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렇게 거칠게 애정 표현을 해야 하나요?

by 정숙진

"아들아, 너는 여자에게 저렇게 하면 안 돼!"


드라마를 보다가 깜짝 놀라서 옆에 있던 아들에게 소리쳤다. 사실 아들은 아무 잘못 없다.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던 중이다.


드라마 제작진에게 미안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드라마 첫회부터 티격태격하더니 곧바로 사랑의 감정이 싹튼 남녀 관계도 사실 터무니없지만...어쨌건 픽션이고 드라마니까 이것까지는 이해한다. 비품 창고 같은 곳에서 두 남녀가 마주치자 유연석이 갑작스레 서현진에게 기습 키스를 하는 장면이다. 거부하는 서현진의 손을 억세게 잡은 상태다.


가족이 함께 보는 TV 화면 속 애정 표현에 우리 부부는 관대한 편이다. 한국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고 수위가 높은 영국의 방송 문화에 길들여진 탓이다. 하지만 폭력이나 욕설만큼은 경계하는 편이다.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남성이 저지르는 폭력은 그리고 이를 애정 표현으로 미화한 내용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들에게 왜곡된 이성관을 심어줄까 싶어서다. 앞서 내가 소리친 장면은 드라마 제작진이 젊은 남자의 서툰 애정 표현이라 여겼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엄연한 폭력이다.


세상에 나오는 모든 드라마와 영화를 내 입맛대로 혹은 내 자식에게 이롭게 만들도록 강요할 수도 없고, 또 그런 작품만 보겠다고 다짐할 수도 없다. 아들이 볼 방송을 첫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사전에 일일이 검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같이 보면서 아들에게 주의를 주는 일뿐이다. 여자에게 혹은 약자에게 저러면 안 된다고. 남자가 아무리 유연석처럼 잘 생겨도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아들에겐 웃으며 말했지만, 진심이다. 잘 생겼다고 폭력이 용서되는 건 아니니까).


두 사람이 남의눈을 피해 스스로 창고에 몰래 숨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우연히 남녀가 마주친 공간에서 남자가 일방적으로 여자를 밀어붙이고 키스를 하는데 그런 모습에 여자가 감동해야 하나? 결국 그러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 드라마의 법칙이겠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성추행범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


한류 열풍으로 인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야 너 이거 봤냐?"라며 외국인 친구가 건네는 비디오와 DVD 세트로 한국 작품을 접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주로 아시아계에 한정되어 있던 한류 팬들이 이제 전 세계로 널리 확산된 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여성 대상 폭력을 불편해하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언급한 <낭만닥터 김사부>만 문제가 되는 장면을 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들의 시청 연령도 고려하고 역사 공부도 시킬 겸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한국 드라마로 주로 사극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최근에야 현대극을 보게 되었고 그중 하나가 이 드라마다.


* 첫회만 보고 이 드라마를 그만두었다. 위 장면 때문은 아니고, 내가 의학 드라마를 보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려서다. 피가 흥건한 수술 장면, 위급한 상황, 수술 도구까지 매 회 본다는 건 내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가족들도 동의했다. 현대 의학 드라마를 <전설의 고향> 보듯 하는 나를 불편해할 것이 뻔하다.




험한 세상에서 딸 키우는 부모의 걱정도 있지만 아들 키우는 부모의 걱정도 있다.



"여자애가 마구 들이대면 아들이 어떻게 당해내겠어요?"


영국에서 아들을 키우던 한 여성의 말이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마주친 여학생들의 자유로운 옷차림과 거리낌 없는 행동에 당황한 눈치다. 영국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여학생의 모습일 뿐인데 한국 정서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걸 여자가 들이댄다고 표현하는 것도 사실 그릇된 생각일 수 있다. 어쨌건, 영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아들이 영국에서 만난 여자의 행동을 잘못 해석하면 곤란해질 수 있음을 걱정하는 것이리라.


이 아들 엄마의 걱정에 100%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같은 아들 키우는 엄마로서 약간은 다른 관점에서 걱정하는 건 사실이다. 청소년에게 왜곡된 이성관을 불러일으킬 만한 방송을 볼 때 특히 그런 걱정이 든다. 그래서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작품 선정에 시간을 많이 들인다. 가족과 함께가 아닌 아들 혼자 TV를 시청할 때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여성에게 강압적으로 혹은 일방적으로 애정 행위를 하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음을 드라마와 영화 제작진이 알아주면 안 될까?


커버 이미지: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장면, blog.naver.com/tpfmelsdut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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