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마흔이라는 나이는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직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살아남아야 하는 가장...
그런 가장과 자녀를 보살피는 주부...
직장과 가정을 모두 돌봐야 하는 슈퍼맨이나 슈퍼우먼...
늦어진 결혼으로 이제 막 가정을 꾸린 사람...
'누구'와가 아닌 '나 혼자'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사람까지...
다들 마흔에 이르러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으리라.
나도 20대, 30대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40대의 나이를 살아가고 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라기보다 이 즈음 내게 찾아온 여유 때문이다. 이전에 누리지 못하던 자유와 여유로움이다.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었다거나 복권 당첨으로 돈벼락을 맞아서 시간적 혹은 경제적 여유가 쏟아졌다는 말은 아니다.
20대 후반, 영국에 오자마자 결혼생활이 시작되고 공부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일과 살림을, 나중에는 육아까지 더해 전투적으로 살던 시기가 내게도 있다. 직장을 다니며 육아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내게는 해외생활의 부담도 더해졌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나에게 주어졌던 육아 부담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고학년 학부모가 되고는 등하교와 숙제 도우미 역할마저도 줄어들었다. 단순히 시간적 여유만을 뜻하지 않는다. 몇 년 더 지나고는 베이비시터를 쓰지 않아도 아들을 집에 혼자 두는 일도 가능해졌다. 남편의 늦은 퇴근 때문에 혹은 출장으로 애 봐줄 사람이 없어 집 밖에서 배우고 싶던 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남편의 신분이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바뀌면서 경제적 여유도 생겨났다.
나는 이런 여유로움을, 예전에는 꿈도 못 꾸던 도전 과제에 쏟아부었다. 혼자만 뛰어들지는 않았다. 등 떠밀리듯 따라와서는 나보다 더 즐기는 가족 덕택에 외롭지 않았고 결과도 무모하지만은 않았다.
8월의 일이다. 호주와 뉴질랜드처럼 남반구가 아닌 북반구에 위치한 영국에서 말이다.
휴가 계획을 발표한답시고 남편과 아들을 불러다 놓은 자리다. 한여름에 스키라니, 황당해할 남자들의 반응에 대비해 스키 강습의 이점과 스키장 접근성을 조리 있게 설명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이메일로 배달되는 할인 쿠폰이 문제의 발단이다. 남다른 휴가 문화에 관심을 가지던 나는 그 해에도 새로운 휴가 프로그램이 될 만한 정보를 검색하다가 스키 강습 쿠폰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한여름에 스키라니'하며 코웃음 쳤지만, 저렴한 강습료에 1차 유혹당했다. 스키장이 집에서 10분 거리라는 점에 2차 유혹당했다.
마흔이 다 되도록 스키 배우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용기도 안 내다가 마흔한 살에 그것도 한여름에 갑자기 배우기로 결심하다니. '필' 받으면 곧바로 저지르는 것이 나의 습성이다.
황당하다 싶은 휴가 계획이지만, 남편과 아들이 의외로 순순히 동의했다. 여름에 스키를 배운다에 매료되었다기보다 눈이 귀한 동네에서 사계절 내내 스키를 탈 가능성에 꽂혔다고 봐야 한다. 잘 배워두면 일 년 내내 놀이거리가 생기지 않겠는가. 내 도전 과제의 1차 단계는 무사통과되었다.
문제는 2차 단계다.
마흔 넘어 도전한 과제 중 스키가 가장 난이도 높은 종목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강습받는 내내 어설픈 자세로 일관하던 나는 수시로 넘어졌다.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규정상 착용해야 하는 긴 팔과 긴 바지, 장갑 덕택에 큰 부상은 없었다. 적어도 강습받는 동안은 그랬다.
강습 중에도 무척이나 두려워하던 높이의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올 때다. 그 높은 곳에서 처음으로 바라본 석양에 물든 동네의 경관에 감탄하던 첫 5초까지는 좋았다. 남들보다 심하게 겪던 고소공포증의 증세가 고소-고속-공포증으로 확산되면서 그동안 배운 스키 기초 동작이 몽땅 내 머리에서 지워진 순간이다.
무방비 상태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도 다행히 같은 슬로프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았다. 대신, 강한 충격과 함께 바닥에 충돌하는 내 엉덩이에 깔린 비운의 내 왼손에 무리가 가고 말았다. 손가락에 금이 가고 손목의 인대가 늘어났다. 몇 개월의 재활을 거치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약간이나마 불편을 느끼지만, 우려하던 만큼 큰 피해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 빼고 아무도 안 다쳐서 다행으로 여긴다.
한편, 한여름에 스키를 배우자는 내 제안에 따라온 남자들...
아들의 담임이 내게 한 말이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전해주려는 듯 목소리에 간절함과 피곤함마저 섞여 있다. 열 살이 넘도록 자전거를 못 타는 학생에 대한 우려와 원망도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아들의 학교에서 자전거 안전 교육이 실시되던 때다.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자전거로 도로 건너기, 내리막길 지나기, 자전거 안전 점검하기, 브레이크 잡기 등을 교육하는 시간이다. 하필 이런 때 아들은 급우들 중 유일하게 자전거를 못 타는 학생이 돼버렸다. 단체로 실시하는 자전거 안전 교육에서 자전거를 못 타는 학생은 누구에게도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오히려 수업에 방해마저 될 수 있다.
'오늘 조금 더 늘었다'는 선생님의 피곤한 외침을 세 번 정도 들을 무렵 결심했다. 온 가족이 나서기로.
다행히 가족 모두가 나서자 아들의 자전거 타기 실력은 급속도로 늘었다.
단 몇 차례 시도만으로 아들은 자전거로 공원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담임에게 자랑스레 보내줬다.
아들의 자전거 강습이 성공하자, 자신감으로 충만해진 남편은 나까지 강제 교육생으로 삼았다. 아들 응원 차 나섰다가 뜻하지 않은 도전이 시작되었다. 내 나이 마흔두 살의 일이다.
첫 도전은 초등학생 아들의 자전거로 시작했다. 키다리 아줌마가 타기에는 우스꽝스럽지만 급할 때 다리만 내리면 바닥이 닿아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높은 자전거에서 떨어질까 두려워 이 나이까지 자전거를 못 배웠다 할 수도 있으니.
아들과 나까지 자전거 타기가 성공할 무렵 우리 집엔 자전거 세 대가 마련되었다.
친구들과의 모임 주제로 S가 제안했다.
평소 모임 참여자는 20여 명 가량인데 스케이트를 못 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이날 현저히 적은 수가 나섰다. 나 또한 스케이트를 못 타면서도 용감하게 이들을 따라나섰다. 스케이트장이 가장 붐비는 금요일 저녁 시간에 친구들의 걱정을 몽땅 한 몸에 받으며 빙판 위를 바둥거리고 다녔다.
이로서 나의 스케이트 도전이 시작되었다. 가장 최근인 3년 전의 일이다.
그 후 제대로 배우고자 주말마다 가족을 데리고 스케이트장에 갔다.
우리 가족은 각자가 연습한 곡으로 매달 연주회를 펼친다.
아들의 음악 공부에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목적으로 내가 피아노를 독학으로 시작하면서다. 어린 시절, 기초만 배운 단계에서 집안 형편 때문에 피아노를 그만둬야 했던 나는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마흔 살의 자유가 주어지면서 가장 먼저 시도한 도전이다.
기타를 배우겠다는 남편이 나중에 합류하면서 이 또한 가족과 어울리는 시간이 되었다.
남편이 투덜거리는 소리다.
왈츠의 본고장 비엔나를 여행하면서 시작된 춤에 대한 동경이지만 다른 도전과 마찬가지로 마흔이라는 자유가 주어지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왈츠를 배우러 간 학원에서는 삼바, 룸바, 차차, 탱고까지 가르쳤다. 모두 남녀 역할 구분이 명확한 춤이기에, 나처럼 키 큰 파트너를 둔 남편은 남편대로 고생하고 집에서 춤 연습하는 부모를 위해 아들은 음향, 조명, 촬영 기사로 활약했다.
'남다른 휴가 문화'에 대한 의지는 계속 이어졌다.
가족 모두 수영을 할 줄 알고 해양 도시에 살기에 어쩌면 당연한 시도일지도. 다른 종목에 비해 쉽게 배운 것이라, 나는 이번 글에 어울리는 도전 과제로 애초에 넣지 않았다. 하지만, 발행 전 내 글을 읽은 남편과 아들이 '반드시 언급할 가치가 있다', '자전거보다 어렵다'로 나오며 강력하게 몰아붙였다. 내 도전 과제에 늘 함께 해주는 동지의 말을 안 들었다가 어떤 보복이 따를지 모르니 이렇게 올려본다.
곧 50대를 바라보는데 또 다른 도전을 기다리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