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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Kim Dec 22. 2019

5. 내가 먼저라는, 세상 가장 이기적인 퇴사 사유

누구나 그렇듯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일이 버거울 때, 사람이 질릴 때, 부당한 대우가 억울할 때.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주변에서 해주었던 조언의 끝은 대부분 똑같았다.

네가 먼저야.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너만 생각하고 그만둬.


머리로는 그 말이 답이라는 걸 알았지만 사실 나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게 어려웠다.

꽤 오랫동안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던 건

버티고 견딘 내 지난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게 무서웠기도 했지만,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컸기 때문이었다.

내가 먼저라는 건 내 선택으로 결국 다른 사람이 겪게 될 모든 상황을 무시해버리겠다는,

세상 가장 이기적인 말이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본인만 생각하고 퇴사한 이기적인 사람들을 많이 봐왔고,

나를 포함한 남은 사람들은 이기적인 퇴사자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더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고통은 나누면 반이지만 다른 사람의 몫까지 떠 넘겨받으면서 두배, 아니 세네 배가 되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겪은 이기적인 퇴사는 동기의 퇴사였다. 두어 달 간의 연수와 적응기간을 마치고 난 직후 배치된 팀에서 본격적으로 근무하게 된 날 그 동기는 연락이 두절된 채 잠적했다. 다들 그 동기의 행방과 사연에 대해 가장 친한 편이었던 나를 붙잡고 질문을 퍼부었지만 영문을 모르기는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며칠간 끈질기게 연락해서 겨우 연락이 닿은 그 친구 부모의 반응은 더 가관이었다. 우리 애가 싫다는데 그만 좀 하라고. 사채업자가 부당한 이자를 독촉하는 것도 아니고 체결된 근로계약에 따라 일하기로 한 사람이 나오지 않아 연락한 사람에게 그 부모는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회사의 설득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 위해 겨우 만나게 된 동기는 내게 조직 생활이 안 맞아서 힘들었고 본인이 무엇보다도 우선이라는 생각에 뒷 일 생각하지 않고 잠적했다고 말했다. 그 애를 보면서 학교 가기 싫다고 이불 뒤집어쓰고 우는 초등학생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동기가 떠난 뒤 나와 남은 동기들은 한동안 그 친구의 동기라는 꼬리표를 달고 지냈다.      


동기의 퇴사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같은 팀 내 선배가 이직으로 퇴사하게 됐다. 입사 연도도 꽤 차이 났고 사수 밑에서 혹독하게 트레이닝받고 있는 나를 신경 써주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능력 있고 똑똑하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어서 잘 지내고 싶어 했던 선배였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것 같은 이직이 성공하고 그 선배가 퇴사 통보를 하던 날 팀의 공기가 아직도 또렷하다. 모두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침묵의 공기는 무척이나 숨 막혔었다. 입사한 지 반년을 갓 넘겼을 뿐이었지만 나는 앞으로 내게 닥칠 고난을 어렴풋이 예감할 수 있었다.

2주간의 형식적인 인수인계를 마치고 퇴직 선물과 함께 퇴장한 그 선배의 자리는 남은 사람들이 분담해 메꾸어 갔다. 나도 일정량의 몫을 떠맡았는데 문제는 꼭 당사자가 떠나고 나서야 터지고 말았다. 내가 떠맡아서 하던 업무와 관련해서 떠난 선배가 누락한 서류적인 과실이 불거졌고, 책임은 현 담당자인 내가 온전히 질 수밖에 없었다. 퇴사한 사람을 불러다가 책임지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다른 상사들 중에도 대신 나서서 나를 구해줄 사람은 없었다.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뒤통수를 때리고 떠나는 후배의 퇴사다. 회사에 몇 안 되는 동문이니 잘 챙겨주라는 윗 선의 미션과 함께 부사수로 만나게 된 후배는 처음부터 호감형은 아니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고 기한은 지킨 게 손에 꼽을 정도로 게을렀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적당한 센스나 조직 적응력은 처음부터 없었고 함께 있는 동안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출근은 최대한 늦게, 퇴근은 최대한 빨리를 모토로 삼는 그야말로 돈 벌러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는 처음 맞는 후배인 데다가 동문인 이 친구를 내가 트레이닝받아왔던 방향과는 다르게 제대로 가르쳐보고 싶었다.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서면 변할 수 있다고 순진하게도 나는 믿었었다.

믿음은 오래지 않아 부서졌다. 아기 가르치듯 어르고 달래서 어느 선까지 끌고 오면 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후배는 이전보다 훨씬 더 나빠지기를 3년간 반복했다. 최근 1년 간은 책임감 없이 회사생활을 최악으로 해대고 혼내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당한 지적이 있다며 대들기까지 했다. 상사보다도 더 큰 스트레스를 주면서 온갖 병치레를 달고 살게 한 그 친구는 결국 얼마 전 퇴사를 통보했다. 1년간 유학을 준비했고 일이 잘돼서 곧 떠난다고 말하는 그 애의 무덤덤한 얼굴은 그동안의 아르바이트생보다도 못했던 행동의 이유를 한순간에 설명해주었다.   

몇 주간 그 후배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잠도 제대로 못 잔 나는 이제 그 애와 관련된 모든 것이 치 떨리게 싫다. 내 밑으로 붙여놓은 상사와 사비로 밥과 커피를 사 먹이면서까지 잘 지내보려던 과거의 내 모습까지도.

내 뒤통수를 친 후배도 결국은 본인이 먼저였고 본인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기적인 행동의 끝에 개인적인 계획은 뒤로 미룬 채 그 애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고통받을 사람은 또다시 내가 되었다.  


나 또한 꽤 오랫동안 퇴사를 고민했지만 쉽사리 행동에 옮기지 못했던 건 이기적인 선택을 차마 할 수 없어서였다. 조직 생활이 너무 힘들 때는 눈 꼭 감고 잠적해버리고도 싶었고, 실수를 고백하기 두려웠을 때는 잘못을 묻고 조용히 퇴사하고도 싶었고, 개인적인 일로 바쁠 때는 월급 루팡을 하다가 퇴사를 통보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남을 사람들을, 나를 믿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나를 인정해주었던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게 두려웠다. 퇴사를 하더라도 내가 먼저라고, 나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떠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에게 내 결정을 직접 알리고, 업무적인 문제는 해결하고, 일 손을 고려해 충분한 시간 동안 업무 인수인계는 제대로 하고 떠나고 싶다.


좋게 헤어지는 퇴사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퇴사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짐을 지울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남은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해야 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내가 먼저인 채로, 나만 생각하고 하는 퇴사는 나만 살겠다고 내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퇴사하더라도 살면서 어떤 순간에 다시 마주칠지도 모르는데 한 때는 같은 배를 탔던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헤어지는 게 상식적인 행동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와 고통은 반드시 본인이 돌려받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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