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새 정원용 장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by 정숙진

정원 이야기로 이번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한 차례 더 정원 글을 써보기로 했다.


매년 봄만 되면 '나도 근사한 정원을 가꾸어야지' 하는 헛된 희망을 품는데, 그와 동시에 그런 과정과 결실을 글로 표현하려 했다.


결과만 놓고 따지면, 아무래도 이런 시도는 이 즈음 내게 도지는 병인 것 같다. 정원 가꾸기에 대한 열망도, 또 그에 관한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봄이면 시작되는 정원에 대한 나의 꿈과 계획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레 사그라들 테니 딱 이번까지만 쓰련다.



"손잡이 부분이 딱딱하고 크기가 작아서 손목이 아파요."


정원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의 하소연이다.


몇 해 전, 지금처럼 서머타임이 실시될 무렵이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우리 가족은 이제 정원 관리를 해야겠구나 마음을 먹곤 한다.


누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준 적은 없지만 고요하던 동네 곳곳이 웅성거리기 시작해서 알게 된다. 멀리 이웃까지 기웃거릴 필요도 없이 당장 우리 집 정원을 봐도 알 수 있다. 겨우내 움츠러들어 전혀 자라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나무와 풀이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까만 흙으로만 가득하던 땅에 초록빛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때가 된 것이다.


담장이 이웃과 연결되어 있으니 건너 건너 몇 집 정도의 정원에서 벌어지는 일은 눈과 귀로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우선, 잔디 깎는 소리부터 들린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모터와 함께 풀 깎이는 소리가 30여 분 가량 지속된다.


말라비틀어진 꽃대와 잡풀로 어수선한 화단을 정리하고 그곳에 퇴비를 뿌리거나 화단의 흙갈이를 하는 소리도 들린다. 잔디 기계만큼 큰 소리는 아니지만, 겨울 동안 굳어 있던 땅에 그 해 첫 삽질을 하고 나무의 가지를 자르고 포대를 뜯어 흙이나 자갈을 붓는 소리, 삽으로 퇴비를 옮기는 소리는 잠시만 집중해도 들을 수 있다.


모종을 옮겨 심는 곳도 있다. 이건 소리로 확인하기 쉽진 않지만 어린싹이 냉해를 입지 않을 만큼 날이 풀린 상태라 창문을 열어두고 있어서 바깥에서 전해지는 동정이 더욱 가까이 들린다. 누군가와 짝을 이루어 작업을 하는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리도 들린다.


정원 관리가 힘들다 싶었는지 조경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는 집도 있다. 해마다 때가 되면 업체 이름이 붙은 승합차가 집 앞에 세워져 있고 낯선 사람들이 차에서 장비를 꺼내 작업하는 광경이 보인다.


직접 가꾸든 전문가를 부르든, 모두가 이토록 분주하게 정원 관리를 해나가는 것 같더니 서머타임이 끝날 무렵, 즉 10월 말이 되면 다들 그 순간부터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잠잠해진다. 일찌감치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짐승이 굴이나 땅속으로 숨어버리듯 정원은 갑자기 텅 빈다. 그전에 보이던 분주한 작업이 뚝 그쳐버린다.


우선, 잔디를 깎지 않는다. 기온이 떨어지고 일조량마저 줄어들면 생장이 더뎌지는 다른 식물처럼 잔디도 거의 자라지 않아서다. 다행히 잔디의 초록빛은 성장이 멈춘 겨울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사실, 잔디를 깎고 싶어도 습하고 추운 날씨의 연속인 겨울에 이를 시도했다가는 기계가 진흙에 파묻혀 작동에 애를 먹기 마련이고 쇠붙이로 된 날이 망가질 수도 있다.


다른 정원 일도 멈추는 건 마찬가지다. 잎을 다 떨구어낸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려 해도 봄에 꽃을 피워내는 구근류를 심으려 해도 겨울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


아들이 손목이 아프다 불평한 건, 이런 정원 작업이 한창일 때 잡초를 제거하면서 벌어졌다.


풀밭이나 화단에 돋아난 잡초라면 손으로 뽑아도 되고 뿌리가 깊다 싶으면 모종삽으로 떠내면 그만이지만, 아들이 이날 한 작업은 성질이 다르다. 잔디와 집 건물 사이에 깔려있는 정원석의 틈을 비집고 솟아나 사람에게 밟히고도 말짱히 버틸 정도로 생명력 강한 잡초다. 맨손으로 잡아당겼다가는 식물의 상단 부위만 뜯겨나가고 나머지 줄기와 뿌리는 그대로 땅에 박히고 만다.


그럼, 어떻게 작업하냐고?


정원을 처음 관리하면서 나도 이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정원 관련 정보를 검색해 봐도 답이 안 나오기에, 막연하나마 내가 의도하는 바를 단어로 조합해 검색창에 입력했다. 물품의 이름을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히 '이런 게 있을 거야'라는 짐작만으로 원하는 걸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여러 단어로 시도하다가 'Pavement'와 'Weed'의 두 단어에 이르니, 딱 내가 찾던 물품이 나왔다.



관련 업체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며 광고비나 수익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제 개인 경험을 공유하고자 쓴 글입니다.


Weeder.png ebay.co.uk



이 제품은 patio weeder 혹은 crack weeder라고 부른다. 정원에 있는 테라스나 정원석 틈새에 난 잡초를 제거한다고 해서 이렇게 지어졌으리라.


엄밀히 말해, 'Pavement'는 보도블록이 깔린 포장도로를 가리키므로 정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관련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렇게나 입력했음에도 원하는 제품을 찾아낸 셈이다. 검색어를 마구잡이로 입력해도 원하는 상품을 찾게 해서 어떻게든 소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구매 사이트 기능에 새삼 놀랐다.


위 사진처럼, 농사에 쓰는 낫과 유사한 형태지만 손바닥에 올릴 정도로 작고 가벼우며, ㄱ자 도구와 일자 도구, 이 두 가지가 세트다.


이 제품의 존재를 알아낼 무렵, 우연히 할인점에서 이를 발견하고 당장 구매했다. 종내 쓸모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초보 정원사가 가질만한 두려움으로 일단 저렴한 버전으로 시작했다.


1파운드로 구매한 제품치고는 내구성도 있고 원하던 목적에도 잘 들어맞았다. 함께 딸려온 일자 도구의 경우 그 용도가 모호했는데, 우연히 담쟁이 제거에 썼더니 안성맞춤이었다. 벽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좀처럼 떼어내기 힘든 담쟁이 덩굴손을 맨손으로 잡아당기면 잘 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떼어내고도 흔적이 남는다. 반면, 일자 도구로 덩굴손을 살살 긁어내듯 벽에서 밀어내니 깔끔히 제거되었다.


처음에는 남편과 내가 번갈아가며 이를 사용하여 잡초 제거에 나섰으나, 아들이 중학생 나이가 되면서 좀 더 정교한 작업에 투입해도 되겠다 싶어 맡겼더니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풀을 뽑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정원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잡초를 제거하던 아들의 말이다.


나이는 못 속이는지, 쪼그리고 앉아 장시간 작업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중년의 부모와 달리 아들은 불편한 자세임에도 일에 몰두하면서 몸의 불편함은 잊고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다.


'한 시간 정도만 작업하면 된다'라고 내세웠던 나의 애초 유인책이 무색해질 정도로 아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원에 머물렀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해도 계속 버텼다.


잡초 뽑다가 '아이고 허리야, 무릎이야'하며 노인티를 낼까 걱정하던 우리 부부로서는 다행이다 싶었다.


가족 모두가 집안일을 조금씩이나마 분담하는 습관을 오랜 세월 유지하다 보니 세 명이 제각각 선호하는 일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분명, 누군가는 꺼리는 일인데 누군가는 기꺼이 도맡으려는 일이 있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손목과 손가락에 부담을 주며 작업해야 하는 잡초 뽑기가 내게는 꺼리는 과제라면, 아들에게는 반기는 일인 것처럼.


누구 하나 인정해 주지 않는 비공식 타이틀이기는 하나 엄연히 집안일 총감독을 맡고 있는 내가 이런 점을 간과해서 되겠는가. 각자의 성향을 잘 활용하면 세 식구가 매일같이 생활하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꾸밀 수 있다.


문제는 도구다.


장인은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고 하는데, 우리 집에 장인은 없는 듯하고, 무엇보다 아들보다 손이 작고 작업 강도도 세지 않아 지금껏 이 작고 조잡한 도구로도 가능했던 나의 입장과는 다르겠다 싶었다.


잡초 뽑기에 열성인 아들을 위해 또 이 어린양의 심신 안정을 위해서라도 과감히 투자했다. 아들에게 원하는 제품을 골라 보라고 해서 당장 주문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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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잡초 뽑는 일에 열성을 보여 나의 수고를 덜어준다면, 남편은 어떤 일에 열성을 보일까?


이 남자가 좋아하는, 그러면서 내가 꺼리는 정원 작업이라면 바로 꽃모종 옮겨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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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그토록 꽃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야외로 산책을 갈 때마다 화단에 가꾸어진 꽃을 보고 정성스레 사진으로 담는 모습을 보고, 그저 예쁜 것을 보고 즐기는 사람의 본성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우리 집 화단에도 이런 꽃을 심었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강하게 호소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거절했다.


잡초 뽑기를 아들에게 떠넘긴 뒤 이제 쪼그리고 앉아 하는 작업에서 해방되었노라 만족하던 내가 꽃모종을 보고 반길 이유가 없었다. 혹시라도 이 작업이 내게 돌아올까 걱정이 되어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수도.


그런데, 자기가 모든 걸 옮겨 심고 관리도 하겠다 나오니 더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남편이 원하는 대로 근처 원예점에서 꽃모종을 사 왔다. 직접 심어 보고 가꾸도록 내버려 두면 남편의 본심을 알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 작업을 두 번 다시는 못하겠다 선언할 수도 있고, 옮겨 심은 모종이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죽어버릴 수도 있다.


다행히, 남편은 아무런 불평 없이 혼자 모종 심기에 몰두했고 그렇게 우리 집에 오게 된 모종은 겨울 초입까지 잘 버티며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결과적으로, 두 남자 모두 쪼그리고 앉아 각자의 작업에 몰두하며 행복해한다. 한 사람은 뽑고 한 사람은 옮겨 심고. 덕분에 내 무릎도 행복하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CDC on Unsplash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