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음식에 대한 강요 없이 살 수는 없을까요?

by 정숙진

"숙진씨, 다이어트해?"


오늘 하루도 안 빠지는군. 지난번에는 "다 같이 먹는데 왜 혼자만 튀냐?"라고 하더니.


나른한 오후에 직원들끼리 사다리를 타서 간식을 먹는 시간이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떡볶이와 순대를 먹는 직원들 틈에 나 혼자 녹차를 마시고 있다. 이상도 하지. 사다리 게임에 걸려 돈도 내고, 자발적으로 심부름까지 하고 와서는 그 맛난 간식을 손도 안 댄다고? 다들 의아해하면서도 다행히 잘 먹어주는데 유독 김대리는 내가 못 마땅하나 보다.


나는 세 끼 식사만 하고 간식으로는 과일과 야채만 먹는 습관을 유지하던 중이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영국에 살고 있는 지금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지병 때문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엄마의 영향을 받았다 할 수도 있고, 학창 시절 위염을 달고 살던 내 경험 때문에라도 먹거리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다이어트는 아니고, 제 식습관이라서요. 오후에는 간식을 안 먹고 저녁만 먹거든요."

"이걸 저녁으로 해서 먹으면 되잖아"

"저녁은 저녁 시간에 먹을게요"

"지금 저녁 먹고 나중에 안 먹으면 되잖아"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이 자리에 어머니 지병이 어떻고, 내 위염이 어떻고 길게 늘어놓을 수는 없다. 내키지 않지만 상대가 자꾸 말을 거니 예의상 답할 뿐이다. 나의 '튀는' 식습관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려고 하는데 자꾸 들춰내려 한다. 나 때문에 누군가 불편해하는 건 알지만,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식습관이 남과 다를 뿐이지 않은가. 먹고 싶은 시간에 먹겠다는데 왜 자꾸 강요하는 건지.


그 후로도 사무실에서의 사다리 타기는 주 2-3회 꾸준히 이어졌고 나에게 메뉴가 걸릴 때도, 안 걸릴 때도 있었다. 나는 먹지도 않지만 간식비를 냈고, 간식 심부름까지 늘 자처했다. 좁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사무실을 잠시나마 벗어나는 기회가 오히려 달가웠다. 간식을 안 먹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는지 누군가의 제안으로 귤과 사과 등이 사다리 메뉴로 등장했다. 덕분에 나도 일부나마 간식 먹는 대열에 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김대리의 '제대로 간식 먹으라'는 회유인지 협박인지는 계속 이어졌다.




"괜찮은 뷔페식당이 있는데 오늘 거기 가지요"


오랜만에 만난 M이 이렇게 제안했다. 잡식성인 나는 잠시 귀가 솔깃했지만, 이내 뷔페는 안 되겠다고 사양했다. 식탐 많은 우리 집 남자들은 분명 뷔페에서 본전 뽑겠다 작정하고 포식할 것이고 그러면 다음 날 분명 탈이 난다. 남편의 출장 기간 중 M의 집에 들렀다가 내일 타 도시로 이동할 예정이다. 일주일 내내 계속 이동하는 일정인데 도중 누군가 배탈이 났다가는 출장이고 뭐고 모두 곤란해진다.


이런 내 해명에도 M은 우리 가족에게 정말 좋은 걸 먹이고 싶어 그런다고 강조한다. 솔직히, 집을 방문한 손님을 위한 최고의 대접은 집밥 아닌가? 그럴만한 사정이 안 되면 적어도 손님이 부담스럽다는 곳은 강요하지 말아야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손윗사람이라, 그리고 과거에도 우리가 식사비를 먼저 낸 적 있으니 이번에도 우리를 핑계 삼아 비싼 식당에서 먹어보자 M이 작정한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힘겨운 협상 끝에 다행히 근처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고기도 먹고 볶음밥도 먹은 후의 일이다. 뷔페식당에서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 집 대식가들은 역시나 고깃집의 저렴한 가격을 믿고 어마어마한 양을 먹었다. 내일 괜찮아야 할 텐데.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M이 우리의 발길을 다시 잡는다. 근처 구멍가게로 들어가더니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몇 개 집어 온다. 그러고는 추억의 맛이라며 우리더러 먹어보라 한다. 영국에서 온 우리 가족에 대한 배려라 여기겠지만, 포식한 후 추억의 음식이 무슨 소용이람?


나는 배가 부르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내 아들에게도 먹어보라 건네는 것마저 내가 거절해야 했다. 이미 실컷 먹었고, 배탈 날 것이 두려워 뷔페식당을 마다한 것이니 더 이상 안 먹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과식하면 배탈 난다는 내 말이 과장으로 들리나? 실제로 아들이 배탈 나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여행을 중도 포기한 경험이 있다. 초대받은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아들이 차에서 게워낸 적도 있다. 학교에서 배탈이 나 조퇴한 일도 있다. 이 모두가 무작정 많이 먹으라 권하는 사람과 아들의 식탐이 빚어낸 결과다. 음식을 강권하는 이를 만나면 나는 그들보다 더 강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말해도 M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오늘은 예외로 하면 되잖아요. 먹게 해 주세요."


뭘 예외로 하라는 거지?


오늘은 예외로 배 터져 죽을 각오하고 먹으라고?

배탈이 나면 나머지 일정은 예외로 하라고?

남편의 출장까지 취소하라고?


늦은 시간까지 그토록 많이 먹고도 또 먹겠다는 의지도 황당하지만, 먹으면 안 된다는 사람에게 징그럽게 강요하는 M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나는 길거리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발 먹는 것 좀 강요하지 말라고!




음식을 강요하는 사람과의 대화도 힘들지만, 술을 강요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몇십 배 더 괴롭다. 술 취한 사람과의 이성적인 대화부터 불가능하다. 술 마시던 중 벌어진 일이라 이들은 자신의 언행을 기억하지 못한다. 혹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잡아떼거나 자신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내린다.



"술 못 마신다고? 에이, 내숭 떨지 마. 잘 마시게 생겼는데."

술 잘 마시게 생기려면 도대체 어떻게 생겨야 하는가? 다른 사람의 시선과 기대에 맞춰 진짜 잘 마셔야 하나?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 제맛이지"

남자들과 술자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말을 한 번씩 들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20대를 보낸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주변에 이런 사람은 꼭 있었다.



"숙진씨 술 취한 연기 잘하던데요"

같은 술자리에 있던 동료가 비아냥인지 감탄인지 모를 투로 내게 한 말이다. 신입사원에게 고량주를 돌리며 대작을 강요하던 상사와의 술자리다. 맥주 한 잔도 못 비우는 나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척하며 잔을 쏟아내 고량주 고문을 피했다.



"술도 안 마시고 어떻게 직장생활을 한다는 거죠?"

네, 직장생활 잘했습니다. 술자리에서 주변 사람을 괴롭히거나, 폭음으로 쓰러져 다음 날 결근하거나 혹은 겨우 출근해놓고 술 냄새 풍기며 속 쓰린다 투덜대는 사람보다 낫죠.



"임신부도 적당히 술 마셔주면 태아에게 좋아"

애 엄마가 이런 조언을 해줬다.



"어차피 술 배울 텐데 집에서 어릴 때 배우면 좋잖아"

자신의 여섯 살 난 딸에게 맥주를 한 모금씩 주며 이런 말을 한다. 알코올 의존증이 있다고 스스로 밝힌 것도 모자라 술 때문에 객사한 친척이 두 명이나 있다고 한 사람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Elevat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