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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Jun 21. 2021

용감한 몸치 커플의 사교춤 도전

남편과 함께 춤을 배우던 시절 이야기다. 


코로나는 태양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요, 맥주 이름으로만 알던 때다. 우리 부부가 학원에 등록해서 정식으로 춤을 배운 건 3년 전이지만, 실제로 사교춤을 배우고 싶다는 관심이 싹튼 건 이보다 훨씬 전이다. 


2014년, 비엔나에 갔을 때다. 남편의 학회 마지막 날, 학회 참석자와 가족을 위한 연회에 이어 특별 프로그램으로 왈츠 강습이 펼쳐졌다. 왈츠의 본고장 비엔나에서, 그것도 시청사 건물의 화려한 조명 아래 멋진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무용수들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발을 밟아가며 때론 다른 춤꾼들도 밞아가며, 어설픈 동작으로 일관했다. 제대로 배우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지만, 훗날 꼭 정식으로 배우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충분했다.


춤을 배우겠다는 내 꿈은 이로부터 3년이 지나서야 실현되었다. 


현실의 벽에 먼저 부딪히고 말았다. 저녁 늦은 시간에 열리는 학원 강습에 부부 모두 참석하려면 당시 초등학생인 아들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했다. 매주 저녁마다 진행될 강습을 위해 애를 맡길 만한 곳은 베이비시터 밖에 없다. 하지만, 나만큼 춤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퇴근을 서둘러야 하는 남편이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라 믿을 만한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것도 당장 무리였다. 아쉽지만, 아들이 혼자 집에 있어도 되는 시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영국에서는 아이를 집에 혼자 두어도 되는 나이를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해두지 않았다. 아이의 능력을 고려해 보호자가 판단하라는 애매한 문구만 있다. 이 말만 믿고 "우리 애는 또래보다 성숙해서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애를 방치했다가는 아동 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다. 대체로 만 12세 정도를 그 나이라고 영국인들은 보는 듯했지만...그래도 나는 주변 학부형들의 눈치를 보며 때를 기다렸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등학교에 입학하는 2017년 9월을 D 데이로 잡았지만, 막상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오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 이 큰 키로 춤추다 실수하면 어떡하나?" 


이미 나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얼마나 내가 몸치인지 집에서 먼저 실험해보기로 했다. 3년 전 비엔나에서 잠시 배웠던 왈츠를 기초 동작만이라도 먼저 익히면서 말이다. "아들이 혼자 집에 있어도 되는 시기에 부부가 함께 학원에서 춤을 배우자"라며 막연하게 남편을 설득시킨 내 계획이 갑자기 몇 개월이나 당겨졌다. 집에서 춤을 배우려면 장비도 필요한데 이 장비를 다룰 도우미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남편과 아들을 설득했다.


자, 이 남자들의 활약상을 보시라. 


키 큰 아내와 춤 추느라 고생한 남편....음향/조명/사진/동영상 기사로 맹활약한 아들


집에서 춤을 배워보니 동작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았다. 우리의 연습 과정을 녹화해서 이를 보면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일도 필요했다. 춤을 추다가 멈추고 다시 추기를 계속하니 옆에서 아들은 음악이나 강습 비디오를 재생했다가 멈추고 다시 켜기를 수시로 반복했다. 사진과 비디오 촬영도 했다. 


아들은 장비 도우미뿐만 아니라 춤 파트너로도 나서야 했다. 왈츠의 기본 동작이 주로 같은 궤도에서 빙글빙글 도는 형태이다 보니, 남편이 어지럼증을 호소한 날이다. 소파에 드러누운 남편 대신 아들을 불렀다. "졸업 무도회를 미리 연습해보자"라는 핑계를 댔다. 여기서 말하는 졸업 무도회는 중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에 열리는 행사다. 미국에서 들어온 문화인 프롬 파티. 5년 뒤의 일이요, 아들은 입학도 하지 않은 학교의 졸업 행사다.

 

지금은 나보다 커졌지만...키다리 엄마 옆에서 한없이 작아 보이던 아들이다.


이렇게 집에서 춤을 배우다가 애초 계획보다 늦어진 2018년에 학원을 등록했다. 강습 형태가 제 각각이라 학원 검토에도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왈츠만 배우겠다고 찾아봤지만 대부분 사교춤과 라틴댄스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춤을 번갈아 가르쳤다. 결국, 우리는 왈츠와 폭스트롯, 차차, 삼바, 룸바, 퀵스텝, 자이브, 탱고까지 벅찰 정도로 많은 종류의 춤을 배웠다. 퀵스텝과 탱고는 춤의 진행 속도와 난이도 때문에 힘겨웠고, 나머지는 초급반 수준에서 겨우 소화해냈다.


아쉽게도 학원에서 배우던 장면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없다. 사진 찍을 여유도 없이 바쁘게 수업이 진행되었다. 학원에서 배운 것을 집에서 복습할 때마다 아들이 찍어준 영상과 사진은 있다. 훗날, 우리가 배웠던 다양한 춤 동작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자료가 되었다.


초급, 중급, 고급으로 수강생을 나누어 별도의 공간에서 각기 다른 강사가 춤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가 참여한 학원 수업의 기본이다. 이렇게 개별 수업을 시작하기 전, 지난번 배웠던 춤을 모든 수강생이 한자리에 모여 복습하는 시간을 가진다. 복습을 위한 이 단체 무대에 나서는 초급반 학생은 우리 부부밖에 없었다. 나머지 초급반 사람들은 단체 무대에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 구경만 했다. 이들은 상급반 수강생들의 능숙한 춤 솜씨에 주눅 들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 끼어 어설프게나마 춤추는 우리 부부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수강생 중 거의 유일하게 동양인이요, 나는 특히 여자 중 가장 큰 키라 눈에 띄는데도, 우리 부부는 초급반 솜씨로 주변 사람을 밟고 부딪히면서도 용감하게 무대에 섰다. 실력에 상관없이 주어진 시간에 적극적으로 연습하는 것만이 배움의 지름길이지 않겠는가.


이 정도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 나는 수업에서 배운 동작을 틈틈이 메모하고 머릿속에 기억해뒀다가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에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주말마다 남편을 부추겨 춤을 추며 복습했다. 


당시 강습을 받을 때마다 내가 기록으로 남겼던 자료들이다.




초보자들이여, 몸치 커플의 시범을 보고 용기를 가져보자.


부부가 함께 배운 춤 중에서 속도와 난이도 면에서 제일 쉬웠던 소셜 폭스트롯이다. 학원의 넓은 무대에서 추던 방식대로, 좁은 거실에서도 밀고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나는 구석에 박혀 오도 가도 못하기 일쑤다. 웃느라 촬영이 몇 차례나 중단되었다.


사교춤에는 남녀 모두 굽 있는 구두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별도의 신발을 살 필요는 없다. 특히, 여자는 하이힐을 신어야 스텝이 예쁘게 나오지만, 문제는 내 키에 힐을 더하면 웬만한 남자보다 더 커진다는 점이다. 남편은 키 큰 아내의 팔을 잡아 돌리느라 어깨가 아프고 나는 몸을 숙이고 턴을 하느라 허리가 아프다. 첫 무대부터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내 구두는 반년도 안 되어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왈츠를 배우고 싶다면 아래 비디오를 참조해보자. 왈츠의 기본 동작인 박스 스텝만 익혀도 제법 모양새가 나온다. '스텝 박스'가 아니라 '박스 스텝 (box step)'이다. 바닥에다 박스, 즉 네모를 상상해놓고 따라 움직이면 된다.

Brideas 유튜브



내가 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동영상이 있다. 엉뚱하게도 춤 강습과 무관한 클래식 음악 공연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류가 비엔나에서 공연하는 장면이다. 

André Rieu 유튜브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무용수들의 춤 솜씨에 반해서가 아니다. <푸른 도나우 강> 음악에 맞춰 무용수들이 왈츠를 추는데 조명이 제대로 잡아주지는 않지만, 무대 바로 아래 관객들도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동영상 시작 후 3분 지나서). 앙드레 류의 자유분방한 공연 스타일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유럽인들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흥이 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문화는 나도 동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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