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을 보내기 위해 가족과 함께 영국을 방문한 A의 말이다.
위층과 아래층, 때로는 맞은편까지 이웃과 맞닿는 아파트에 거주하느라 갑갑했던 만큼 독립된 공간이 많은 영국식 주택에 대한 기대감이 컸나 보다.
실제로, 영국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한국에 비해 월등히 낮다. 2021년도 잉글랜드/웨일스에서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잉글랜드와 웨일스 가구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21.7%다. 같은 해 조사에서 51.9%가 나온 한국에 비해 훨씬 낮다. 여기서 영국의 아파트라고 하면 한국식 빌라와 맨션도 포함한다.
단독 주택이나 땅콩 주택, 테라스 하우스, 방갈로 등 영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주택은 독립된 공간을 많이 확보하기에 층간 소음 걱정 없이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고, 무엇보다 텃밭과 화단을 가꿀 수 있는 정원이 있으니 A가 크게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온 가족의 놀이터와 쉼터, 텃밭, 손님 초대 공간, 체육시설 등 정원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많다.
코로나로 인해 영국 전역에 봉쇄령이 내려지고 여러모로 불편함을 겪고 보니 우리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집의 소중함을, 특히 정원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특히, 학교와 식당, 이발소, 미용실마저 문을 닫고 외출도 하루 한 차례로 제한되면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평소보다 길어졌다.
하지만, 이런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국에 처음 오는 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정원 문화가 있다. 이건 반드시 따져보고 영국에서 집을 고르자.
우리 가족은 영국에 산지 10년이 지나서야 정원이 있는 집을 구했다. 집을 넓혀갈 수 있는 경제력을 쌓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정원 관리의 고충을 알면서 아파트보다 비싼 집을 처음부터 도전할 수는 없었다.
정원의 잔디는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날씨가 추워서 풀이 거의 성장하지 않는 11월과 3월 사이를 제외하면 1년 내내 3-4주에 한 번씩 잔디를 깎아야 한다. 이를 제때 안 깎으면 정원이 밀림으로 변한다.
기계 하나로 잔디 관리가 가능하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잔디 기계가 닿지 않는 시멘트 바닥 틈과 담장 모서리에 자라는 풀은 손과 도구를 이용해 뽑아야 한다. 이런 환경 덕분에, 아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잔디 기계를 직접 다루고 정원 일을 도왔다.
담쟁이덩굴도 골칫거리다.
담쟁이덩굴 하면 국내외 유명 대학교의 건물을 떠올리는 이가 있을 것이다.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을 장식하는 초록빛 담쟁이가 가을이 되면서 선홍빛으로 변하고 캠퍼스 전체를 밝히는 이국적 풍경을 익히 보았기에 담쟁이에 대해 환상을 가질 만도 하다.
하지만, 영국의 주택가에서 볼 수 있는 담쟁이는 대부분 사계절 내내 진녹색의 싱싱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아무리 줄기를 끊어놔도 새로 뻗어 나오며, 덩굴이 담장을 넘어오거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올 정도로 강인한데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목재로 된 벽이 뒤틀리고 심하면 썩어버린다. 주변의 식물마저 덮어버려 보기에도 흉한 데다, 애써 가꾼 나무와 식물을 고사시킨다. 덩굴이 옆집까지 뻗어가면 이웃이 피해 신고를 할 수도 있다.
정원에 나무가 있다면 가지치기도 필요하다. 계속해서 길게 뻗어가는 가지가 창문을 덮어버리기도 하고, 길 옆으로 삐져나와 통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낙엽이 바람에 실려와 정원 바닥이나 구석에 쌓이는 것도 치워야 한다. 낙엽이 잔디와 화단을 덮어버리면 그 아래 식물의 생장에 방해가 되어서다. 봄과 가을에 돌풍이 불면 정원 담장이 흔들리다 못해 넘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관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본적인 정원 관리에 필요한 장비로는 잔디 기계와 호미, 삽, 쇠스랑, 가위, 장화, 장갑, 모자 등이 있다. 영국에서 단기간 체류하는 동안 거주하는 집의 정원 관리를 한다면 이런 장비를 구매해서 직접 가꿀 것인가, 아니면 시간제로 정원사를 고용할 것인가, 고민도 해봐야 한다. 어떤 경우든 비용이 부담되는 건 마찬가지다.
어린 자녀가 있다면 잔디 기계와 쇠스랑 등 날카로운 장비가 아이의 손에 닿지 않도록 보관해야 한다. 아이에게는 신기한 장난감으로 보이는 것들이므로 작업 도중 아이가 뛰어들지 않도록 감시도 필요하다.
정원 관리는 세입자의 기본 의무사항이다. 그런 의무 조항이 없더라도, 정원을 관리하지 않으면 꿈에 그리던 낭만 가득한 집이 아닌 공포 영화의 살인범이나 사악한 마녀가 숨어 살만한 무서운 집으로 탈바꿈한다.
밤 9시...
여느 때처럼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아들이 갑자기 블라인드를 거칠게 닫아버렸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옆집 커플이 수영복 차림으로 자쿠지에 앉은 모습을 봐서라고 한다. 사춘기 아들의 행동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주변이 고요해진 밤에 거칠게 내려 닫히는 블라인드 소리와 함께 갑작스레 어두워지는 방 창문을 보고 옆집 사람들이 우리를 오해하지 않을까?
그 정도 노출은 관대하게 넘기라고 아들에게 일러줬다. 보기 거북한 장면을 차단하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대놓고 세차게 블라인드를 내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영국은 계절과 상관없이 기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웃통을 벗고 다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마을 산책로나 놀이터 옆에서 비키니 끈을 풀고 엎드려 선탠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공간에서도 이 정도로 노출을 하는데 자기 집 정원에서는 어떨까?
2층에 위치한 아들의 방 창문에 서 있으면 이웃집 세 곳의 정원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 실제 벌어지는 장면이다.
- 남녀 둘이서 혹은 친구들끼리 수영복 차림으로 야외 자쿠지에 앉아 있다.
-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워 선탠을 한다.
- 온 가족이 수영복 차림으로 뛰어다니며 물놀이를 한다.
영국 정원의 담장은 대부분 나무판자로 되어 있고 높이는 1.8m 정도가 표준이다. 성인 남자가 살짝 고개를 들면 들여다볼 수도 있고 뛰어넘을 수도 있다. 집마다 다르긴 하지만, 정원으로 접근하려면 자기 집 내부 통로를 거쳐 가는 방법과 외부에 달린 문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무엇보다, 담이 높지 않고 나무판자라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정원에다 각종 농기구와 장난감, 자전거, 물놀이 도구를 보관하다가 도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도로변에 노출되는 집이라면 아끼는 물품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보관에 신경 써야 한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A 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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