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던 남성이 내게 한 말이다.
겨울 방학 동안 집에 와 있던 아들이 옷이 필요하다고 해서 가족 모두가 쇼핑에 나섰을 때 일이다.
상점에 들어와 제일 먼저 입어보고 아들이 마음에 들어 한 재킷을 두고 내가 비싸다는 이유로 단박에 잘라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코너로 옮겨간 뒤 그곳에 걸린 재킷을 몇 점 더 입어보더니 이번에는 아들이 마음에 안 든다는 반응이다. 그럼, 어쩔 수 없다, 다른 코너로 옮겨야지.
이런 식으로 자리를 이동하며 새로운 옷을 골라 아들이 입어 보고... 가격이든 스타일이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옮기고... 또 골라 보고... 그러다, 막판에 두 벌의 재킷을 양손에 들고 어느 것을 사면 좋을까로 고민이 좁혀졌다.
그런데, 아까부터 우리가 옮겨 다니는 옷 코너를, 시차를 두고, 조금씩 뒤따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평일이기도 하지만 이미 폐점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인지 주변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상점의 동선 대로, 또 그 안에 숨겨진 마케팅 전략에 따라 소비자들이 옮겨 다닐 수 있도록 꾸며놓은 구조에서 모두가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이 남성 또한 다른 가격대의 제품이나 스타일을 구하러 코너를 하나씩 옮겨 다닌 건지도 모른다. 우리와 한 구역 차이를 두고 계속 뒤를 따르는 형국으로 말이다.
그런데, 다 큰 성인 아들과 장난치듯 말을 주고받는 우리의 행동을 흥미롭게 쳐다보는 사람이 간혹 있다. K팝과 드라마 열풍 속에서 한국어를 배웠다며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대화를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한국인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려는 이도 있다. 이 남성도 그런 부류인가 싶었다.
아니면, 단순히 사람과의 대화가 고파서 접근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좁은 상점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무런 구매도 안 하고 시간만 끄는 우리 일행을 누군가 뒤따르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폐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한적해진 상점에서 말이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내가 나서서 간단히 대꾸를 해줬더니 남성은 신이 나서 말을 더 걸어왔다.
본격적으로 대화 나눌 상대를 만났구나 싶었는지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도 거리낌 없이 말을 이어가는 사람을 보면 늘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상대가 기뻐하는 표정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 좋아지니까.
하지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성의 일방적 독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가 예의상 추임새를 중간중간 넣어주자니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의 최종 심사대에 오른 정장 스타일의 회색 반코트에 이어 같은 회색이면서 좀 더 캐주얼한 재킷까지, 이 둘 사이에서 가족 모두가 열띤 토론을 벌이다 결국 캐주얼을 선택한 직후다. 드디어 상점을 떠날 수 있겠구나 그래서 늦게나마 저녁을 먹을 수 있겠구나 싶어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진 상태다.
이런 때 나타난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길어지면 그 자체로도 곤란하지만 무엇보다 남성이 언급하는 내용이 듣기 거북해졌다.
'중국인'을 계속 들먹이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낯선 사람에게 무슨 말이라도 걸어 보려다 우연히 튀어나온 주제라 치부했다. 중국인을 혐오하거나 비하하는 발언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왜 하필 우리 앞에서 중국인 이야기를 꺼내냐 말이다.
애초에 '이 옷이 잘 어울릴까'라는 질문에서 대화가 시작되었으니 그 방향으로 이어간다면 내가 잘 대꾸해 줄 수 있는데, 이 사람은 나와 대화를 시작한 순간부터 옷 고르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도대체 이 상점에는 왜 들렀지 싶을 정도였다.
남편이 재킷을 계산대로 가져가 결제를 한 후, 마침 근처에 있던 액세서리 코너에서 우산을 발견하고 이것도 산다고 했지? 하며 또다시 점원에게 가져가는 장면을, 나는 곁눈으로 초조하게 지켜봤다. 그 와중에도 남성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처음 만난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가벼운 대화 주제를 한가득 뭉쳐다 어느 구석에 처박아 두려 작정한 건가? 이 남성은 왜 하필 중국인 친구가 어떻고, 중국이 어떻다로 나올까? 이유는 한 가지다. 우리를 중국인으로 착각했으니까.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화가 엉뚱하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남성의 말이 잠시 끊기는 틈을 타서 내가 조용히 말했다.
남성이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곧이어 사과를 했다. 그런지 몰랐다며 무안할 정도로 반복해 말하더니, 우리가 한국 출신이라는 말에 이내 주제를 싹 바꿔버렸다.
하...
한국이랑 트럼프랑 뭔 상관이 있는지, 아까 분명 북한이 아닌 한국이라 했는데, 뭘 또 착각해서 저러는 건지.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받고 불쾌하더라는 반응을 하는 이가 간혹 있다. 이들은,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오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가 날 일이며 인종 차별이라는 표현도 썼다.
초면에 상대를 무턱대고 중국인으로 추정하는 건 무례한 행동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인종 차별로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처음 만나는 외국인의 국적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 누구나 그 정도 실수는 하지 않을까? 특히, 서양인은 한중일 아시아계의 외견상 차이를 구별하기 힘들어한다. 한국인이 미국과 유럽 출신을 구별하기 힘들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XX인이냐'는 질문은 상대의 국적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특정 국가 출신에 대한 편견을 깔고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질문 하나만으로 인종 차별로 몰고 갈 수는 없다.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우리의 국적을 먼저 물어보고 그와 관련된 대화를 이어 가는 편이지만, 상점에서 만난 이처럼, 처음부터 당연히 중국인이겠거니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려, 쇼핑을 끝내고 식당으로 향하던 중 아들에게 말을 꺼냈다.
"물어보지도 않고 우리를 중국인 취급하는 사람을 앞으로 만나면 엄마가 정중히 부탁해 볼까? '세상에 우리처럼 생긴 사람은 중국 말고도 다양한 국가 출신일 수도 있으니, 국적에 대한 질문부터 먼저 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이야?"
이런 내 긴 물음에 아들은 간단히 답했다. '중국인 아닙니다'라고만 해도 될 것 같다고.
아들의 그 간단한 답변을 듣고 나는 또 길게 생각해 봤다.
국적을 묻지도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중국인으로 오해하는 사람에게 '중국인 아닙니다'라는 말로 정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국적을 함부로 추정하면 안 되겠구나 깨닫게 만들 거라는 말이지. 그런가, 아들?
커버 이미지: Photo by Beth Macdonald on Unsplash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