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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Jun 08. 2023

아들과 함께 도전해 본 ABRSM 피아노 급수 시험

"아들, 발이 안 보여!"


촬영 도중 내가 한 말이다. 


곧이어 두 모자가 서로의 위치를 바꾸어 역할을 달리 해야 한다. 내가 연주자가 되고 아들은 촬영자가 되는 식으로.


얼마 전 아들과 나는 피아노 급수 시험에 도전했다. 영국의 음악 평가 기관 중 하나인 ABRSM에서 주관하는 시험이다. 


코로나 이후 일부 실기 시험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시험장까지 가지 않고도 시험을 치르는 길이 열렸다. 집이나 학교, 학원 등에서 연주를 하고 그 장면이 담긴 영상을 심사 기관에 보내면 된다. 


집에서 촬영한다니 안심하고 연습에만 몰두했지만, 정작 아들이 페달을 밟는 장면에 이르러 나는 당황했다. 심사위원이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기에 연주자의 얼굴부터 발 끝까지 화면에 드러나야 했다. 하지만, 아들의 발과 페달이 위치한 피아노 아래는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만 보일 뿐이다. 아들의 파란색 바지가 피아노의 검은 바탕과 선명하게 대비되리라 판단했음에도 그렇다.


지금이라도 다른 옷으로 갈아입게 하고 다시 촬영할까?

아니면, 양말이라도 밝은 색으로 바꾸어 신어야 할까?

설마, 발이 안 보인다고 페달을 밟았는지 여부를 심사위원이 모를까?


여러 고민으로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내가 과연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기에 다른 고민은 접어 두기로 했다.



"페달 밟기 등 연주 기법이 뛰어납니다."


ABRSM에서 보내온, 내 연주에 대한 심사평이다.


연주를 끝내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고 촬영하는 일을 수십 차례 거듭하다가, 아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직전 '여기까지만 하자' 선언했다. 내 능력이 이거밖에 안 되는구나 싶어 미련이 남지만, 그날 당장 동영상을 보냈다.


그렇게 우려하던 페달 밟기가 오히려 좋은 심사평을 얻어냈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심사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채 온갖 걱정을 다 품고 준비한 셈이다. 물론, 연주 기법이 뛰어나다고 해서 내 연주 실력이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다른 연주곡에서는 겨우 합격점을 받았을 뿐이니.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들과 나 모두 시험에 합격했다. 이번 글은 합격 통보가 오기 전 일부 작성해 두었다. 내 실력으로는 당장 합격하기에 무리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합격하겠지, 혹은 영영 합격하지 못하면 실패담으로 쓰겠다는 심정으로 글을 시작했다.


이제 합격은 했으니 편한 마음으로 우리 모자의 경험을 적어나가겠다. 



"집에서 연주하고 심사를 받는다고? 그럼 누구나 합격할 수 있는 거 아냐?"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몇 번이고 연주를 반복하고 촬영도 계속하면 되겠지.


시험장이 풍기는 낯설고 엄숙한 분위기, 단 한 번의 연주 기회까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우수한 실력이라도 낯섦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게나. 


그런 두려운 요소가 배제된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악기로 연주한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들과 나는 같은 시기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부모 중 한 명이 피아노에 능숙해서 자녀도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우는 경우는 있어도 부모와 자녀가 동시에 피아노 초보로 시작하여 시험까지 치는 사례는 그리 흔하지 않으리라. 


지금 고3의 나이가 된 아들이 초등학생 때이니 거의 10년 동안 피아노를 함께 친 셈이다. 그동안 누가 더 열심히, 더 잘한다 할 것도 없이 클래식과 팝송까지 다양하게 익혀 왔다. 수많은 곡을 치긴 했으나 귀에 익숙한 곡을 조금 칠 줄 안다, 그뿐이다. 기타를 배우는 남편까지 합세해 가족이 매달 연주회를 열어 각자 연습한 곡을 발표하지만, 새 연주회를 위해 새 곡을 정하고 연습하다 보면 그전에 익힌 곡은 잊어버리는 식이다. 


둘 다 피아노에 흥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진전이 없다 싶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피아노 강습도 받으려 했으나 내가 지닌 한계 때문인지 첫 강습 후 흥미를 잃고 말았다.


강습에는 관심이 없던 아들이 생각해 낸 방도가 시험에 도전하는 일이다. 대학 지원 시 음악 자격증을 제출하면 가산점이 부여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가 교육열이 더 높은 부모였다면 아들이 이런 말을 하기 전부터 피아노 시험에 도전했을지 모르겠다. 



"엄마요, 이게 무슨 기호인지 알아요?"


아들이 이런 투로 말할 때는 질문이 아닌 훈수를 두려는 심산이다. 


시험에 대비해 연습한 곡을 가족 앞에서 들려주던 날이다. 연습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은 아들이 들어도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내가 잘못 연주했나 보다.


아들에게 지적당할 만도 하다. 


나는 악보를 대할 때마다 학창 시절 배웠던 음악 이론 중 기억나는 것만 지키고 나머지는 거의 무시했다. 음표를 건반으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있기에 다른 기호는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다. 덕분에, 꽤 어렵다 싶은 악보를 대하고도 곧바로 연주는 가능하지만, 생소한 기호에 대해서는 '이건 실력이 능숙해지면 익혀야지'라고 넘겨버렸다. 그렇게 판단한 지 10여 년, 도대체 능숙함은 언제 생기는 걸까? 


이제는 시험을 앞두고 있지 않은가. 아들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아빠요, 내 프롬 셔츠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아들의 물음에 남편이 무어라 답하는 소리가 뒤이어 들렸다.


작년 이맘때 졸업파티에서 입었던 옷을 왜 찾는 건가 했더니, 아들은 그걸 걸치고 연주하겠다고 나왔다. 비록 집이라 하더라도, 실제 음악회에 나서는 연주자처럼 격식을 갖추어 심사위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겠다는 의도다.


뭘 그렇게까지 하려고,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박할 근거가 없으니 내버려 뒀다. 제법 거금을 들여 구매해 놓고 단 하루만 입고 1년이 다 되도록 옷장 신세만 지는 옷이지 않은가. 이미 평균 성인 남성 키를 뛰어넘고도 계속 성장 중인 아들이 언제 또 같은 옷을 입을 수 있겠나. 


다만, 평소 옷차림으로 편하게 촬영에 임하려 했던 내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다.



"엄마도 드레스 입고 연주하지요."


왜 나까지 그래? 


항변은 해봤지만, 결국, 아들의 권유로 옷을 바꿔 입고 화장까지 했다. 10년 지기 피아노 동지의 권유라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 


연주를 시작하기 전, 카메라를 응시하며 자신을 소개하고 연주할 곡목과 작곡가까지 직접 구두로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 아들이 말하는 '격식'을 갖추려면 화장도 해야겠다 싶어서다.






"아들, 내 점수가 더 높은 거 알아?"


열 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사람과 마흔에 시작한 사람의 실력이 동일할 수는 없다.


손가락이 길어 '피아노 잘 치겠다' 소리는 들었지만, 긴 손가락이 잠재력을 발휘하기에는 마흔의 나이가 아쉽다. 건반 사이가 크게 벌어지는 곡을 대할 때마다 애를 먹는다. 내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건반을 대한다기 보다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기에 더 가깝다.


반면, 아들의 손놀림은 부러울 정도로 유연하다. 가족 중 아무도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운 이가 없고 배워보라고 강요하지도 않았으니, 어린 시절부터 자유롭게 연주하던 모습 그대로임에도 아들의 연주는 능숙해 보인다.


이 때문인지 피아노를 잘 모르는 남편마저도 늘 아들의 솜씨만 칭찬하곤 했다. 


아들의 능력과 노력에 감사하고 감동하면서도, 나 역시 피아노 동지이자 경쟁자 아닌가. 남편의 반응에 질투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성적표가 공개되자 모두 놀라는 눈치다. 4개의 연주곡에 대한 각 심사평과 점수에 이어 전반적인 평가도 나왔다.


총점만 따지면 내가 1점 더 높다고. 1점씩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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