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마지막 날 암스테르담에서 보낸 하루
2024년의 마지막 날이다. 꽤나 특별한 날이지만 우리의 하루는 조금 늦게 시작되었다. 어제 이동이 고되기도 했고, 친구 중에 새벽에 깨서 일을 한 친구가 있어서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침 10시 반쯤 일어났는데, 친구 한 명이 내일 생일이라서 미리 축하할 작은 빵을 사러 산책을 다녀왔다. 빵을 사러 간 카페의 커피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플랫화이트도 같이 주문했다. 플랫화이트는 생각보다 진했는데, 부드러운 커피의 풍미가 느껴지면서도 카페인이 강렬해서 조화로웠다. 물도 한 병 사서 오늘의 산책을 마쳤다.
산책을 하면서 암스테르담의 매력에 빠졌다. 베를린은 정말 힙합의 힙함이라면 여기는 트렌디한 힙함이 느껴졌다. 동시에 전통도 느껴졌다. 경복궁과 고층건물의 조화와 같이 여기도 오랜 역사의 현재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느낌의 도시였다. 걸어 다니며 보이는 풍경도 아름다웠고, 카페나 가게의 분위기도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돌아가보니 친구가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어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믈렛과 팬케이크, 그리고 어니언 수프와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여기는 우유가 맛있는지 카푸치노의 거품이 진하고 부드러웠다. 간이 살짝 셌지만 다들 배고파서 맛있게 먹었다.
다음으로는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큰 기대 없이 갔는데, 나의 최애 미술관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다음 일정까지 3시간 정도가 남아서 시간이 너무 뜨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정말 괜한 걱정이었다. 유럽의 미술관에 가면 이 건물이 궁전이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다 미술관으로 사용되는지, 아니면 미술관을 위해 만들어진 건물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 건물은 미술관을 위해 만들어져서인지 미술품과 조화도 좋고, 미술품이 빼곡하게 전시된 느낌이 있었다. 실제로도 가능한 모든 공간에 미술품이 있었고, 다른 미술관과 다르게 조각과 그림, 그리고 도자기나 찻잔 같은 사물이 같은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다. 자칫 답답하다고 느낄 만큼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조화로워서 그런지 층고가 높아서인지 가운데가 비어있는 구조라서 인지 과하다는 느낌 없이 눈이 쉴 틈 없이 즐거웠다. 3시간도 꽉 채우고, 더 보려면 충분히 더 볼 수 있을 정도로 재밌고 알찬 구경을 마쳤다.
미술관의 다음 일정은 렘브란트 하우스 투어였다. 렘브란트의 생가를 갤러리 형식과 자서전 형식으로 꾸며놓은 곳이었다. 미술관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새로웠다. 하지만 도착과 동시에 한국의 새해가 시작되었다. 나는 아직 오후 4시인데, 새해 문자가 와다다 날아오기 시작했다. 친구들 연락은 둘째 쳐도 연장자나 교수님과 같은 분의 연락은 빠르게 답장해야 되기에 타닥타닥 연락을 하느라 렘브란트 하우스에 잘 집중하지는 못했다.
어찌저찌 구경을 마치고는 오전에 본 마트로 저녁을 사러 갔다. 마트 안에 스시 코너가 있는데, 무려 세 분이 밥을 짓는 과정부터 하고 계신 것을 보며 장인정신에 매료되어 저녁을 스시로 먹기로 했다. 나는 그래서 고민 없이 스시를 골랐는데, 친구들은 샐러드와 오트밀 콜드파스타 등을 골랐다. 그리고 카운트다운까지 꽤나 긴 시간이 남아서 와인도 하나 사고 곁들여 먹을 안주도 골랐다.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일단 음식 얘기부터 하면, 회를 진짜 좋아하는데 유럽에 와서 한 번도 먹지 못한 회를 스시로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연어도 신선하고 와사비도 매워서 행복하게 잘 먹었다. 다음으로 과자도 먹고 까먹는 치즈도 먹고 올리브도 먹었는데, 다 와인 안주로 딱이라서 와인을 더 사 오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였다. 6시쯤 얘기를 시작한 것 같은데 11시 반까지 정말 쉴 틈 없이 얘기했다. 셋 다 맛집에 진심이라 맛집 얘기도 하고, 올해의 마지막 날인만큼 연말 결산도 같이 했다. 돌아가면서 올해의 00을 질문으로 던지고, 한 명씩 얘기라는 시간을 가졌다. 사소하다고 생각하거나 잊고 있었던 기억들도 질문을 듣자마자 떠올랐는데, 올래 일어난 굵직한 사건뿐만 아니라 소소한 일들도 떠올려보니 행복했다.
그러다 12시가 되기 30분 전에 새해 카운트다운을 보러 근처 광장으로 향했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큰 카운트다운 행사라고 하던데,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어서 갈 수 있었다. 호텔을 나서자마자 꽤나 많은 사람이 있었고, 저녁을 먹을 때부터 쉬지 않고 들리던 폭죽 소리도 더 크게 들렸다. 새해 20분쯤 전에 자리를 잡고 구경하기 시작했는데, 카운트다운을 보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빨리 갔다. 올해에 대한 아쉬움도 행복했던 추억도 내년에 대한 기대도 생기면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주로 집에서 호텔에서 보다가 밖에서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들뜬 사람들이랑 함께하니 나도 더 신나서 좋았다. 잠시 기다렸더니 금방 12시가 되었고, 온갖 폭죽이 사방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20분 동안 쉴 틈 없이 터졌고, 돌아갈 때도 계속 터졌다. 노래도 빵빵하게 틀고 폭죽도 터지니 정말 축제 같았다. 덕분에 2025년을 힘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20분 정도 보니 피곤해져서 귀가했다.
사실 오늘의 메인 이벤트는 친구의 깜짝 생일이었다. 샤워 순서를 필사적으로 맞춰 생일자를 마지막에 씻게 하고, 생일인 친구가 씻는 동안 미역국도 블록으로 끓이고 케이크도 세팅했다. 초가 없어서 핸드폰 사진으로 대체하고, 생일 노래 틀 준비도 마쳤다. 친구가 머리를 말리는 소리가 들리면 불을 끄고 문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갑자기 친구가 머리를 말리지 않고 벌컥 문이 열렸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얼른 머리 말리고 나오라고 말해놓고 준비를 마쳤다. 원래 감정의 기복이 크게 없는 친구인데, 상상도 못 했다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뿌듯했다. 그러고는 잠에 들기 아쉬워 얘기를 시작했는데 새벽 4시까지 얘기를 하다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