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만난 A와의 대화가 기억난다.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으면서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자연스레 서로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들 하나가 있다고 내가 말했더니, 대뜸 '더 늦기 전에 딸을 낳아야 한다.'라고 A가 강조했다. 첫 만남에서 곧바로 반말 섞인 어투로 대하는 태도며, 아직도 출산할 여유가 있다고 짐작하는 걸 보니, A가 나를 어리게 보는 듯했다.
내 나이를 밝혔더니
'그렇게 나이가 많은 줄 몰랐다'라고 대꾸하며
A가 잠시 사과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사과가 아니라 한술 더 뜬다.
날카롭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양'이라는 단어를 세차게 강조하는 A의 외침이 부담스러웠다.
굳이 내 나이와 상황까지 밝혀가며, 둘째를 가질 계획이 없다고 길게 해명해야 하나?
그것도 만난 지 30분도 안 된 상황에서?
기분 좋게 참여한 만남에서 명절 때 친척 어른이 하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나?
누구든 가족에 관한 주제만 나오면 '둘째 안 낳아요?'라고 내게 물어오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대화도 내가 마흔에 접어들면서 사라졌다. 설령, A처럼 내 나이를 착각한 이가 있다 해도 나의 현 상황을 설명하면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A는 이런 통념을 완전 무시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녀 두 명은 반드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말 왜 이럴까 싶다.
나는 기회를 봐서 자리를 옮길까 고민도 했지만, 마침 이날 우리가 모인 장소는 테이블마다 사람으로 꽉 차서 옮겨 다닐 틈이 없었다. 최대한 내 감정을 숨기고 침묵으로 자리를 지킬 수밖에. 체념하는 자세로 옆에서 듣고 있자니 A가 측은해지는 면도 있었다.
A가 습관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반복되는 수면제 처방 요구에 주치의가 경고를 하자 '내 몸은 내가 잘 안다'며 코웃음 친 일화를 자랑스레 늘어놓기까지 했다.
영국에 온 이후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도 힘겨운데 남편의 잦은 출장까지 겹친다고 한다. 육아마저 거의 혼자 도맡아 하면서 겪는 삶의 고단함과 스트레스에 대한 토로도 이어졌다.
타지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육아에 지친 데다 남편의 무심함까지, 처음 만난 이에게 하소연해야 하는 A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두 아이를 향한 비난만큼은 곱게 들리지 않았다. 이제 사춘기로 접어든 아들과 그 보다 두 살 어린 딸을 곁에 둔 채, 가족 간 발생하는 크고 작은 분쟁을 줄줄이 쏟아냈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퍼붓는 비난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옆에서 듣든 말든 신경도 안 쓰며 말이다.
어쩌면 A는 수면제 복용보다는 우울증 치료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으로는 내 말이 먹힐 것 같지도 않고 나는 의료 전문가도 아니지 않은가. 또한 어떤 말이든 전할 기분이 아니었다. 당장 그 자리를 벗어날 기회만 노리고 있을 뿐이다.
A에게 따지고 싶었다.
애들 때문에 힘들고 지쳐서 수면제에 의존해 산다면서
왜 나 보고는 입양이라도 해서 애 둘을 키우라는 건가요?
당신도 힘들어하는 일을 말이죠?
물론 마음속으로만 되새긴 말이다. A로부터 내가 받는 스트레스보다 A가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이 더 힘겨워 보였기 때문이다.
몇 차례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이날 첫 만남을 가진 B에게서 들은 말이다.
서로 말이 잘 통한다 싶었는지 B는 마음속 간직하던 고민까지 내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상대의 말에 잘 귀 기울여주는 편이긴 하지만 이런 속마음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 않은가. 솔직히 당황스러웠지만 잠자코 듣기로 했다.
가까운 친척의 권유로 부동산 투자를 시작한 이야기가 나왔다. 시세 차익으로 재미를 본 적도 있지만 대출금 상환 기간이 다가오면 늘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부동산 투자 전문가인양 행세하면서 왜 나를 부추기느냐 말이야?'라며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의 말까지 쏟아냈다. 지금 내가 지인과의 만남을 가지는 건지 인생 상담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친척이 강제로 돈을 뺏어간 것도 아니고 본인이 스스로 결정해서 투자한 일에 왜 타인을 탓하나, 싶었다.
가족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고민에 이어 친척의 말만 믿고 시작한 부동산 투자로 인한 문제까지... 첫 만남치고 부담스럽다 싶은 이야기가 몇 차례 이어지다 드디어 대화의 초점이 내게로 옮겨왔다. 공부하는 남편을 배려해 나 혼자 직장을 다니며 생계를 책임지던 당시 내 사정을 들려줬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으니 검소하게 생활해야 했다. 이 때문에 남편과 부딪히기도 했지만, 한정된 시간과 재력으로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 여겼다.
내 이야기를 듣던 B가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라도 떠올랐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꺼낸 말이다.
남편과 부딪혀 가면서까지 돈에 쪼들리지 말고 부동산 투자로 여윳돈을 확보하라는 뜻이다. 지금처럼 물가 폭등에 금리 상승으로 가계에 압박이 들어오던 때가 아니다. 코로나의 영향을 받던 시기도 아니다. 유례없는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은행에만 돈을 맡겨두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 보던 때다. 이런 시기에 부동산 투자를 권유하는 건 오히려 적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투자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만든 친척을 원망하고 대출금 갚을 생각에 잠 못 이룬다고 하던 B가 아닌가. 더군다나, 공부하는 남편을 두고 외벌이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환경에서 부동산 투자라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저금리 시대에 은행 대출이면 뭐든 가능하다는 논리인가? B를 잠 못 들게 하는 고민도 이런 단순한 판단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힘겨워하는 일이라면 남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안 될까요?
커버 이미지: Photo by Mikhail Nilov on Pexels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