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폐경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by 정숙진

"폐경이 되면 여자 몸에 뭐가 안 좋아요?"


최근 아들이 내게 한 질문이다.

어쩌다 이런 질문이 나왔냐 하면...


나의 독서는 대부분 오디오북에 의존한다. 주로 거실이나 부엌에 서서 운동이나 일을 하면서 스마트폰 앱을 틀어놓고 듣기에, 가족 중 누구나 지나가는 길에 내 독서 과정을 엿들을 수밖에 없다. 간혹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잔인한 묘사가 나오면 부담스럽지만, 최근 내가 선택한 책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옆에서 들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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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폐경에 대한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을 여자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폐경 또한 주변 사람, 특히 가족의 협조와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들과 남편에게 내가 이런 책을 읽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무엇보다 내가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임을 알렸다.


그러다 보니 아들에게서 질문이 나온 것이다. 여성의 생리가 끝나는 것 말고 뭐가 있길래, 엄마가 책까지 읽으며 폐경에 대해 공부하는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들은 '폐경'이라는 단어 대신 'Menopause'를 썼다. 내가 틀어놓은 앱에서도 영어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아들 입장에서 복잡한 개념은 영어가 먼저 자리 잡아 있다.


내가 이용하는 오디오북 앱에서 추천 도서 목록을 정기적으로 보내주는데, 어느 날 'Menopause'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내 나이와 성별에 맞게 추천한 책임을 알면서도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나 아직 폐경기 아니거든."


읽기 싫으면 무시해버리면 되잖아. 족집게 같은 책 추천을 위해 지금도 어디선가 열심히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을 담당자나 AI에게 화낼 필요가 무엇인가. 폐경기가 시작된 여성에게도 필요하지만 폐경기를 미리 대비하고자 하는 여성, 폐경 전후 증후군 (Perimenopause)을 겪는 여성에게 더 유용한 책이다. 폐경 전후 증후군은 최대 10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폐경기에 접어들지 않은 건 확실하지만, 40대 후반의 나이에 폐경 전후 증후군이 이미 시작되었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시작은 씁쓸하지만 내게는 시의적절한 책 선택이다. 40대로 접어들면서 노화의 신호가 곳곳에 드러나고 있어서다. 그중 가장 두려웠던 증세가 노안이다. 늘 시력이 좋은 편이고 아직도 평소 생활에는 문제가 없지만 간혹 접하는 계약서 하단의 깨알 같은 글씨와 바늘귀 꿰기는 이제 부담스럽다. 평소 즐기던 독서마저도 내 소중한 눈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이 때문에 몇 년 전부터 독서 방식도 종이책에서 오디오북으로 갈아탔다.


그런데 노화로 인해 걱정해야 할 건 낸 눈에만 있지 않았다. 그동안 내 몸 구석구석 건강을 지켜주던 요소들이 폐경과 함께 사라지거나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해서다. 물론 이번에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이다. 생리가 끝나고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하는 것, 몸 곳곳이 아프다고 주변에서 그러던데, 그리고 갱년기에 좋은 음식은... 정도가 나의 폐경에 대한 짧은 지식이다. 아무도 내게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고 중요성을 일깨워주지 않는데 어쩌랴. 심지어 이미 그 시기를 겪은 이조차 자신도 몰랐다고 하는데. 그러니 아들이 한 질문도 전혀 엉뚱하다고 할 수 없다. 이번에 제대로 공부해서 앞으로 내게 닥칠 상황에 잘 대처하고, 이왕이면 이런 주제를 가족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기회도 가지기로 했다.



"이번 주 줌 주제입니다, 참고하세요."


우리 가족은 집에서 온라인 회의를 한다. 가족 중 누군가 타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유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한 지붕 밑에 모여 산다. 심지어 나와 남편은 재택근무까지 한다. 맨날 얼굴 보고 사는 사람들끼리 무슨 온라인 회의를 하냐고?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외부인과의 접촉, 활동이 차단된 시기에 생겨난 습관이다. 길어진 여유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지식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생각해냈다. 무엇보다 혼자 공부해서 익히기보다 주변 사람에게 내가 아는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에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제가 될만한 글과 함께 그림이나 영상을 보며 설명을 들으면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된다. 이 때문에 기업체 회의실처럼 빔프로젝터와 슬라이드를 갖추고 있지 않을 바에는, 각자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하는 온라인 회의가 우리에게 제격이었다.


온라인 회의 초창기에는 주말마다 주제를 정해 가족 3명이 돌아가며 발표를 했다. 이야기 나눌 주제는 풍부했고 나름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영국의 코로나 봉쇄령이 해제됨과 동시에 가족 각자의 행동 패턴과 학교, 직장 환경도 달라졌다. 그래서 매주 하던 온라인 회의를 필요할 때 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한동안 없던 온라인 회의가 나의 관심사 때문에 부활하는 셈이다.



"100세 시대?... 아니 120세 시대!"


가족 앞에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그건 요즘 어르신에게 해당하는 말이지 않은가. 내가 어르신이 되는 시대, 즉 앞으로 최소 2-30년이 지나서까지 100세 시대라고 할 것 같지는 않다. 현대의 과학과 의학 기술이 무한정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다만, 그 옛날 환갑과 고희를 맞은 어른을 축하해주는 풍습이 생겨난 시대에도 여든을 훌쩍 넘어 사신 선조가 있지 않은가. 나 또한 그 대열에 안 들어갈 이유가 없다.


단순히 오래 살겠다, 가 아니라 건강하게 살겠다, 이다. 100세 시대든, 120세 시대든 내 인생의 반 이상을 차지할 폐경 후 인생을 제대로 대비해보려 한다. 가족들 열심히 들어줘.


커버 이미지: Photo by Allen Taylo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