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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Kim Dec 14. 2019

3. 억울한 마음은 어떻게 해야 사라지는 걸까.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단 한 번도 월급에 아깝게 일한 적이 없었다. 회사 입사 후에 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고 늘 열심히 살았다. 업무적으로든 업무 외적인 조직 생활이든 주어진  역할에 맞게 맡겨진 일뿐만 아니라 눈치껏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일도 미리 해놓는 사람이었다. 성실했던 부모님에게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왔고 그게 당연히 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요새는 부쩍 바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억울하다. 잠도 자지 못하고 입맛도 떨어질 만큼 억울해 미치겠다.


  억울한 마음은 비교 대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입사 초에는 동기들과 업무량을 비교하며 억울한 마음이 생겼다. 똑같은 월급을 받는데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늘 눈치를 보는 나와 같은 동기들이 있는 반면 저녁 있는 삶을 즐기면서 편한 사람들과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기들도 있었으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때는 더 고생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걸 얻어가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의 순진했던 믿음은 곧 깨져버렸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고생하고 직급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인정했지만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팀장부터 그 위의 임원들에게는 일 잘하는 직원이나 월급루팡이나 모두 본인의 자리 유지를 위해 작동하는 똑같은 부품일 뿐이었다. 누가 더 고생하고 누가 더 일을 잘하는지는 관심없었다. 일 잘하는 직원이 무능한 직원의 몫까지 하더라도 부품의 기능만 소화하면 문제의식은 느끼지 못했다. 임원들은 직원 승격 시즌이 되면 업무 능력이나 성과보다는 부품들의 나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했고, 어린 나이에 입사했던 나는 그런 면에서 상사들에게 늘 최하위로 고려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동기들, 누락된 내 위의 선배,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후배들 다음으로 고려되는 기분은 더러웠다.


  연차가 쌓이고부터는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억울했다. 요즘 세대는 다르다며 어린 후배들에게는 내가 겪었던 구습을 강요하지 않고 세상 좋은 척하는 상사들과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과 의무는 권리 주장의 반만큼도 안 챙기는 후배들 사이에 껴서 나는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늘 움츠러 있었던 사원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 과거의 내 자신이 너무 안쓰러웠다.


  여자로서 결혼 이후의 회사 생활은 또 다른 억울한 상황을 불러왔다. 결혼한 기혼 여자 직원에 대한 남자 상사들의 관심은 2세 계획과 그에 따른 공백이었으니까.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세를 가진 여자 직원에게 임원은 천천히 하지 뭐가 저렇게 급하다고 벌써 임신이냐며 볼멘소리를 했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여자 직원들은 받아주는 팀이 없어 눈치를 봐야만 했다.

 

  나의 경우도 다른 여자 직원들과 다를  없었다. 결혼 2년차쯤 회사에서 중요한 행사를 진행하다 유산을 했던 나는 쉬지 못한 채 다음날 몸과 마음이 상처인 채로 출근을 했고, 임원은 따로 나를 불러 네가 그렇게 야근을 많이 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나는 반드시 알아줘야 할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의미 없는 고생을 하고 있던 셈이었다.

  결혼 이후에도 나는 회사 일에 소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유산 이후 윗사람들은 나를 곧 임신해서 제 기능을 제대로 못할 부품으로 취급했다. 근 10년을 내 개인 생활보다 우선순위로 두었던 회사에게 제대로 배신당한 기분에 나는 또다시 억울했다.


  제대로 된 보상과 인정을 받지 못해서 생긴 응어리진 내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풀어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나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사과라도 받으면 좀 나아질까.

이제부터라도 나도 남들처럼 대충 살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지금까지의 공든 탑이 무너질까 봐 다시 원래 성향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나는 내가 봐도 참 갑갑하다. 내 성향과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비교하는 습관부터 버려야겠지만, 사람인지라 그마저도 쉽지는 않다. 사필귀정이니 신상필벌 같은 사자성어가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초년생의 순진했던 믿음을 다시 가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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