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살면서 더 바빠지는 육아

by 정숙진

"험티 덤티 샛 온 어 워... ♬~"


무심결에 내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족과 함께 동네 산책을 하던 중 누군가의 집 마당에 놓인 장난감을 보고 떠올렸을 수도 있고, 노랫말을 연상시키는 담장을 발견해서 일 수도 있다. 옆 사람과 나누던 대화로 인해 생각났을 수도 있다.


노래를 시작한 배경은 기억나지 않지만, 곁에서 질겁하며 뜯어말리는 아들의 반응은 똑똑히 기억한다.


아들이 말리니까 더 하고 싶어졌다.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듣는 사람이 괴로워할 정도의 음치도 아니요 아이와 함께 지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불러도 편하게 들을 음인데, 아들이 왜 이런 반응을 했을까?


내가 부른 노래는 영국의 유아가 즐겨 부르는 동요다. 초등학생 나이만 되어도 유치하다고 안 부를 것이다. 이걸 10대 아들과 산책하는 길에 불렀으니.


어떤 노래냐 하면...


Super Simple Songs



애초에 아들을 당황시키려 부른 건 아니다. 이날처럼, 이유도 모른 채 습관처럼 부르기도 하고 아들과의 예전 추억이 떠올라 부르기도 하던 노래가, 결국 나중에는 아들을 놀리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 돼버렸다.



"엄마가 노래 불러줄게, 울지 마!"


한 때, 노래 한 소절만으로 아들의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드는 신통력이 내게 있었다.


어린 아들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내가 선택한 방법이 노래 부르기였다. 병원이나 마트에서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특히 효과가 있었다. 어른인 내가 견디기 힘들 정도면 아이는 어떻겠나. 혼자 힘으로 무료함을 달랠 방도도 없고 몸도 피곤하니 아들이 칭얼대기 시작하는데, 이런 조짐이 보이면 나는 곧바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육아 초기에 곧잘 부르던 노래는 '꽃밭에서', '반달', '노을', '꼬마 자동차 붕붕', '개구리 왕눈이', '아기공룡 둘리' 등 어린 시절 내가 직접 듣고 자란 한국의 동요와 만화 영화 주제곡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노래를 실제 듣고 불렀을 법한 시기에서 20여 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다시 기억해 낼 만큼 그 예전 내가 많이 듣고 불렀으리라. 아들은 이런 노래와는 거의 무관한 시대와 장소에 살면서도 내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다행히 안정을 찾았다.


우는 아이를 달랠 때 부르는 노래는,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 부르냐가 중요하지 않다.


일단 부르기 시작하면 흐름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 동요와 만화 주제곡으로 시작했다가 기다리는 상황이 예상보다 길어지면 노래가 바닥이 나버리고 말기에 흘러간 가요마저 끄집어내야 했다. 해외에 살면서 좋은 점은, 유행이 한참 지난 한국 가요를 불러도 주변에 눈치 볼 일이 없다는 점이다.


아니다.


요즘 같은 영국 분위기라면, 흘러간 한국 가요라도 부를 줄만 안다면 케이팝 전문가라 존중해 줄지도.


문제는, 영국에서 육아를 하다 보니 이런 한국어 노래 메들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 곰 사냥을 떠나요, 아~주 큰 곰을 잡으러 가요!"


동네 도서관에서 열리는 유아 모임에 참석했을 때다.


또래 아이들이 보호자와 함께 매주 모여서 그림을 그리고 동화 구연을 듣다가 노래를 부르며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아들과 나 모두 시종일관 즐거워하며 모임에 집중하지만, 노래 부르는 시간만 되면 둘 다 머쓱해지곤 했다. 기껏해야 입만 벙긋하는 정도가 다였다. 아는 동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학교에 다니기 전이니, 내가 모르는 동요는 아들도 모를 수밖에 없다.


이날도 노래 부르기는 포기해야지 하던 찰나...

오...

이런 행운이...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영국 동요 중 하나가 강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라운드 앤 라운드 더 가든... ♬~"


Playsongs Publications



노래 부르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사에 맞춰 아이의 손바닥에다 동그라미를 그리다가 마지막에 겨드랑이나 목으로 옮겨가 간지럼을 태우는 것으로 끝을 맺는 노래다. 이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아이가 웃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아들은 손바닥에 또 그려달라고 내게 손짓을 하곤 했다.


물론, 대부분의 동요가 그렇지만 나이대를 잘못 선정하면 곤란해질 수도 있다. 어느 정도 큰 아이에게 이런 노래와 동작을 시도했다가는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날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귀에 익숙한 노래가 나오자, 아직 말도 못 하는 아들이 나를 올려다보고는 '엄마가 불러주던 노래네요'를 눈으로 말하며 얼마나 반기고 좋아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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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기억하려나, 엄마 노래를 듣고 행복해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 이후 곧바로 영국 동요집을 샀다. 이제는, 다른 육아용품과 마찬가지로, 집에서는 사라지고 없는 음반이다. 자선단체에 기증했거나 아이를 키우는 다른 집으로 보냈으리라.


제목이 'Top 50 Nursery Rhymes'로 시작했던 것 같다. 어디에서 샀는지, CD인지 테이프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50이라는 숫자는 확실하다. 가사를 다 외울 작정까지 했으므로, 곡목이 가장 적은 50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시험공부하듯 음악을 듣고 가사를 외웠다. 이런 동요는 취학 전 아동이 주로 부르므로 유효기간이 얼마 안 된다. 영국의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듣고 자란 노래지 않은가. 내 아들에게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당장이라도 써먹으려면 달달 외우며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여겼다.


다행히, 대부분 곡이 짧고 노랫말도 반복되었다. 한국어로 번안되어 나온 곡도 있어서 생각보다 익숙하고 쉽게 외워졌다.


이렇게 익힌 노래 중 하나가 앞서 나온 Humpty Dumpty다.


그리고,


The Wheels On The Bus

Hey Diddle Diddle

Two Little Dickie Birds

Wee Willie Winkie

Row Row Your Boat

Incy Wincy Spider

Old MacDonald Had a Farm

Five Little Ducks


등의 노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 노래들 중, 유일하게 반복되는 문구도 거의 없고 가사마저 엉뚱한 단어의 조합에다 쉴 새 없이 빠르게 불러야 하는 'Hey Diddle Diddle'이 있다. '이걸 어떻게 외우나?' 하면서도 나는 결국 외웠고, 재미있는 가사가 지금껏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처럼 누구나 쉽게 외우고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동요의 힘이지 싶다.



CBeebies



내가 50개의 영국 동요를 거의 다 외워갈 무렵, 한국 TV 만화를 아들과 같이 보기 시작했다. 그때 본 방송이 '뽀로로', '부루와 숲속 친구들', '구름빵'이며, 그러는 사이 주제곡도 같이 외웠다. 여전히 공부의 연속이지만 영국 동요 외우기보다는 쉬웠다. 친숙한 모국어로 된 노랫말이요, 만화를 볼 때마다 주제곡을 들을 수 있어서다.


이후, 내가 아들에게 불러주는 노래 메들리가 제법 알차고 길어졌고, 나중에는 아들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두 모자의 동요 부르기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노래를 나는 아직도 외우고 그 시절을 추억으로 떠올리지만, 10대로 접어든 아들은 그 시절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엄마의 노래 부르기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아들, 그때는 엄마가 노래 부르기만 하면 좋아라 했잖아!"

"내일 산책하는 길에는 Incy Wincy Spider 불러볼까?"

"아니다, 버스 지나갈 때마다 The Wheels On The Bus 불러볼까?"


아들이 답할 리가 없다.




"아들, 농담이야!"


커버 이미지: Photo by Vladimir Haltakov on Unsplash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