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잡지를 볼 때마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여배우의 옷차림만이 아니다. 유명 시상식과 축하 행사에서 멋진 몸매와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남녀 주인공 모두 내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의문의 대상이기도 했다. 다들 어딘가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레드 카펫에서 자주 발생하는 꽈당 사건의 주요 원인이 되는 긴치마는 특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 여자들은 날씬한 다리를 다 가리고, 발에 걸려 넘어질 정도로 긴 드레스를 입을까?
왜 남자들은 불편하고 갑갑한 나비넥타이를 맬까?
드레스 코드 (Dress code)의 사전적 의미는 '복장 규정'이다. 어느 시대 어느 조직에나 있을 법한 옷차림에 대한 규정이다.
교복을 착용하는 학생에 이어 군모와 군화가 떠오르는 군인까지 모두 복장 규정을 따른다. 회사에 출근하는 일, 경조사 참석의 경우, 개인의 취향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기는 하지만, 이 또한 복장 규정을 준수하는 셈이다.
그러면, 화려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유명인들의 옷차림은 어떤 드레스 코드를 따른 걸까?
이들의 사진을 통해 드레스 코드를 배워보자. 레드 카펫에 나서는 영화감독이나 배우가 아니더라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드레스 코드는 일반인에게도 적용된다. 특히, 서양식 결혼이나 파티, 공식 행사에 초청된다면 참조해 볼 만하다.
2016년, 오바마 미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내외의 공식 만찬이 열리던 날이다.
화이트 타이라고 하면, 남성의 경우 말 그대로 흰색 나비넥타이와 턱시도 차림을 한다.
여성은
- 발목을 덮는 긴 드레스 (이브닝드레스)
- 팔꿈치 위까지 오는 긴 장갑 (이브닝 글러브)
- 올림머리
이 세 가지를 갖춘다.
국가 수장이나 고위 관료가 참석하는 공식 석상에서 볼 수 있다. 물론, 기본 원칙에 불과하다. 위 사진 속 인물은 내가 찾아본 자료 중 화이트 타이 원칙을 가장 잘 따르고 있을 뿐, 다른 화이트 타이 행사에서는 이 원칙을 조금씩 어기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몇 개월 전,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방문하여 영국의 국왕 내외와 사진을 찍었는데, 분명 화이트 타이 행사임에도, 카밀라 왕비와 멜라니아 영부인까지 규정을 약간 벗어난 차림으로 나타났다.
클루니 부부의 블랙 타이 차림이다.
아말 클루니의 치마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은 여전히 발목을 덮어야 한다. 대신, 장갑과 올림머리에서는 해방된다. 이렇게 길게 휘감기는 치마에 하이힐까지 신고 걷다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남녀 모두 레드 카펫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옷차림이다.
남성은 앞서 나온 화이트 타이 차림에서 타이만 블랙으로 바꾸면 될 것 같지만 턱시도의 종류가 다르다. 아래에 비교 사진이 있다.
블랙 타이와 화이트 타이의 차이를 앞서 나온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서 배워보자.
블랙 타이는, 결혼식에서도 입는 우리가 흔히 아는 턱시도 형태인 반면, 화이트 타이의 턱시도는 지휘자의 옷처럼 길게 늘어진 디자인이다.
레드메인 부부의 라운지 슈트 차림이다.
라운지 슈트는 드레스 코드의 격식과 비격식 구분에서 중간에 해당한다.
남성은 넥타이와 양복 정장을 하고, 여성의 옷차림은 발목을 드러내거나 무릎 아래 정도로 길이가 짧아진다. 치마 대신 바지를 입기도 한다. 한국의 결혼식 하객 패션으로 적합하다. 누구나 옷장에 한두 벌 갖추어 두면 유용한 차림이다.
다이앤 크루거와 조슈아 잭슨 커플이 선보인 다양한 칵테일 의상을 참조해 보자.
칵테일파티에 어울리는 의상인 만큼 앞서 나온 드레스 코드보다 훨씬 자유롭다. 남성의 넥타이는 선택사항이고, 여성의 치마 길이는 무릎 위로 짧아지고 바지도 가능하다.
스마트 캐주얼을 한 해리 왕자 부부이다.
외출할 때, 친구 만나러 갈 때 입을 만한 옷차림이다. 굳이, 드레스 코드로 표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캐주얼과 스마트 캐주얼은 다르므로 신경 써서 입을 필요가 있는 장소임을 알린다.
영국의 공식 행사에서 요구하는 드레스 코드를 격식에서 비격식 순으로 나열해 보았다. 이 정도 드레스 코드 정보면 웬만한 공식 행사에 참석하더라도 당황할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공식 행사가 아닌 의외의 장소, 행사에서 드레스 코드를 적용할 때가 있어서다. 이런 것까지 꼭 지켜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영국 문화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알아둘 만하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출입하는 술집일수록 드레스 코드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야구 모자나 후드티 모자, 운동복은 안 된다. 작업용 신발과 안전모를 금지하는 곳도 있다.
영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술집인 펍 (Pub)은 술뿐만 아니라 식사도 제공한다. 근처 공사장에서 작업하던 인부나 지역 주민이 식사를 하러 들를 만도 한데, 이럴 때도 복장 규정을 지키라고 하기엔 너무하지 않나? 이 때문에 특정 요일과 시간으로 드레스 코드를 한정시키는 경우도 있다. 즉, 작업자들이 들락거릴 만한 시간에는 자유롭지만 그 외에는 복장에 신경을 써서 나타나라고 하는 것처럼.
슈퍼마켓에도 드레스 코드가 있다고?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분명 있다. 나도 왜 필요한지 몰랐는데 우연히 그 필요성을 깨달았다.
마트 냉장 코너를 천천히 둘러보며 '오늘 저녁에는 뭘 해 먹을까?'로 고민하던 중,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음을 알아차렸다. 내 눈과 귀가 아닌, 코가 먼저 그의 존재를 감지했다.
나처럼 장바구니를 들고 냉장 코너에서 서성이던 남성인데,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체취를 풍기고 있었다. 저녁이고 뭐고 당장 포기하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였다.
영국의 연간 일조량은, 흑야 현상이 있는 북유럽 국가들보다 약간 더 높은 수준이다. 연이은 궂은 날씨로도 악명이 높은 곳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인지, 화창한 날씨만 되면 웃통을 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고 아무 곳에나 드러누워 해를 쬐는 영국인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거리에서야 어떻게 다니든 내버려 두겠지만, 이 상태로 실내로 들어오는 행위는 막고자 슈퍼마켓이 드레스 코드를 요구한다. 과도한 노출, 부적절한 옷차림은 자제해 달라는 뜻에서다.
참기 힘들 정도의 악취를 풍기며 나를 당황하게 만든 남성은 그나마 옷차림은 멀쩡했다. 이런 사람이 아무런 제약 없이 웃통마저 벗은 채 실내로 들어선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겠나.
슈퍼마켓 드레스 코드, 나는 당연히 찬성이다.
영국의 초등학생은 보호자가 직접 등하교시켜 주며 담임교사가 학생을 맞이할 때까지 입구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교문과 교실 입구까지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진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곧바로 출근하는 듯한 차림의 부모나 조부모도 있고, 근처 중등학교의 교복을 입은 청소년도 있다. 동생을 등교시켜 주고 나서야 자신도 등교하는 셈이다.
몇 해 전, 잠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학교에 오는 학부모를 향해 교장이 전달한 편지가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아들을 등교시키는 과정에서 나도 위와 유사한 광경을 목격했다.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잠옷 가운을 걸친 채 딸을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갔다. 길 건너편에 있는 집으로 후다닥 들어갈 수 있고, 고학년 학생은 교실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어쨌건 학교에서 요구하는 드레스 코드를 어기는 일이리라.
드레스 코드가 담긴 초대장을 갑자기 받는다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돈과 시간을 들여 꾸미고 갔음에도 군중 속에 혼자 튀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도 할만하다.
드레스 코드가 요구되는 행사에 초대받는 기회는 어쩌면 영광이요, 추억이며, 설레는 일이 될 수 있으니 주변 경험자의 도움을 받아 차근히 준비해 보자.
커버 이미지: awarenessdat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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