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때로는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도 괜찮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선생님이 첫 수업시간에 칠판에 적은 문구였다. 확신에 찬 눈동자와 깔끔하게 빗질되어 귀 뒤로 넘긴 검은 머리칼이 인상적이었던 선생님은 약간은 비음이 섞인 목소리로 문구를 읊었다. 본인이 신조로 삼고 사는 문구라면서 늘 생각하고 계획하면서 멋진 삶을 살아갈 제자들을 기대한다고 하셨다.
작은 체구지만 당당한 선생님의 인상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그 문구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나는 선생님의 신조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먼저 생각하면서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때의 다짐대로 나는 생각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했고, 늘 목표를 상기하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하나의 계획이 달성되면 다음 계획을 세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특유의 끈질김으로 차례차례 원하는 바를 이뤄나갔다. 그리고 문득 스스로가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고는 했다.
목표치가 너무 높아 내 능력과 상황에 맞게 수정하면서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목표는 계획대로 진행해갔다. 대학교 진학, 미국으로의 교환학생, 학점관리, 취업, 승진까지.
한 번도 쉴 틈 없이 달려오다 보니 생각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던 10대의 나는 어느새 30대가 되어있었고, 열심히 살아온 만큼 내 양손에는 적지 않은 성취의 결과물이 들려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꿈꿔오던 30대의 내 모습과 달리 지금의 나는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성취된 목표로 한껏 고무되고 충만할 것만 같았던 내 삶은 오히려 공허함에 가깝다.
뒤돌아보면 나는 진지하게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과 여유도 없이 목표를 세우고 밀어붙이기만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인생의 방향이 지나치게 일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사는 그 행위에 집착한 나머지 그 생각이 어떤 것인지 다른 생각은 없는지 고민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당분간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삶을 살아볼까 한다. 잠시 나를 내려놓고 비운 채로 살다 보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을 찾았을 때 다시 생각하며 사는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