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발차기를 하다가 갑자기 한 말이다.
5년 반 전, 코로나로 인해 영국 전역에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때다. 학교는 휴교령이 실시되고 일부 업체는 폐쇄되었기에 아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헬스장에는 당연히 못 가고 야외 활동도 힘들어지자 우리 가족은 집에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더 정확히는, 내가 집에서의 운동을 제안했다.
정해진 시간에 세 사람이 거실에 모여 요가 매트를 깔아놓고 맨손 체조와 근력 운동을 하는 식이었다. 가족이 함께 하는 것도 집에서 운동하는 것도 모두 처음이라, 금방 싫증을 내면 어쩌나... 좁은 공간에서 옆 사람과 부딪히는 바람에 서로 으르렁 대면 어쩌나... 조바심을 내며 내가 직접 운동 프로그램을 짜고 반응을 살피고 즐겁게 운동할 수 있도록 곁에서 추임새도 넣어가며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고자 노력했다.
내가 짜놓은 프로그램 대로라면, 팔 벌려 뛰기 30개 실시 후 곧바로 암 워킹 10개를 실시해야 한다. 당시 우리 집 남자들 체력으로는, 이런 고강도 순환 운동을 따라 올 이는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강요했다가는 곧바로 나의 헬스 코치 자격 - 뭐 이미 무자격이지만 - 박탈당했을 것이다.
대신, 나와 아들 선수가 먼저 팔 벌려 뛰기를 실시하고 나면, 남편 선수가 들어와 나와 함께 팔 벌려 뛰기를 하고... 그렇게 한 세트를 끝내면 남편 선수는 퇴장하고... 또 그다음 아들 선수가 들어와 암 워킹을 하고... 그러는 사이 공백이 생기는 선수는 자신의 체력에 맞춰 중간에 가벼운 운동을 하는 식이었다. 나는 모든 동작을 두 번씩 반복하고 연속으로 다음 동작을 이어가는 강한 체력과 지구력으로 코치 자격을 유지했다.
처음에는, 과연 이런 식으로 운동이 될까 싶었는데 다행히 다들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했고 나름 만족하는 듯했다. 운동 패턴은 조금씩 변했지만, 재작년에 아들이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날 때까지 가족 운동은 이어졌다. 도중에 코로나 봉쇄령과 외출 금지령이 해제되었음에도 말이다.
현재 아들의 경우, 어쩌면 당연하게도, 학교 헬스장과 클럽 활동으로 또 그 사이 공간을 조깅으로 연결하며 알차게 운동을 하고 있다.
남편과 나는 여전히 집에서의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점차 운동에 익숙해지고 실력도 늘면서 운동 장비도 구매하고 운동 유튜버의 영상에 꽂혀 유튜브 프리미엄까지 가입하는 등 금전적 투자도 제법 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아들이 빠져 여유가 생긴 공간에서 장비와 영상까지 동원하는 풍족한 방식이 아닌, 다들 한 덩치 하는 남녀 3명이 비좁은 거실에서 복닥거리며 위태롭게 공간을 나누어 쓰며 운동하던 시절 이야기다.
이날 마침 새 운동 프로그램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에서 내가 난데없이 발차기 시범을 보였다.
엄마의 멋진 동작에 감탄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아들은 자기도 질세라 이건 태권도 발차기라며 나서서 선보이는 바람에 두 모자가 번갈아 가며 거실에서 방방 뛰기를 이어가는 우스꽝스러운 형국이 되었다. 아들은 태권도를, 나는 킥복싱을 배웠으니 전혀 엉뚱한 시범은 아니다.
이런 때 남편은 뭘 하고 있었냐면... 자기는 합기도 했노라며 늘 자랑하면서도 정작 무술 경력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뻣뻣한 자태에다 발끝이 도저히 머리 위를 못 넘기는 형편이니 일찌감치 저 뒤쪽 안전지대로 물러난 상태다.
나만의 독주 무대에서 멋진 동작을 선보이려 했다가 경쟁자를 만나는 바람에 괴상한 발차기 경연 대회가 되고 말았지만, 당시 갈구하던 새롭고 흥미로운 운동 프로그램을 꾸리는 시간은 되었다. 종목은 다르지만, 위협적인 자세랍시고 상대의 머리를 향해 서로 경쟁적으로 발을 갖다 대면서 말이다.
키다리 엄마에게는 아직 못 미치지만, 중학생 나이의 아들은 당시 키가 170cm를 넘기고 체중은 나와 비슷했기에 같은 종목으로 만났다면 둘의 겨루기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태권도를 그만둔 역사도 길지만 내가 킥복싱을 그만둔 역사는 훨씬 더 긴 데다 애초 단련 기간이 둘 다 1년 남짓이기에, 우리 모자가 이날 선보인 동작은 킥복싱도 태권도도 아닌 발차기 난리법석에 불과하다. 층간 소음 걱정 없는 주택이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아들이 갑자기 태권도 배우던 시절을 떠올린 것이다.
최근 일도 아닌데.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집 근처 도장에서 1년간 태권도를 배운 적이 있다. 지금껏 아들이 다닌 유일한 학원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또래 자녀를 둔 학부모의 소개로 호기심에 들렀다. 집에서 한국어 공부도 하고 숙제까지 하느라 친구들에 비해 나름 바쁜 일과를 보내는 아들이 힘들다고 하면 계속 다니라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첫 번째 태권도 수업을 받고 온 날, 아들은 종이 인쇄물을 집에 가져왔다. 태권도 기본 동작과 용어가 적힌 자료로, 그 속에 담긴 숫자를 외우는 것이 첫날 숙제라고 했다. 한국의 도장에서라면 숙제가 될 일도 아니지만, 영국에서는, 아니 세계 어디를 가든, 태권도를 배우는 외국인에게는 숙제가 되고 마는 자료다.
아들이 받아 왔던 것처럼, 한국어 숫자를 영어로 음역 표기한 자료다.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서는 기본 동작과 구호, 숫자를 모두 한국어로 익혀야 한다. 이걸 한국어로 외우는 것도 외국인이 태권도를 입문하는 과정에 속하는 셈이다.
당시, 태권도를 배우던 유일한 한국인이지만, 아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도장에서 인지하지는 못한 것 같다. 사실, 중요한 정보도 아니고 아들도 나서서 말할 기회는 없었나 보다.
태권도 수업이 시작되고 올망졸망 모여있는 노랑머리, 파란 눈의 친구들 앞에서 숫자 외우기, 누가 제일 잘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아들에게 칭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한류 바람이 불고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노래, 음식까지 전 세계에 퍼져도, 본인이 먼저 밝히기 전까지는 '저 사람이 한국인이구나'라고 판단할 서양인은 별로 없다. 대부분 중국인 간혹 일본인으로 짐작하기 때문이다.
'6년이나 지난 일을 왜 이제 얘기하느냐?' 묻고 싶었는데, 초등학생 입장에서도 그게 부모에게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다 아들이 판단한 모양이다.
커버 이미지: rutgers.edu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