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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Aug 16. 2023

영국의 정치 뉴스가 어렵게 다가온다면

"눈은 오른쪽... 코는 왼쪽..."


눈...? 

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텐데, 영국의 국회의사당에서 자주 울려 퍼지는 소리다. 실제 '눈'과 '코'라는 말은 아니고 그렇게 들릴 뿐이다.


영국의 정치 뉴스를 들으면, 특히 방송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에서 전해지는 소리를 듣는다면 당장 혼란스러운 표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백 년간 이어진 영국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긴 독특한 의사 진행과 표결 방식 때문이다. 


영국 방송에 어느 정도 귀가 익숙해졌다 싶은 무렵에도, 내게 정치 뉴스는 여전히 어려운 존재였다. 그래서 뉴스 진행자가 정리해 주는 내용에만 의존해야 했다. 


그런데, 자주 등장하는 정치 용어와 배경만 조금 익혀도 현장에서 직접 전하는 소식을 이해할 수 있다.


@CNN


↑ 2013년 시리아 내전 당시 영국군의 개입 여부를 두고 하원의원들이 표결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당시 하원의장인 존 버코우가 표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존 버코우는, 내가 영국의 정치 뉴스 보는 재미를 붙이게 해 준 장본인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고 이제 의장직에서도 물러났지만, 그의 의회 진행 방식은 흥미롭다. 카리스마와 유머 넘치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치적 사안이 덜 지루하게 다가올 정도니. 



"오더... 오더..."


말 그대로 Order, 명령이다. 


표결 결과를 발표하는 중요한 순간임에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대는 의원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평소에도 큰 소리로 수차례 외쳐야 할 정도로 국회의원들이 소란스러운 편이다.



"영국 국회에서 진행하는 거 보면, 꼭 우리 초등학교 시절 학급회의 보는 거 같아."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될 무렵이라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영국의 국회 뉴스를 접하면서 그 뜻이 이해되었다.



"아이즈 투 더 라이트... 노즈 투 더 레프트...."


Eyes가 아니라 Ayes이며, Nose가 아니라 Noes에 해당한다.



Aye

* 네, 찬성, 찬성표 (복수형 Ayes)


No

* 아니요, 반대, 반대표 (복수형 Noes)



찬성표가 오른쪽, 반대표가 왼쪽이라고?  


labourlist.org



↑ 국회의사당 하원실 입구 양쪽에 마련된 찬성 로비 (Aye lobby)와 반대 로비 (No lobby)다.


이 두 로비 중 한 곳에 의원이 직접 들어가는 방식으로 찬반 표결이 이루어진다. '찬성' 로비는 의장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쪽, 즉 화면에서는 왼쪽에 해당하고, '반대' 로비는 의장의 왼쪽 (화면 오른쪽)에 위치한다. 



하원의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4명의 남녀


이들은 각 로비에 들어간 의원수를 집계하는 역할을 맡은 의원들이다. 이들 중 한 명이 결과를 발표하고 해당 내용이 담긴 문서를 의장에게 전달하면 의장이 그 내역을 한 번 더 외치면서 공식화된다.



The ayes to the right: 272

찬성표 (오른쪽 로비 의원수)가 272


The noes to the left: 285

반대표 (왼쪽 로비 의원수)가 285



상당한 접전을 벌인 표결이다. 그러니 환하게 웃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 별다른 표정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까지 다양하게 무리 지어 앉아 있다.



"더 노즈 해빗"


The noes have it

반대표가 더 많다 (= 부결되었다) 


겨우 13표 차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반대표가 더 많았으니 부결이다. 만일, 이와 반대 결과가 나왔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디 아이즈 해빗"


The ayes have it 

찬성표가 더 많다 (= 가결되었다)



"언록"


Unlock

* 열다, 드러내다


의원들이 정해진 시간 내에 찬성 로비 혹은 반대 로비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시간이 지나면 로비 문을 잠근다고 한다. 집계가 시작되는 시간이므로 떠돌아다니는 표를 막기 위해서다. 


언록, 즉 문을 열라는 말은, 이제 표결이 끝났으니 잠긴 로비 문을 열어도 된다는 뜻이다.



"포인트 오브 오더"


하원의장이 표결 결과를 발표하고 나서, '포인트 오브 오더'라는 말을 하고는 노동당 당수의 발언을 허락한다. 에드 밀리밴드는 물론 그의 발언에 응수하는 보수당 당수겸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도 이 말을 먼저 언급한다.


Point of order

* 의사 진행 규칙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지만, 영국의 정치 환경에서 해석하면 의사 진행 도중 문제제기나 건의사항, 문의, 해명할 일이 있을 때 쓰는 말이다. *


* 저의 짧은 정치 상식으로 이 정도로만 이해했으며, 한국의 정치 환경과 일치하는 용어는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이에 대해 잘 아시는 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리아 내전과 관련하여 영국이 군사 개입하지 않기로 표결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보수당에서 여당 특권을 이용해서라도 영국군 개입을 강행하는 것을 막고자 노동당 당수가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다.


커버 이미지: ucl.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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