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를 너무 밝히던 유학생에게 생긴 일 1

by 정숙진

"잠시만 신세 좀 질게."


A는 남의 집에 얹혀살기로 했다.


그가 무슨 이유로 신혼부부가 사는 단칸방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 동안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원래 살던 집을 갑자기 비워야 했고, 급한 마음에 이 부부에게 손을 뻗은 것이리라.


문제의 이 날, 부부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기숙사를 나설 때까지도 A는 계속 잠을 잤다고 한다.


마침, 기숙사에 화재경보가 울렸다.


영국의 기숙사는 정기적으로 소방 훈련을 실시하는데, 화재경보가 울리면 건물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서 정해진 위치에 모이는 것이 훈련에 해당한다. 이런 소방 훈련이 아니더라도 또 실제 화재가 아니더라도 화재경보기는 종종 울리곤 한다. 작은 토스터기에서 나오는 연기에도 반응하느라 헛경보를 날리기 때문이다.


소방 훈련이든 헛경보든, 화재경보가 울리면 기숙사 규칙상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경보기 소리에도 기숙사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거나 중간에 다시 들어가면 벌금형이 내려진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A는 계속 잠만 잤다. 다행히 불은 나지 않았다.


학생에게는 꽤 큰 금액인 벌금이 무서워서라도 밖으로 나가야 하겠지만, 종을 귀에 갖다 대고 쉴 새 없이 울려대듯 신경을 자극하면서 엄청난 데시벨로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고도 버티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계속 잤다고 하니 A는 대단한 집념의 사나이다.


얼마 뒤 출동한 소방대원이 기숙사 곳곳을 점검하다가 그때까지도 누워있던 A를 발견했다. 이로 인해 A의 소방법 위반뿐만 아니라 기숙사 불법 거주 사실까지 한꺼번에 드러났다. 나갈 기미를 안 보이던 A는 그제야 신혼부부의 집을 떠났다.




"딸하고 아내가 오기로 했어."


오랜만에 연락한 B가 전한 말이다.


영국에서 혼자 유학생활을 하던 B가 곧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다니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가족의 입국 날짜가 정해지고 그 뒤 몇 주가 지나도록 B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날짜가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와도 그대로다. 1인용 숙소에 사는 그가 가족을 맞이하려면 집부터 큰 곳으로 옮겨야 하지 않는가.


"가족과 살려면 최소 방 2개짜리 집을 구해야 할 텐데, 왜 아무것도 안 하세요?"


남편과 내가 안달이 나서 물었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막 개학한 시점이라 학생들이 방을 대거 구하고 있어서 집세가 비쌀 테니 학생들이 뜸해질 무렵까지 기다리려고. 그때 집주인과 협상하면 저렴하게 들어갈 수 있잖아."


집세가 김장철 배추마냥 금액이 오르락거리기라도 한단 말인가.


영국의 복잡한 주택 계약 제도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B의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것이다. 설령, 학생을 기다리던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일반 세입자*에게 집을 준다 해도, 그 이유만으로 집세를 깎는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도 몇 주 안에 모든 일처리를 끝낸다고?


* 영국에는 학생만 세입자로 받는 집이 있다. B도 학생이지만, 가족을 동반한 이는 이런 집에 거주할 수 없다. 계약 조건부터 학생과 일반 세입자는 다르다. 이런 법적인 사항은 나도 나중에야 알았다.


B가 여유를 부리는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지만, 그의 속마음을 우리가 알 리 없으니 갑갑했다. B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B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섰다.


B의 가족이 도착하는 날, 공항에서 이들 일행을 만나 숙소까지 태워주기로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후 들리는 이들의 근황은 나를 실소케 했다.


그가 가족을 위해 구한 집은 학생들이 단체로 거주하는 주택이다. 부엌과 화장실, 욕실까지 공동 사용하고 방에 최대 두 명만 수용하는 조건에서다. 시트콤 '프렌즈'나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주인공들이 사는 환경을 떠올리면 된다.


가족이 올 때까지 꼼짝도 안 하던 B가 어쩌다 이런 집을 구했을까?



"항상 빈 방이 있으니까 친구나 가족이 오면 공짜로 재워줄게."


T가 한 말이다.


그는 집주인 대신 열쇠를 보관하고 있다가 예비 세입자에게 방을 보여주는 일종의 대리인 역할을 했다. T가 관리하는 방이 6개나 되는데 항상 빈 방이 있으니 친구나 가족이 오면 공짜로 재워주겠노라 장담하고 다녔다.


T의 말을 엉뚱하게 확대 해석한 B는 이 빈 방을 '가족과 함께 공짜로 살 집'으로 점찍었나 보다. 몇 년씩 걸리는 학위 과정을 앞두고 2인용 숙소에서 3인 가족이 돈도 안 내고 거주하겠다고?


B와 그의 아내는 한국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직접 확인할 길은 없지만, 곁에서 본 그 아내의 씀씀이에서 그들 가족의 여유로운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B의 가족이 영국에 처음 발을 들이고는 얼마나 이질감을 느꼈겠나. 한국에서 맞벌이로 여유롭게 살다가 영국에 와서 가족 3명이 단칸방에 지내는 것도 모자라 부엌이며 욕실까지 타인과 부대끼는 삶이 과연 가족이 원하던 것인지. 더군다나 불법 거주자라는 낙인을 찍고서 말이다.


적합한 숙소를 구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B가 손 놓고 있었던 이유는 T의 선의를 악용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내 남편이라도 B에게 정신 차리라고 해야 할 판에, 자기가 나서서 가족을 그 집까지 태워주고 짐도 옮겨준 셈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남편에게 등짝 스매싱을 몇 차례 날렸다.


B의 행동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그로 인해 이들 가족에게 닥칠 문제를 남편도 나도 제대로 예상치 못했다. 그러기에는 영국에서의 경험이 둘 다 부족했다. 이를 예상했다면, 남편에게 내려질 등짝 스매싱은 훨씬 강했을 것이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커버 이미지: Photo by Tengyar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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