고 가족이 주는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아주 작은 상처라도 하루가 가라앉고 더 작은 칭찬에도 하루가 행복해지는 게 가족인 것 같다. 직은 말 한마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미술관에 가서도 가족에 대한 실망감이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미술보다도 중요한 걸 보면 말이다. 암스테르담 여행에서 유일하게 기대한 미술관이었는데 이렇게 되어 속상하기도 하다. 나도 가족들한테 좋은 영향만 줘야겠다고 다짐하는 하루였다.
그렇게 축 가라앉았지만 이대로 암스테르담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친구들과의 여행 마지막날을 보내기는 아쉬워서 발걸음을 옮겨 미술관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작품은 대표작 해바라기였다. 처음 봤을 때는 밝은 노란 색감에 예쁜 꽃 그림이라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림을 바라보다 설명을 들었는데, 그림에 나온 해바라기를 막 피어나거나 절정인 해바라기가 아닌, 지고 있는 해바라기로 그렸다고 한다. 허물어져가는 꽃이 현실처럼 보여서 더 좋아했다고 한다. 마냥 밝은 게 아닌 그 속에 의미가 있는 게 인상 깊었다.
다음으로는 집을 그린 그림이었다. 또 다른 고흐의 대표작이었는데, 나에게는 해바라기보다 훨씬 생소한 작품이었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보는 관객들이 편안하고 졸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색채를 의도적으로 밝고 따뜻한 느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색채나 배경의 그림도 많고,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그림도 많은데 단순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라서 좋았다. 나의 추구미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집을 그린 그림은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해바라기는 꽃 그림이라서 꽃이 그려진 정물화는 많이 봤고, 다른 풍경화들도 자주 접했는데 집 그림은 처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그린 그림이라 그런지, 밝은 색채 때문인지 이 미술관에서 가장 좋아한 그림이었다.
이외에 자화상도 많았고, 풍경화나 정물화도 많고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들도 많았다. 보통 반고흐 하면 딱 인상주의만 떠올렸는데 그림의 스펙트럼이 꽤나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을 그리고 소화하는 화가의 능력이야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반 고흐의 대부분의 그림은 붓터치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는데 색채가 밝고 따뜻해서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해지는 것 같다.
마지막 전시관은 인상주의 전시관이었다. 오디오 가이드에 번역이 있었는데, 특별전 이름이 한글로 ‘인상주의 만세!’라고 적혀있어서 귀여웠다. 특별전 전시관은 실내가 조금 흐릿했는데, 야외에 있는 것으로 연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야외에서 빛의 작용을 중시하며 작업을 했는데, 이를 표현하고 같은 환경에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의 조명을 바꾼다는 것이 멋있었다. 어제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서부터 미술관을 만들고 전시를 기획하는 것에 대한 관심에 부쩍 생긴 것 같다. 미술에 관한 엄청난 지식과 관심, 뛰어난 감각이 있어야겠지만 이런 전시를 기획하고 꾸려가는 게 뿌듯하고 보람 있는 일인 것 같다.
이 전시회는 네덜란드 컬렉션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밝고 섞이지 않는 색감과 남아있는 붓터치로 인해 미완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 특유의 평화롭고 밝으면서도 에너지와 생동감이 느껴지는 화풍이 내가 인상주의를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다. 그렇게 전시를 보고 나니 꽤나 기분이 좋아졌다.
전시회를 보고는 기념품 가게도 갔다가 하이네켄 박물관으로 갔다. 하이네켄은 한국에서도 마셔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기대가 되었다. 사람이 꽤나 많아서 예약을 했는데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기다려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도 듣고, 맥주의 1인칭 관점에서 영상으로 보기도 했다. 맥주의 관점이라니 신선했다. 그리고 영상이 굉장히 감각적이었다. 맥주 1인칭 영상을 보고 나오니 귀여운 150ml 잔에 맥주를 주셨다. 다 같이 짠하고 마시고 조금 더 구경하다가 본격 시음 코너로 들어왔다. 250ml 정도 되는 것 같은 맥주 2잔을 받았다. 시원하고 청량했지만, 독일의 맥주가 조금 더 깔끔해서 맛있었던 것 같다. 과일의 향과 신선한 느낌이 강해서 맛있었다. 작은 잔이지만 3잔을 마시니 꽤나 취했다. 텐션이 올라간 상태로 친구들이랑 호텔로 귀가했다. 오후부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야긴기차를 타러 가기 전에 샤워를 하고 가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친구들은 미술관이 하나 남아서 보러 가고 나는 짐을 챙겨 기차역으로 향했다.
무려 11시간이나 되는.. 기차를 타고 가야 되는데 지금 잠을 자지 않고 4시간 반이나 잘 보냈다. 중간에 한 번 환승도 해야 되는데, 내일 무사히 집에 도착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