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뭐라고요?
직원의 말 첫마디부터 내게는 장벽으로 다가왔다.
새로 이사 갈 집을 고르기 위해 부동산 사무소에 문의했다가 생소한 용어가 줄줄이 흘러나오는 통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지금이야 이렇게 하나씩 단어로 나열하며 각 집의 차이점을 설명할 정도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상황이 전혀 달랐다. 먼 이국 땅에서 쓰는 생소한 언어로 들리는 말을 어떻게 받아 적거나 그 뜻을 이해하겠는가.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영국에도 영국만의 고유한 주택 문화가 있다. 문화만 생소한 것이 아니라 영국에서만 사용하는 영어 단어까지 더해져, 영국에 처음 오는 이에게 혼란을 주곤 한다.
외국인에게 한국식 주택 문화를 소개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원룸, 빌라, 맨션 등 엄연히 한국에 존재하는 주거 공간이지만, 근원이 되는 영어의 실제 의미와는 딴판인 주택은 혼란을 주기 십상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전세 제도는 또 어떤가.
영국의 부동산 광고를 들여다보면 아리송한 명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영어사전을 참조하더라도 이게 무슨 말인지, 어떤 집인지 헷갈린다.
영국에 살면서 열 번도 넘게 이사 다니고, 무지에 의해서든 필요에 의해서든, 지나치게 많은 형태의 주거지를 일일이 둘러보고 실제 살아보고 월세와 매매 계약까지 직접 진행하면서 익힌 영국의 주택 용어를 이 자리에 정리해 봤다.
'평평한'이라는 뜻의 형용사지만, 영국에서는 '아파트' 형태의 주택을 가리키는 명사가 되기도 한다.
한국의 흔한 주거 형태인 아파트라는 단어는 미국식 영어 Apartment에서 왔는데, 영국의 Flat과 동일하다 볼 수는 없다. 영국의 플랏은, 한국에 흔한 고층 아파트뿐 아니라 2~3층 높이의 다세대주택, 빌라, 맨션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Flat = 아파트, 다세대주택, 빌라, 맨션
여기에서 질문 하나를 해보겠다.
위 사진에 보이는 플랏의 중간에 있는 층을 영국인은 몇 층이라 부를까?
정답은...
1st floor다.
내 눈에는 2층으로 보이는 곳을 영국인은 1층이라 부른다고? 믿을 수 없겠지만 분명 그렇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1층이라 부르는 층을, 영국에서는 G층 (Ground floor)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아파트나 상가, 사무소 등 다층 건물을 찾아갈 때는 층수를 잘 구별해야 한다. 특히,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층수마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계단을 오르다 엉뚱한 층으로 들어설 수 있다.
Detached란 분리되거나 떨어져 나간 것을 의미한다.
집이 하나로 분리되어 있다는 말이다.
Detached house = 단독주택
이웃집과 붙어있지 않기에 사생활 침해도 적고, 층간이나 벽 사이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분쟁도 없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다른 형태의 집에 비해 가격이 비싸며 난방 효율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반만 떨어져 있는 집?
건물 하나에 대문 두 개가 보인다.
영국에서는 흔한 주거 형태임에도 한국어로 정확히 들어맞는 단어가 없다. 한국에서 새롭게 생겨난 땅콩주택과 유사하다.
Semi-detached house = 땅콩주택, 두 채 연립주택
두 채의 집이 붙어있으니 집의 한쪽 벽면은 물론 집 뒤편에 있는 정원 담장까지 옆집과 공유한다.
여기서 말하는 '테라스'도 영국식 영어다. 발코니처럼 집 건물에 속한 공간을 뜻하는 테라스가 아닌, 건축물이 연이어 붙은 형태를 가리킨다.
골목을 따라 비슷한 형태의 집이 다닥다닥 붙어 길게 이어져있는 연립주택이 '테라스 하우스'이다.
Terraced house = 연립주택, 테라스 하우스
테라스 하우스에 정원이 있다면, 이 또한 이웃집과 담장을 공유한다. 주로, 도심의 밀집된 거리에서 볼 수 있다.
맨션이라고? 영국에도 맨션이?
영국에서 맨션이라고 하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대저택을 뜻한다. 주로 수백억 자산가와 연예인 등 유명인의 집이 많다. 영국에서는 대표적으로 베컴 부부나 엘튼 존의 집이 이에 해당한다.
Mansion = 대저택
당연히 한국의 맨션과는 다르다. 'XXX Mansion'이라고 된 한국식 집 주소를 영국인에게 보여준다면, 아마도 '와, 이 친구 엄청 부자구나'로 생각할 수도 있다.
'방갈로'는 해외 휴양지에서 볼 수 있는 숙박 시설이나 목조 주택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인도식 목조 건축물이 영국에 들어오면서 전혀 다른 형태가 되었다.
앞서 나온 Detached house처럼 보이지만 일반 단독주택과는 차이점이 있다.
대부분의 영국식 주택이 2층 이상의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비해, 방갈로는 단층이다. 그럼에도, 침실과 화장실, 욕실, 부엌 등 일반 주택의 필수 구성 요소는 다 갖추고 있다. 한 층에 모든 걸 갖추고 있기 때문에 건축 면적이 다른 집에 비해 크다.
Bungalow = 단층집
계단을 오르내리기에 부담을 느끼는 노인들이 선호하는 주거 형태로, 은퇴한 노인층이 거주하는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단어는 생소하지만 한국인에게 익숙한 형태의 주거 공간이니, 사진을 보고 맞춰보자.
바로, 원룸이다.
Studio flat = 원룸
* 미국식 Studio apartment
영어로는 화장실 (Bathroom), 거실 (Livingroom), 침실 (Bedroom)까지 모두가 Room이기에 One room이라는 독립된 주거 공간은 없다.
잘못된 영어로 시작되긴 했지만 엄연히 한국식 주택 용어로 인정받기에, 지금의 한류 열풍이 계속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정식 영어가 아닌데도 한국인이 자주 쓴다는 이유로 스킨십 (Skinship)이 정식 단어로 등록되지 않았는가.
그때는 아마 내가 영국인에게 원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주택을 가리키는 용어는 아니지만, 영국에서 주거 문화를 논할 때 한 번씩 등장하는 단어다.
Squat은 운동 자세를 뜻하는 스쾃 외에도, 영국에서 불법 거주의 의미가 있다.
Squat = 쪼그리고 앉다, 불법 거주하다
Squatter = 불법 거주자
왼쪽 사진 속 플래카드에 적힌 내용을 보자.
Better to squat than let homes rot
Resist evictions
집이 망가지도록 내버려 둘 바에 불법 거주가 낫다
강제퇴거 불응
주택이나 상가 건물이 장기간 비어 있으면 불청객이 들끓기 십상이다. 이들을 내보내기 위해 경고장과 경찰이 동원되지만 이처럼 버티는 사람을 쫓아내기란 쉽지 않다.
이 또한 주택 종류는 아니지만 영국에서 집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한국에는 흔하지 않은 건축물이라 우리말로도 애매하고 영어 단어로도 생소하다.
Conservatory = 온실, 일광욕실
정원 문화가 발달한 영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집의 뒤편 즉 정원과 연결되는 출입구에 구조물을 증축한 것이다. 사전적 의미인 '온실' 보다는 위 사진처럼 별도의 거실이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된다.
사방에 유리가 설치되어 해가 집중되는 공간이기에, 한여름에 위 사진과 같은 상태에서 계속 앉아 있다가는 열사병으로 쓰러질 수 있다. 더운 날 도로변에 주차된 자동차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설치해 유리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차단하기도 한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Dillon Kydd on Unsplash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