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양'이라는 단어를 재차 강조한 A의 말이다.
시댁이나 친정 식구도 아니요 친구도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이다. 이날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 지 30분이 채 안 된 시점에서다.
언제 어디서든 가족에 관한 주제만 나오면 '둘째 안 낳아요?'라고 물어오는 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대화도 내가 마흔에 접어들면서 사라졌다. 설령 내 나이를 착각한 이가 있다 해도, 현 상황을 설명하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A는 이런 통념을 완전 무시한 사람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자녀 두 명은 반드시 키워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다.
세상 어느 곳에 살든 사람과의 만남이 늘 기분 좋을 수만은 없다.
영국에 살다 보니, 고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첫 만남부터 친구처럼 살갑게 굴다가 어느 순간부터 훈계를 늘어놓는 사람을 더러 만난다.
더 늦기 전에 애를 가져야 한다
아들 하나만 있으면 어른들이 섭섭해한다
딸은 살림 밑천이다
아기 엄마가 예쁘게 꾸미고 다니면 어떡하냐
요즘엔 생후 18개월부터 과외를 시작한다더라
평소 잠잠하다 명절만 되면 쏟아지던 이런 잔소리를, 영국에 산다는 이유로 나는 수시로 들어야 했다. 아니, 이건 어쩌면 내 착각일지도, 요즘 이런 잔소리를 하는 문화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닌지?
내가 예전에 알던 친척 잔소리는 명절 때만 들으면 되고 오랜 세월 나의 존재를 지켜본 사람이 하는 말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반면, 영국에서 만나는 이들의 잔소리는 그 시기가 명절로 한정되지 않으며, 나와의 친분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같아 보여도 해외에서의 만남은, 만남의 배경도 고국에서와 다르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다르다. 낯선 나라에 먼저 정착해 사는 한국인을 만나면 구세주처럼 반기는 이도 있지만, 구세주가 아닌 호구로 삼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내가 굳이 만나려 들지 않아도 주변에서 먼저 만남을 주선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학부형의 말이다.
이 제안이 썩 내키진 않았지만 친절함이 몸에 베인 이의 선의를 무시할 수 없어 그가 소개하는 대로 사람을 만났다.
한국인과의 만남이 내키지 않았던 건, 둘의 만남을 주선한 친구가 못 미더워서도 아니고, 그가 소개해 준 사람에게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동안 낯선 고국 사람과의 만남으로 피곤해지고 상처받았던 기억 때문이다.
고국에서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일로 고충을 겪는 것이 해외생활이다. 예상치 못한 문제로 고민하다 우연히 의지할 사람으로 나를 만나 반가워하면서 서로의 관계가 시작된다. 나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선뜻 이들에게 손을 내밀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의 요구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도와주는 입장에서 부담이 느껴지는 시점이 있다.
혹은, 앞서 말한 A처럼 상대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주제로 대화를 일방적으로 몰고 가는 태도가 부담스러웠다.
사람 때문에 삶이 피곤하다는 기분이 들 때, 내가 호구가 된 건 아닐까 혹은 내가 힘들어하고 있음을 상대가 모르는 건 아닐까, 질문해 보자.
우리 동네로 이사 온 B의 연락이다.
한국과는 다른 보안 환경과 설치 프로그램 때문에 컴퓨터 사용, 특히 인터넷 뱅킹에 애를 먹는 이가 더러 있다. 학교나 회사 등 소속 기관의 IT 담당자에게 문의할 일이다. 물론, 비전문가라도 영국에서의 경험 때문에 간단한 조치만으로 해결 가능한 일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정이 다 돼가는 시간에 와달라 하는 것이 도리인가?
서로 막역한 사이도 아니다. 그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불과 몇 주 전이요, 이 또한 영국에서 만난 고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간단히 인사만 나누었을 뿐이다. 급한 대로 아무에게나 전화 돌리다 운 좋게 걸린 이를 붙들고 당장 와달라 요구하는 식이었다.
이외에도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면봉이 필요하다' 등의 이유로 한밤중 출동을 요구한 이도 있었다.
영국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그동안 내가 축적한 노하우를 공유하기만 해도 해결되니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지금 시간이 중요해? 나 무지 급하거든 당장 출동해!' 이런 소리로 들렸으니.
열쇠가 없으면 열쇠공을 불러야지, 나를 왜 부르나?
내가 영국에 먼저 정착해 있다 뿐이지 IT 전문가도 보일러 수리공도 변호사도 아닌, 평범한 해외 거주자일 뿐이다.
그런데, 내 능력과 무관한 일마저 해결해 달라 요청하는 이가 있다. 당장 어디에 연락할지 몰라 급한 대로 손 뻗은 것일 수는 있다. 영국은, 인건비가 비싸다는 인식이 있어서 업체 연락을 꺼리는 이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해결해줘야 하나?
집 구하는 일을 도와주고 나서도 감사의 인사보다 불평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는다
물이 샌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
내가 집 구하는 과정을 도와줬을 뿐 집주인이나 세입자 (즉, 위 부탁을 한 사람)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요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입장도 아니다. 집에 문제가 생기면 집주인이나 서비스 업체에 연락하면 된다.
한국에서 살 때는 다들 어디에 연락하고 살았을까?
이뿐만 아니다.
병원에 가야 한다
장을 봐야 한다
골프장에 가야 한다
등의 이유로 차를 태워달라고도 한다.
나와 남편이 번갈아 가며 처음 몇 차례 태워줬고 이제 스스로 해결해야 할 시기임에도, 매주 요일을 정해 계속 와달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이들의 요구에 점점 지친다 싶을 무렵 호구 서비스를 중단했더니, 그동안 칭찬해 마지않던 우리 부부의 선행이 갑자기 얄미운 깍쟁이 부부의 이기심으로 탈바꿈되었다.
속상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상대의 요구가 '내 돈 쓰고 싶지 않으니 네가 와서 공짜로 해결해 줘'로 들린다면,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겠나.
이날 친구를 집으로 초대한 이의 제안이다.
이전에도 종종 나오던 제안인데 나는 애써 못 들은 척하며 딴전을 피웠다.
이날 모인 사람들 중 내가 가장 어리면서 영어와 운전까지 가능하기에 다들 내가 나서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사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했다.
배우자의 학업이나 직장 때문에 영국에 온 사람 중 영어와 운전을 다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 살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능력의 부재가 해외에 나오면서 걸림돌이 되는 순간이다.
지극히 주관적 관찰이지만, 해외에 살면서 언어와 운전이 가능한 이는 대체로 현지 적응을 더 빨리 한다. 운전을 못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지 싶어도, 이들은 정류장을 잘못 내리거나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말까지 안 통하면 감당 못할 일이 벌어진다고 두려워한다. 운전에 대한 두려움과 낯선 장소, 언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박물관이나 병원을 가려해도, 쇼핑을 하고 싶어도, 혼자 할 용기가 없는데 영어와 운전이 모두 가능한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의존하고 싶어진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날 잡아서 좋은 데 놀러 가요'라는 제안이 나오면, 이 모든 일의 기획자와 운전사, 통역사, 안내원 역할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도중 문제가 발생하면 비난의 화살이 내게 쏟아진다. 같은 친구라 해도 동등하게 노는 관계가 될 수 없다.
상대가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면 듣고 흘리면 된다.
평소 잔소리가 많은 이라면 만남을 피하면 된다.
나 자신 혹은 내 가족이 불편하다 느낄 때는 상대의 부탁을 거절하면 된다.
물론, 쉽지 않다.
주변 사람을 호구 취급하는 사람은 언제든 호구로 삼을 대상을 물색해 둔다. 주로, 해당 지역사회 혹은 모임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참들이다. 나 같은 신참이 부탁을 거절하거나 거리를 둔다고 해서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할 사람이 아니다. 곧바로 다른 호구를 찾아 나서면 그만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Antonino Visall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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