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정보까지 안 주셔도 되는데요

영국에서 만난 사람

by 정숙진

"내비가 찍어주는 거 따라가지 말고 내가 알려주는 도로 타고 와"


운전해서 집을 찾아간다고 했더니 이 사람이 갑자기 자기 집 근처 도로를 안내하기 시작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이 살던 동네다. 그런데도 굳이 자기 집에 이르는 길을 설명해주겠다고 5분 이상이나 전화기를 붙들고 말을 이어간다. 지인과 내가 처음 만났던 장소이고 서로의 집에 자주 들락거렸기에 내게는 익숙하다고 또한 내비도 있지 않냐고 말해도 막무가내다.


불필요한 정보가 쏟아지면 이를 일일이 메모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무엇보다 500여 km나 떨어진 지역이다. 다섯 시간 넘게 운전해 가다가 마지막 10여 분 거리를 이 사람이 알려준 대로 머릿속 혹은 어딘가에 저장해뒀다가 이를 내비게이션 대신 활용하는 건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주변에 공사가 있어서 차를 우회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도로가 변경된 것도 아니다. 설령, 공사가 진행되거나 도로가 변경되었다 해도 시스템이 알아서 새 길을 찾아주거나 도로 사정을 보고 운전자가 대처하면 된다. 영국의 도로는 공사가 시행될 때마다 안내 표지판과 임시 신호등이 잘 운영된다. 예상보다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낯선 곳이라도 표지판만 잘 따라가면 목적지로 향하는데 문제가 없다.


내가 알아서 가겠노라 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보를 주입하면 어떡하냐고. 더군다나, 중요한 임무를 위해 나서는 길이라, 상대와 내가 진지한 이야기를 더 나누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하찮은 정보에 시간을 낭비하는 바람에 곤란해질 때가 종종 있다. 막판에 내가 다급하게 상대에게 다시 연락해 확인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 동네 맛집을 내가 알거든..."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더니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들렀던 여행지의 맛집이라며 주소를 보내왔다.


"오, 이런 어쩌나, 그 여행지는 이미 벗어났는데요 (아까도 그렇게 밝혔는데)."


나의 이런 해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식당 메뉴 중 무엇이 맛있고, 근처 어디에서 사진을 찍으면 좋다고까지 친절히 알려준다. 자기가 큰맘 먹고 보내는 정보이니 내 사정이야 어떻든 끝까지 들으라는 소린가? 이렇게 나오면 나는 정말 대꾸할 구실이 없어진다. 상대가 신경 써서 보낸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이미 지나쳐온 여행지에 다시 가야 하나, 그런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평소 카톡을 통해 소소한 메시지를 꾸준히 주고받던 사람이다. 내가 잠시 연락이 뜸하자 내 안부를 물어왔다. 마침 연락이 닿은 시간에 XX시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고 알려줬다. 여행을 끝냈다고 하는데도 그 동네 맛집 정보를 보내온 것이다.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동 도중에는 타인에게서 오는 메시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보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매번 숙소로 혹은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확인한다. 여행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남편이 파래무침을 잘 먹던데, 이렇게 만들면 돼"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인사도 없이 요리법을 보내온 사람이다.


남편 회사의 한국인 직원들끼리 전날 모임을 가졌다. 한국 지사에서 영국 본사로 직원이 파견 나오거나 또는 복귀할 때 이런 모임이 주로 열린다. 대체로 식당이나 술집에서 모임을 가지지만 이 날은 동료의 집에서 모였다.


다음 날 이 동료의 아내가 대뜸 요리법을 보냈다. 내 남편이 파래무침을 맛있게 먹었으니 나더러 자기가 만든 방식대로 해주라는 뜻이겠지. 내가 보기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인터넷에서 복사해 온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다.


나와 남편 둘 다 식성이 좋다. 특히 나는 식당 사장이 감탄할 정도로 맛있게 잘 먹는다. 실제 음식 맛과는 상관없다. 시골에서 고모, 삼촌까지 13명의 대식구가 어울려 살던 어린 시절 생긴 습관이다. 밥투정하면 어린아이라도 당장 숟가락 뺏는 살벌한 환경이었다. 그런 나를 모르는 사람은 '내가 정말 맛있어서 잘 먹는구나' 오해하기도 하지만, 그런 오해는 내 인생에 별 지장이 없어서 내버려 둔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남편도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편이다. 어떤 때는 게걸스럽다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식가다. 나이 지긋한 어른에게는 칭찬받는 태도다.


이런 남편이 그 집 파래무침이 유별나게 맛있어서 잘 먹은 건 아니라 본다. 정말 그랬으면 내게도 그런 말을 전달했을 테고 어떻게든 재료를 구해서 만들어보자 했을지 모른다. 특히 토종 한국인 입맛인 남편이 파래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을까. 영국에 사는 동안 먹어본 적 없는 반찬이기 때문이다. 동네에서만 장을 보기에 한국의 다양한 식재료는 구하기 힘들다. 그런 형편에 남의 집 밥상에 오른 파래가 반가워 잘 먹은 것일 뿐이다.




요리법이든 여행 정보든 이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고 빠르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상대가 굳이 요구하지도 않고 어떤 때는 사양하는 정보라면 마음속에만 간직해두고, 서로에게 더 중요한 일과 대화에 집중하면 안 될까?


커버 이미지: Photo by Andrea Piacquadio from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