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과 가족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그대에게

by 정숙진

"제 아내한테 돈 버는 방법 좀 가르쳐주세요."


오랜만에 만난 A가 나를 보자마자 건넨 말이다.


하필 이날 A의 아내를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의 아내와 반가이 인사 나누려던 순간, 너무 당황한 나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옆에 서있는 아내의 존재는 무시한 채 말을 하는 A의 무심함이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취업 전문가도 아닌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싶어서다. 고국에서도 취업난에 시달리는 판에 해외에 나와서 누군가의 가르침 하나로 금방 취업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지금처럼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기 전 나는 3년가량 영국의 회사에서 근무했다. 공부하는 남편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장롱면허 출신이 운전대도 잡았다. 영국의 도로는 물론이고 영국 영어와 문화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영국에 온 지 반년이 조금 지나서 일이다.


남편의 공부나 일 때문에 영국에 함께 오는 여성들이 초창기에 택하는 행보와는 조금 다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이라면 부부 모두 공부에 임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내는 육아와 살림에 전념한다. 해외 사무소로 파견되는 경우 가족에게는 취업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남편의 해외 근무 길에 따라온 여성은 한국에서의 경력과 상관없이 일시적으로 전업 주부로 산다. 그러니 나처럼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곧바로 일하는 여성이 그다지 흔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무턱대고 내 남편을 부러워하는 남성도 있다.


"아내가 버는 돈으로 공부하는 건 남자들의 로망이죠."

"남편은 공부하고 아내는 직장 다니고 이 집 완전 재벌이네."

"형수님이 돈 벌어다 주시니 든든하겠어요."


남편이 영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우리 부부에게 자주 따라붙던 말이다. 이 정도면,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남편이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발언이니 기분 나빠할 이유도 없고 또 누군가에게 미안해할 일도 없다. 하지만 앞서 나온 A처럼 옆에 있는 아내의 입장은 무시하고 아내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을 하면 듣기 거북하다. 아무 잘못도 없는 나 또한 죄책감을 가지게 만든다.


나는 영어를 전공하고 애도 없는 상태라 영국에서 곧바로 취업하기에 더 유리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에 오자마자 백여 개 업체에 이력서를 보내고 자선단체에서 자원봉사도 했다. 집안일과 육아에 대해 남편과 오랜 시간 충돌하고 대화를 거쳐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르렀다. 이런 사전 작업 없이 한국에서의 전공과 경력만 믿고 영국에서 곧바로 취업하기는 어렵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단순히 누구 아내가 취업했다는 소식만으로 자신의 아내에게 같은 기대를 걸 수는 없다. 낯선 해외생활에 적응하며 육아와 살림을 하는 아내에게 무작정 취업을 강요하는 말은 설령 농담이라도 잔인하지 않은가.



"너도 숙진씨처럼 돈 벌어 와."


아내에게 이렇게 자주 말한다고 B가 자랑스레 들려줬다 (이번 글에 등장하는 이들을 편의상 A, B, C, D로 구분했다).


결혼하고 난 뒤 '집에서 놀기만 하는' 아내를 정신 차리게 해주고 싶어서란다. B는 영국에서의 학업을 마치면 한국의 직장으로 복귀해야 한다. 복귀 날짜까지 그리 많이 남지도 않았다. 그런 시점에 그의 아내가 영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는 건 효율적이지 못하다.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한 여성이다. 더군다나 첫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 중이다. 한국이든 영국이든 당장 직장을 다니라고 강요할 수만은 없다.


B는 지금껏 내가 본 한국의 남성 중 가장 가부장적이다.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하고, 남편의 말에 아내가 반박하거나 대화 중 끼어들어서도 안 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부 맞벌이는 당연하다는 논리다. B의 모순적인 태도는 그의 나이와 털털한 성격과도 어울리지 않아 보여, B가 처음에는 농담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의 아내가 직장에 복귀해 바쁘게 살더라도 B가 집안일과 육아에 참여할 것 같지는 않다. 남편의 부당한 구박을 받으면서도 직장으로 복귀할 꿈을 접고 있는 그의 아내가 측은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명해 보였다.


입장을 바꿔보자.

아니 입장이 같다고 할 수도 없다.

육아와 살림은 아내에게 맡기고 영국에서 공부한 이들이여!

학위를 받고 나면 다른 영국인들과 경쟁하여 자신 있게 영국에서 취업할 수 있겠는가?



"우리 애는 왜 이렇게 아픈 데가 많은지 몰라."


돌쟁이 아들을 키우는 C가 한 말이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설명도 없이 무턱대고 맨날 애가 아프다는 것이 C의 하소연이다. 아이가 아프면 걱정하고 신경 쓰는 것이 부모 아닌가. 주변에 하소연할 데 없어서 어쩌다 깊은 속내를 털어놓았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잔병치레 안 해서 좋겠구나'라며 나를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내 아들도 병치레를 하고 응급실도 다녀온 적 있지만 내가 그런 일로 불평을 안 하니 아무 문제없구나 여기나 보다. C의 눈에 내 아들은 착하고 뭐든 잘 먹으니 더욱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리라.


몸이 약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 늘 병에 시달렸다고 불평하던 C다. 아픈 몸을 물려받았다고 불평하던 사람이 그런 '아픈 몸'을 아들에게 물려준 셈인가? 원인이야 무엇이든, 잔병치레가 많다고 아들을 원망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또한 남의 집 아이의 건강 상태와 비교해서 자신의 아이를 탓할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엔 건강하게 잘 커주고 있는 C의 아들인데 말이다.


C는 자신의 몸도 아프다고 하면서 건강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특히 술을 즐긴다. 임신 중에도 술을 적당히 마셔줘야 한다며 강조하던 이다.



"우리 애들은 입맛이 너무 까다로워, 부모는 안 그런데 말이야."


남매를 키우는 D의 말이다.


집에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는데 놀이에 몰두한 D의 두 남매가 식탁에 차려진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옆에 있던 내 아들은 뚝딱 밥 한 그릇을 다 비운 상태다. 나중에 배고프면 아이들이 먹겠지 싶어 상을 치우려 하는데 D는 그래도 끝까지 먹이려 한다. 집에서 싸들고 온 간식까지 먹으라고 아이들에게 강요한다. 자녀의 먹거리에 대한 걱정은 부모라면 당연하니 별 신경은 안 썼다.


몇 주 뒤 D의 가족이 또 우리 집을 방문하던 날 나는 스파게티를 대접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아이들 모두 후다닥 먹어치우고 방으로 몰려 간 뒤다. 그때까지도 포크를 쥐고 있던 D는 '고기 냄새가 나서 더 이상 못 먹겠다'며 불평인지 사과인지 모를 말과 함께 음식을 남겼다. 사람에 따라서는 음식을 남기는 것이 죄라고 여겨 다 먹지 못하는 이유를 밝히려 할 수 있다. 하지만 '배부르다' 등 에둘러댈 수도 있지 않나? 내 요리 솜씨가 변변치 못한 건 사실이지만 저렴한 냉동 쇠고기로는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키기 힘들었나 보다. 그 입맛 까다롭다는 D의 남매는 한 그릇을 싹 다 비웠는데 말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Karolina Grabowska from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