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응급실에서의 기억

by 정숙진

“경찰 여섯 명이 여자 하나 진정시키느라 쩔쩔맸잖아.”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성이 옆 동료에게 전하는 말이다.


한밤중에 남편을 데리고 응급실을 찾았을 때 일이다. 대기실에서 자리를 옮기는 도중 근처 병실에서 여자 비명 소리가 크게 들려 흠칫했다. 놀라거나 고통스러워서가 아닌 분노에 차서 악을 쓰며 질러대는 날카로운 비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분만실을 지나고 있는 거였나?


아니다.


분만 시설과 전문의가 24시간 대기 중인 산부인과 병동은 다른 건물에 있었다. 거기를 놔두고 왜 응급실에서 분만을 하겠는가.


행여, 어떤 식으로든 응급실에서 분만을 진행한다 해도 자신의 몸 상태와 태아에 온 정신과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산모가 분노할 여유가 있기라도 하겠나.


문제의 병실은, 창도 없고 출입문도 굳게 닫힌 상태로 외부인이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였다. 내막을 알지 못한 채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듣자니 소름이 끼쳤다. 당장, 촌각을 다툴 정도로 위급한 환자가 몰리는 응급실이 소란스러운 건 당연하겠지만, 이토록 괴성이 울리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새벽이 다가올 무렵 우리가 차지한 자리에서는, 의료진이 전화를 받거나 구급요원이 내미는 환자 서류를 검토하는 데스크가 보였다. 이들의 말소리도 간혹 들렸다. 그렇게 엿들은 말에 따라, 아까 비명을 질러대던 여자의 사정을 짐작하게 되었다. 자해 소동을 벌인 죄수가 아닐까 싶다.



영국의 응급실은 A&E라 부른다. 도로 안내판이나 길거리 표지판에 붉은 글씨로 크게 표기되어 있어 멀리서도 눈에 띈다.



DiYoC4UW4AAr_rR.jpg twitter.com



응급실이 딸린 병원의 위치를 안내하는 영국의 도로 표지판이다.


A&E

* Accident and Emergency


H

* Hospital


우리 가족 모두 시기는 다르지만 영국의 응급실 신세를 한 번씩 진 적이 있다. 다행히 구급차를 타고 급히 후송해야 할 만큼 극도로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영국에 온 뒤 남편의 학업과 취업, 회사의 정책으로 인해 잉글랜드의 끄트머리에서 다른 끄트머리로 또 그 사이 3개 도시를 옮겨 다니며, 열 번도 넘게 이사 다니다 보니 가족 중 누군가를 위해 응급실에 갈 때마다 다른 풍경을 접했다.


무슨 이유에서든 응급실을 찾을 때 아름다운 풍경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살벌할지는 몰랐다.




8월 무더위에 사무실과 비행기에서까지 에어컨 바람을 집중 쐰 남편이 호흡기에 문제가 생겼는지 한밤중에 숨 넘어갈 듯 기침을 해댔다. 그런 남편을 데리고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이날 보았던 응급실은, 내가 본 병원 풍경 중 최악이었다. 시설이나 서비스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new-composite-1_3639758.jpg Sky News



응급실에서는 대기 순서와 상관없이 '위급 환자'로 분류되는 사람이 먼저 검사를 받기에, 남편처럼 덜 위급한 환자는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응급실에 온 이후 남편의 호흡이 진정되어서다. 덕택에, 새벽 1시에 집을 나와 최종 검사를 받고 우리가 귀가한 시간은 오전 6시 반이다.


문제는,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고스란히 마주쳐야 했던 응급실의 민낯이다.


다섯 시간 넘게 기다리는 동안, 매번 다른 의료진이 와서 남편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기록하고 나면 '저 쪽으로 가서 앉으라'라고 해서 우리는 그렇게 자리를 옮기고 또 그다음 질문자가 오면 또 옮기고 하다 보니 그 넓은 응급실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녔다.


끔찍한 비명 소리 말고도 우리가 이날 응급실에서 접한 광경이다.



1. 어... 여... 여기가 응급실인지 영안실인지?


피 묻은 하얀 천이 침대 전체를 덮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성인 남자로 추정되는 몸체가 놓여 있고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피는 얼굴 쪽에서 흐르다 곧 말라붙은 듯했다.


다른 침대의 경우 환자가 얼굴만 드러내고 누워 있거나 앉아 있고, 지친 표정의 보호자가 곁을 지키고 있는 형편인데, 이 침대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침대 주인공의 얼굴도 안 보이고 곁에 보호자도 없어서다.


무심결에 그 곁을 지나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 이 장면은...?

드라마 속 '운명하셨습니다'가 아닌가.


소중한 생명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분주히 오가는 곳이라지만,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가망이 없다 해도 그렇지 병동 한가운데에 시신을 방치해 놓다니.


이런 내 분노와 놀라움과 공포는 10초 만에 끝이 났다. 하얀 천 밑에서 심하게 드르렁 대며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 진동으로 피 묻은 부위의 천마저 들썩이며 말이다.



2. 수상해 보이는 환자


웃통을 벗은 남자가 뒷짐을 진 상태로 우리 곁을 지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가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등을 보이는 순간, 수갑을 찬 뒷모습이 드러났다. 몇 발짝 뒤로 경찰 한 명이 따라나서더니 남녀 구분도 없는 화장실 문을 반쯤 열여 둔 채 입구를 지켰다.



3. 의사보다 더 눈에 띄는 사람은?


기본 검사만 거친 남편에게 언제 누가 와서 무엇을 더 검사해 줄지 모르는 상태로 무한정 기다리다 보니, 할 일도 없고 대화 나눌 힘도 없어서 나는 멍하니 주변을 관찰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응급실 곳곳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였다. 남편처럼 의자에 앉은 사람도 있고 침상에 눕거나 몸을 기댄 환자도 보였다.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환자와 의료진으로 가득한 공간이건만 그럼에도 출입문이 열리면서 새로운 환자는 계속 나타났다. 스스로 걸어 들어오는 환자, 보호자의 부축을 받아 오는 환자, 들것에 실려 오는 환자까지.


그런데, 환자와 의료진 못지않게 분주히 응급실을 오가는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경찰이다.


처음에는, 사고나 폭력에 연루된 이들의 법적 시비를 가리거나 행정 절차 때문에 온 건가 싶었다.


어떤 경우엔 의료진보다 더 많은 수의 경찰이 환자 한 명을 둘러싸기도 했다. 단순히 행정 절차를 위한 일이라면 그토록 많은 경찰이 나설 필요는 없지 않겠나. 각종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응급실에서 말이다.


환자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보고서야 내막을 파악하게 되었다.


수갑을 찬 채 화장실을 이용하던 남성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계속 화장실 근처에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앉은 곳에서 맞은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수갑을 등 뒤로 찬 남자가 또 주인공인데, 이번에는 간이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의료진 2명이 이 남자를 진료하는 중이고, 그 옆으로 파란 의료 장갑을 낀 경찰 4명이 서있었다. 이토록 정교한 진료를 실시할 때는 침대 주변을 커튼으로 가리는데, 이들은 그대로 펼쳐둔 상태였다.


영국의 의료 현장에서 죄수와 이들을 호송하는 경찰을 본 건 이날이 처음은 아니지만, 죄수 여럿을 한날한시 한 응급실에서 만난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근처 교도소라고 하면 20여 km나 떨어진 타 도시에 있고 그곳에도 응급실이 있는데 왜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는 없다.


토요일 자정을 넘긴 때라 사건 사고 발생이 평소보다 빈번했을 가능성은 있다.


언제 어디서나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의료진과 경찰이 새삼 고맙게 여겨진 기회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들이 겪어야 하는 온갖 험난한 현장과 상황이 지나치게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져 괴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또 다른 응급실 풍경


뱃속 아이의 태동과 발차기가 수시로 느껴지던 임산부 시절이다.


오후에 시작된 발차기가 저녁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다. 아이가 손과 발로 배 곳곳을 세게 두드려 대는 느낌이었다. 체하기라도 한 듯 복통과 배뭉침이 이어졌다. 마치, 아이가 지금 나오게 해 달라 애원하는 것 같았다. 초보 임산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불안감이 밀려왔다.


길게 생각 안 하고 남편과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평일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대기 중인 사람이 제법 있었다. 접수 직원에게 방문 목적을 설명하는데 말이 길어진다. 급하게 나오느라 산모 수첩도 안 챙기고, 새로 이사하면서 주치의도 바뀐 탓에, 병원에서 내 기록을 찾기 힘들어서다.


약간의 소동을 거쳐 진료를 접수하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보다 먼저 와 있던 수많은 환자를 제치고 말이다. 임산부를 위급 환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리라.


배의 통증은 계속 이어지지만 내가 직접 증세를 설명할 정도의 기운은 남아 있고, 아무도 임산부인지 모를 정도로 미미한 7개월 배를 내세운 상태다. 겉으로 보면 응급실행 환자로는 안 보이는 셈이다. 다른 대기자들의 의아해하는 눈길을 피해 검사실로 들어가려니 미안할 따름이었다.


난감하게도, 그렇게 격렬하던 아이의 발차기는 의사의 청진기가 들어오고 맥박 측정기가 다가오자 뚝 그쳤다. 실컷 발차기를 하던 아들이 지쳐 잠들기라도 했나?


그 사이 나도 지쳐버렸다. 금방 끝나겠거니 했던 검사가 계속되면서 시간은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졌다. 다 포기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때일수록 태아의 맥박 측정이 중요한 건지 내 배 위에다 차가운 젤을 바르고 긴 띠를 둘러서 측정하는 맥박 검사가 이어졌다. 더 이상 발차기가 없다고 했더니, 의사는 애를 깨워서라도 검사를 하자고 나왔다.



배 속에서 자는 애를 어떻게 깨우지?


옆에 있던 간호사가 물컵을 건넸다. 나보고 그걸 다 마신 후 침대에 눕지도 기대지도 말고 기우뚱하게 앉으라고 했다. 늦가을의 쌀쌀한 날씨에 500ml가 넘는 찬물을 다 마시라는 소리다. 영국인은 체질 때문인지, 임신과 출산 후에도 찬물 마시기를 권장하기에 사실 경악할 일은 아니다. 간호사가 주는 대로 물을 받아 마시고 어떤 진전이 있는지 기다리기로 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물고문으로도 애가 깨어날 조짐이 안 보이자, 이번에는 침대에서 내려와 병원 복도를 걸어 다녀야 했다.


이렇듯 길고 긴 검사를 거치고도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실은,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에 가깝다. 당시만 해도 당장 애가 태어나려나,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싶어 걱정이 태산 같았다.


지칠 줄 모르고 발차기를 해대던 아이는 그 후 예정일보다 한 달 여 빠른 시기이지만 무사히 태어나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너 그때, 두 손 두 발 다 들고 양쪽으로 이렇게 엄마 배를 찼어.”


내가 아닌, 남편이 직접 태아 자세를 취하며 당시 뱃속 모양새를 자기가 실제 보기라도 한 듯, 아들에게 시범 보이곤 한다.


최악의 응급실 풍경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괴롭고 힘든 응급실행임에도, 이후 아들은 무사히 태어났고 나도 정상적으로 출산했으니 다행이다 싶은 경험이다. 당시 일을 이렇게 추억으로 되새기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커버 이미지: express.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