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아들을 여자 탈의실에 데려가도 된다고요?
아들과 함께 수영장에 갔다가 직원에게서 들은 말이다.
가족 세 명이 늘 같이 가던 수영장에 아들과 나, 단 둘만 갔던 날이다. 아빠와 함께 가던 탈의실을 처음으로 아들 혼자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 잠시 망설여졌다. 그래서 '저 나이의 애를 혼자 탈의실에 보내도 되나요?'라는 뜻으로 직원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내 의향을 넘겨짚었는지, 엉뚱하게도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엉...?
아홉 살 남자를 여자 탈의실에...?
애가 너무 어려 보이나...?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직원이 된다고 하는데 뭘 더 망설이나 싶어 그대로 아들을 데리고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두 어른의 대화도 옆에서 듣고 탈의실 입구에 적힌 연령에 관한 문구까지 다 읽어 내린 아들이 극렬하게 거부했다.
결국, 두 모자의 여자 탈의실 잠입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영국의 수영장은 겉보기엔 한국과 다를 바 없지만, 탈의실에 들어갈 수 있는 이성의 나이가 만 8세 미만이라는 점이 크게 다르다. 만 4세까지 낮추어진 한국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관대한 셈이다.
민망스럽게 왜 그 나이까지 허락하는지 영국의 수영장 문화를 들여다보자.
고등학생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샤워장에 들어섰다.
나는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길게 늘어진 머리를 감던 중이라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지만 직감적으로 남자임을 알았다. 어디를 가나 여자들 중에는 제일 큰 편이라, 나보다 조금 더 크다 싶거나 남성 특유의 묵직한 움직임을 감지하는 순간 알아차린다. 황당하게도 이 남성은 자연스럽게 갈 길을 가듯 내 옆을 스쳐가는 것이 아닌가. 물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옆으로 살짝 몸을 틀지 않았다면 남성의 등장을 아예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순간 너무 놀라서 샤워기 밑에서 하던 행동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다행히 소리는 안 질렀다). 더 놀라운 건 샤워장에 있던 다른 여성들 중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들 씻는 일에 집중하느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있는 건가?
이 남성이 지나간 뒤 곧이어 온화한 표정의 중년 여성이 뒤따르는 걸 보고서야 약간이나마 진정이 되었다. 당시 남성이 쓰고 있던 독특한 구조의 안경과 그를 따라온 여성의 행동으로 보아, 장애아 아들과 어머니 혹은 도우미의 관계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 수영장에서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수영장 내부에 있는 샤워장도 한국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샤워를 하는 사람을 보면 거의 다 수영복을 입은 채다. 수영을 끝낸 후 머리도 감고 몸을 다 씻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며, 주로 어느 정도 나이가 지긋한 사람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그래서 갓 서른이 된 나이에, 나는 이들의 행동에 편승해 한국에서의 습관을 꿋꿋이 지키고자 했다. 그러다가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가슴이 쿵쾅거리는 일을 맞닥뜨린 뒤부터 영국의 수영장에서 알몸 샤워하던 습관을 끝내버렸다.
샤워장 입구에 이런 안내문을 붙인 수영장이 있다. 무슨 요일, 어느 시간에 해당하는지 정보는 없다. 그러니 언제든 학생들의 등장에 대비해 계속 수영복을 입고 샤워를 할 수밖에 없다.
수영 강습이 정규 과목으로 지정된 영국의 초등학교는 근처 수영장을 강습장으로 이용한다. 같은 여자/남자라도 어른의 벗은 몸을 아이에게 보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 수영장과 학교 측의 요청이다.
초등학교에서 수영 수업도 받았고 지금은 또래 청소년들처럼 중등학교 체육 수업도 받는 아들의 말에 따르면, 같은 반 남학생들끼리도 알몸으로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처럼 대중목욕탕 문화가 없는 영국에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사물함과 옷걸이, 거울, 헤어 드라이기 등이 배치된 형태도 한국의 탈의실과 비슷하다. 그런데 샤워를 마친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은 탈의실 벽면에 화장실 칸막이처럼 생긴 또 다른 공간이다. 바로 개인 탈의실이다. 기저귀 교환대와 아이를 앉혀둘 수 있는 붙박이 의자도 있어서 어린 자녀를 데리고 들어가도 된다.
남녀로 분리된 탈의실 외에 가족 탈의실도 간혹 있다. 이곳은 당연히 남녀 공용이고, 가족이 다 들어가니 칸막이 공간도 넓다. 온 가족이 수영장에 가는데 샤워 용품을 하나씩만 챙겨도 되지, 아이를 나 혼자만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족 탈의실을 애용했다.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오는 남자아이의 나이가 오랜 세월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었듯, 영국의 독특한 수영장 문화에도 불만의 목소리는 있다.
여성 - 탈의실 이성 출입 연령으로 만 8세는 너무 많다.
남성 - 샤워장에서 옷 벗고 샤워하는 걸 왜 못하게 하느냐?
머물고 있는 호텔에 사우나가 있다고 하길래, 전날 마신 술도 깨고 휴식도 취할 겸 사우나에 들렀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사우나로 향하는 문을 열려는 순간... 문 너머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의 소리, 물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싶어, 문틈으로 엿보니 남녀노소가 여럿 모여 있는 수영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영국의 호텔에서 사우나를 이용하려다 낭패를 볼 뻔한 한국인 남성의 경험담이다. 술 깨러 사우나에 들렀다가, 술이 저절로 깼다고 한다.
한국의 남성 전용 사우나를 기대했을 이 남성이 탈의실 문을 열고 목격한 장면은 아마 아래와 같을 것이다.
영국에는 수영장과 호텔, 헬스장, 온천 등의 부대시설로 사우나를 운영한다. 위 사진의 오른쪽처럼 수영장 한편에 마련된 사우나는, 입구 전체가 투명 유리이거나 아예 문이 없는 곳도 있다. 당연히 내부가 들여다보이고 남녀 모두 이용한다. 수영을 하다가 들어가 잠시 쉬거나 운동을 마치고 피로를 풀기 위해 혹은 다이어트의 목적으로 땀을 내는 곳이다.
수영장이나 헬스장의 한편이 아닌, 폐쇄된 공간에 마련된 시설에서 여성 전용과 남성 전용 사우나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요일제로 ‘남자 사우나의 날’, ‘여자 사우나의 날’, ‘남녀 공용 사우나의 날’로 구분하는 곳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용 방법을 사전에 확인해야 하다. 무엇보다 어떤 형태의 사우나를 가더라도 영국에서는 수영복이나 가운, 큰 수건 정도는 걸치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
제 책에 실린 글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