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독서를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책을 펼칠 때마다 쏟아지는 생소한 단어에 절망하거나 난해한 내용에 집중하지 못해 결국 책을 덮어버리는 이가 있을 것이다.
영어를 전공한 나조차 영어 독서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넘어야 할 산으로 다가오는 책은 있다. 몇 세기에 걸쳐 회자되는 대문호의 작품을, 또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줄 전문가의 지식이 담긴 저서를 읽겠다는 신념으로 도전했다가 좌절한 경험도 있다. 그럼에도 독서는 내 삶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재미요 지혜의 원천이다.
이런 삶의 재미와 지혜를 얻기 위해 쉽지만은 않았던 독서 여정을 거치면서 터득하게 된 영어 책 완독 비법을 이 자리에 꺼내볼까 한다.
책을 완독하기 위한 노력으로 가장 먼저 거쳐야 할 작업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요즘 잘 나가는 책이야.'
'네 나이와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이 정도는 읽어야지.'
'너 대학 가려면 이 책은 필수다.'
이를 믿고 책을 골랐다가는 자신의 능력이나 관심사와는 동떨어진 책을 붙들고 씨름할 일만 남게 된다. 처음부터 부담을 떠안고 독서를 시작하려 하지 말고 내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보자.
여기서 '내 수준'이라고 하면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영어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부터 따져보자.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토익 900점을 넘길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출 필요는 없다. 그렇다 해도, 한 문장 문장 이어질 때마다 사전을 참조할 정도로 모르는 단어투성이의 책이라면 내 수준이라 할 수 없다. 설령, 단어가 어렵지는 않다 하더라도 작가가 통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책도 내 수준에 맞다 할 수는 없다.
영국에서 아동의 독서를 지도할 때 활용하는 '다섯 손가락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책 한 페이지를 무작위로 펼쳐 보인 후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아이에게 손가락으로 꼽아보라고 한다. 이때 나오는 단어 개수는 아이가 책을 이해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 간단히 요약하면,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1~4개 사이가 나오면 읽을 만한 책이요, 5개 이상 나오면 어려운 책이라는 말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는 없어도, 가장 간편하게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는 방법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과연, 이 원칙을 아이에게만 적용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 글을 읽는 모든 성인 독자들,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우리도 아이 못지않게 독서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나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독서를 한다면 말이다.
한 페이지만 읽었을 뿐인데 모르는 단어가 수시로 튀어나온다면 책을 끝까지 읽어내기는커녕 전반적인 내용도 이해 못 할 가능성이 크다. 뒤집어 말하면, 모르는 단어가 서너 개쯤 나온다 해도 걱정할 필요 없이 읽어도 된다는 뜻이다.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 이 방식을 적용해 보자. 물리적으로 책을 펼쳐볼 수 있으니 어느 한 페이지를 골라 그 속에 모르는 단어가 몇 개인지 세어보면 된다.
한편, 온라인으로 책을 고를 때도 다섯 손가락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주문 가능한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모두에 해당한다. 오프라인 방식과 동일하다 할 수는 없는데, 구매 사이트의 책 미리 보기 기능을 활용하여 책 도입부 몇 페이지를 펼쳐서 해보면 된다. 오디오북의 경우 도입부는 아니지만 책의 녹음본 일부를 샘플로 들어볼 수 있다.
영어 독서 초보라면 특히 이 방법을 추천해주고 싶다.
단순히 책을 읽겠다가 아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읽을지 현실적인 목표를 숫자로 정하자.
내가 영어 북클럽에서 다루고 있는 100쪽 내외의 중단편을 예로 들어보자. 100쪽의 책을 2주 만에 읽으려면, 월~금까지 매일 10쪽씩 읽거나 주말에만 25쪽씩 몰아 읽으면 된다.
이건 내 북클럽 참여를 위한 제안에 불과하므로 각자의 사정에 맞게 읽을 분량과 날짜를 조절하면 된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운 독서량일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쉽게 도달 가능한 분량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현실적인 목표를 숫자로 정해놓고 꾸준히 지키는 행위다.
목표를 정하는 방식은 개인 사정에 따라 달리하면 된다.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일반 사무직 근로자로 주중에 9 to 5 형태로 근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말에만 근무하는 사람, 교대 근무를 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느라 낮과 밤, 주중, 주말 근무의 경계가 불분명한 사람도 있다. 혹은, 학생이거나 입시, 취업 준비를 하느라, 가정을 돌보고 육아를 해서 일과 휴식 시간이 남과 다를 수 있다.
자신의 생활 반경에 맞추어 현실적인 목표를 정해보자. 처음부터 과도하게 큰 목표를 잡아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 말 그대로 현실적인 목표다. 하루 단 2쪽도 좋다. 단순히 오늘부터 책을 읽겠다, 보다는 하루 어느 시간대에 몇 쪽씩 읽어서 몇 주 뒤 혹은 몇 개월 뒤 XX 쪽의 책을 완독하겠다, 식으로 말이다.
가능하다면, 컴퓨터 문서나 노트를 활용하여 꾸준히 기록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독서 할당량을 지키고 있는지 모니터링해 보자.
나의 일일 독서 목표량은 오디오북 재생으로 1시간인데 이는 종이책 분량으로 환산하면 대략 30~40쪽이다. 실제 독서 결과물만 놓고 따지면 일일 독서량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목표로 정한 책만 1시간이라는 말이다. 굳이 목표로 정하지 않아도 언제든 흠뻑 빠져들 정도로 흥미롭게 읽어내는 책도 있으니.
내가 목표로 삼는 책은 완독하기 만만치 않겠다 싶어 도전한 책을 가리킨다. 주로 고전도서가 이에 해당하며,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해 번갈아 읽는 목표도 정해두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 독서 패턴은 특정 장르에 치우치고 마니까.
이렇게 해서 내가 다 읽은 책을 연말에 집계하면 장편 소설 분량으로 100권가량 된다.
지금껏 종이책으로만 독서를 했다면, 전자책이나 오디오북도 독서 대상으로 고려해 보자. 종이책 독서를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고 새로운 독서 방식도 시도해 보라는 뜻이다.
나처럼 노안을 걱정하는 나이가 아니더라도 종이책 독서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있으리라. 책의 종이 재질과 글자 크기 때문에 읽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서다. 부피가 큰 종이책을 보관하고 이동하는 행위도 번거롭게 여겨질 수 있다.
전자책은 글자 크기와 배경색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데다 책 보관과 운반도 간편하다. 반드시 그렇다 할 수는 없지만, 같은 책이라도 전자책 버전은 종이책 보다 저렴하며, 저작권이 소멸된 고전도서의 경우 종이책 구매가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오디오북의 이점도 전자책과 유사한데,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닌 귀로 듣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이점이 있다.
눈으로 볼 때만 해도 내용이 무겁거나 지루해서 읽기 부담스럽다 싶었던 책을 귀로 들으면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멋진 목소리의 젊은 교수가 지루한 고전 문학이나 공학 이론을 강연해 준다고 상상해 보면 된다. 혹은, 집안 어른이나 학창 시절 선생님, 친구 등 평범한 이야기 소재를 누구보다 더 맛깔나게 감동적으로 구연해 주는 사람을 떠올려 보라. 종이책으로는 감히 시도하지 못하던 작품을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이런 느낌이 든다. 물론, 모든 오디오북이 그 정도의 감동을 줄정도로 매력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잘만 고르면 분명 이런 작품은 있다.
또한, 종이책과 달리 오디오북으로 독서를 할 때는 몸이 자유로워지므로 독서 범위가 넓어진다. 길거리에 서서 친구를 기다릴 때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독서가 가능하다. 몸을 움직이며 책을 감상할 수 있으니 앉아서 책을 읽을 때 보다 눈꺼풀이 감길 확률이 떨어진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Link Hoa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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