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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y 30. 2023

집안일이 너무 많아 고민이라면 가족의 협조를 구해보자

"그거 시간 얼마 안 걸려."


저녁을 먹다가 남편이 한 말이다.


어떤 음식인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문제의 발단이 된 차이브가 올라간 접시만 떠오를 뿐이다. 남편은 내 요리가 제법 그럴싸하다 싶으면 한 마디씩 덧붙여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습관이 있었다. 


차이브를 손으로 뜯지 말고 칼로 반듯하게 썰면 더 근사한 요리가 되었으리라는 지적이다. 조금만 더 개선하면 완벽하겠다 싶어 하는 말이니 이것도 칭찬이라 여기는 건지. 반면, 그저 그렇거나 형편없다 싶으면 별 말이 없다. 어디서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문제투성이니까. 


오매불망 남편의 귀가만을 기다리며 식사 준비에 정성을 쏟을 여유가 있다면 그까짓 차이브를 백 번이라도 칼로 썰어내겠지. 


당시, 나는 돌도 안 지난 아들을 집에서 돌보며 일하는 워킹맘이었다. 출퇴근만 하지 않을 뿐 남편 못지않게 일에 집중하면서 육아와 집안일도 했다. 이런 내 사정을 강조했더니 남편은 '그거 시간 얼마 안 걸려.'라고 응수한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야채를 칼로 반듯하게 다듬을 정도의 시간은 있다고.


아들 둘만 있는 가정에서 어머니를 거들며 성장한 덕택에 집안일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남편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육아 경험은 없다. 참, 남편이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아들의 기저귀도 갈고, 이유식도 먹이고, 유모차에 태워 산책도 하지 않았나. 


나처럼 애를 돌보며 일과 살림까지 해본 경험이 없다는 말이다. 육아만을 단독으로 해본 경험과 일/육아를 병행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특히, 일 + 살림 + 육아의 종합세트라면? 



말로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면 몸으로 부딪히게 하자


친정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던 중이다.


"진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남편의 전화 목소리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담당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에서 학업을 이어가려 했던 남편은 잠시도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애가 깨어 있을 때는 애를 돌보느라, 애가 자는 동안은 자신도 피곤해 잠들어버리는 식이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서로 합의해 둔 여행 일정이라 내가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여유를 보이던 남편이지만, 만 하루도 안 되어 어려움을 호소한 셈이다. 


식사 시간은 얼마나 빨리 돌아오는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아들은 금방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피곤하다고 징징대면서도 안 자겠다 버티고. 


자신의 고충을 알아주지 않는 가족 때문에 속상하다면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하게 해 보자.



"싱크대 옆에다 커피랑 설탕 흘리신 분..."


가족 중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 이는 한 명뿐이다. 


누군지 알면서도,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하고 이렇게 외쳐본다. 당사자를 지칭하지 않는 나의 화법은 가족의 실수를 지적할 때 유용하다. 아침, 저녁으로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 눈에 띄는 일이 있을 때마다 외침의 내용을 달리하면서.


"바지를 대충 뒤집어 빨래통에 넣으신 분..."

"화장실 휴지 다 쓰고 새로 안 갖다 놓으신 분..." 


내 외침이 떨어지자마자 누군가 내 뒤로 후다닥 달려가는 기척이 느껴진다. 어떤 때는 부엌으로 또 어떤 때는 침실로 또 목욕탕으로. 자신이 못다 한 일을 뒤늦게 마무리하면서 최대한 타인과의 접촉은 피하려 한다.


영국 전역에 코로나 봉쇄령이 내려질 무렵이다.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고 아들은 온라인 수업을 받는데, 당시 영국 분위기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라 할 수 있다. 


그토록 평범한 일상임에도 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집안일에 고민하고 있었다. 분명, 점심 한 끼 더 챙기면 되는데, 이마저도 프리랜서로 일해 온 내 입장에서는 특별하다 할 수도 없는데, 어쩌다 집안일이 두 배가 되었을까?


가족의 일상을 며칠간 관찰해 보니 답은 쉽게 나왔다.


남편과 아들은 회사와 학교를 가지 않는 대신 집에서 머물며 평소보다 더 자주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고 집기를 사용했다. 코로나 전만 해도 잘 드러나지 않던 이들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엌에 더 자주 가서 먹거리를 찾고 화장실도 더 자주 이용하고 침실 출입도 잦아졌다. 이럴 때 뒷정리가 말끔하지 않으면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뒷정리를 안 한 모습이 발견되면 곧바로 지적한다


가족이 남긴 흔적을 내버려 두면 그 뒷수습은 내 몫이 된다. 봉쇄령이 얼마나 이어질지도 모르는 데다, 자신이 할 일을 남에게 떠넘기거나 혹은 떠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뒷정리를 안 한 모습이 발견되면 곧바로 지적하기로 했다. 내가 직접 정리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라 해도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들은 계속해서 정리를 게을리하고 뒷일은 내가 감당해야 하니까.


마땅히 할 일을 안 했다고 원망할 필요도, 훈계할 필요도 없다. 이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동일한 외침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어제 분명 음식물을 바닥에 흘려서 지적했는데, 오늘 또 흘려놓았다. 그래서 다시 지적했더니, '내가 또 그랬다고?'라는 표정이지만, 이 남자는 이내 부엌으로 달려간다. 


동일한 일을 반복 지적하다 보면 서로 지치기 마련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같은 문제를 언급하는 일은 줄어든다. 한창 일에 집중하다가 벽에 묻은 얼룩을 닦으려고 혹은 빨랫감을 정리하려고 하던 일을 중단하기란 얼마나 번거로운가. 이런 불편함을 막기 위해서라도 각자 행동에 신경 쓰게 된다.



"3명이 하루에 양말 두 켤레씩, 일주일이면 42켤레, 빨랫줄에 널면 84조각..."


양말을 정리하다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리 가족은 유난히 양말을 많이 신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면 으레 양말도 새로 꺼내 신어서다. 나와 아들은 수족냉증에 가깝고 남편은 몸에 열이 많아서 등 양말을 신고 자는 이유도 다양하다. 


덕분에 남편은 고질적인 피부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고 나 또한 발 시림 현상을 덜 겪는다. 자연스럽게 빨랫감은 더 쌓이게 되고 어려움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집안일에 지칠 때 가족의 협조를 구해보자


남자들을 불러다 놓고 나의 양말 고민을 털어놓았다. 가족의 일주일치 양말이 얼만큼인지 세탁한 양말을 널고 양말을 개어서 정리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숫자로 설명했다. 


다행히 남편과 아들이 나서 주기로 했다.




매주 월요일, 양말과 속옷을 세탁하는 날이다. 젖은 양말과 속옷을 빨랫줄에 널고 이를 말린 뒤 정리하는 일을 남자들이 맡고 있다.



"내가 설거지할 때마다 지저분하다고 잔소리했잖아!"


A가 이렇게 호통쳤다. 


화기애애하던 대화 분위기가 갑자기 싸움 모드로 돌변했다. 내 남편이 빈 그릇을 치우면서 A의 아내가 푸념하기 시작했다.


"이 집은 남편이 설거지라도 해주니 얼마나 부러워, 우리 남편도 닮으면 좋겠다."


그러자 옆에 있던 A가 발끈한 것이다. 


남의 집에 와서 부부 싸움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그 원인을 우리 부부에게서 찾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가정마다 사정이 다를 텐데 왜 남과 비교하나? 

설거지 하나만으로 여자는 감사해야 하고 남자는 칭찬받아야 하나?

남편 때문에 속상해진 일을 왜 공개 비난으로 해결하려 하나? 



아무리 속상해도 타인과의 비교는 자제하자


A의 아내처럼 가족을 타인과 대놓고 비교하는 사람이 있다. 


문제점을 고치려는 의도겠지만 타인 앞에서 가족을 비난하고 비교 대상으로 삼으면 과연 득이 될까?


"너도 게임 그만두고 XX처럼 공부 열심히 해봐."

"내 남편도 OO 아빠처럼 돈 잘 벌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도 @@처럼 운동해서 살 빼."


이런 소리를 공개적으로 들은 사람이 문제점을 고치려 노력할까? 


비교는 또 다른 비교를 부를 뿐이다. 아내의 비난에 더 거센 말로 되받아친 A처럼 말이다. 


"너도 나가서 돈 벌면 되잖아."


커버 이미지: Photo by Vlada Karpovich on Pe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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